25년 동안 이어진 CBS 음악FM '신지혜의 영화음악'(이하 '신영음')에는 특별한 연말 기획이 있다. 해마다 '청취자가 뽑은 영화음악 베스트 50'을 선정해 좋은 음악은 더 알리고, 숨은 음악까지 발굴해낸다. 그렇게 한 해에 수없이 쏟아지는 영화음악을 '신영음' 만의 방식으로 정리한다.
아마 신지혜 아나운서가 그 동안 직접 듣고, 소중히 다뤄 온 영화음악도 셀 수 없을 터다. 과연 25년 간 '신영음'을 진행하며 수많은 음악을 만났을 신 아나운서의 '인생곡'은 무엇일까. 신 아나운서의 말처럼 '너무 박하지만' 어렵게 5곡만 골랐다. '신지혜가 뽑은 영화음악 베스트 5'를 소개한다.
네이버 영화 캡처영화 '블레이드 러너'(1993) OST 중 'One More Kiss, Dear'
전곡이 다 좋지만 그 중에서 딱 한 곡을 청취자들과 함께 들어야 한다면 단연 이곡이 되겠죠. 돈 퍼시벌(Don Percival)이 부르는 이 곡은 나른하고 여유로운 매력이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슬픈 장면에 흐릅니다. 인간을 대신해서 어렵고 힘든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리플리컨트(Replicant·복제인간). 그들의 수명은 고작 3년. 의식을 갖게 된 리플리컨트 중 몇몇이 지구로 몰래 들어옵니다. 그들을 찾아내 제거하는 일을 하는 형사 데커드. 리플리컨트 중 하나를 찾아가 총을 쏘는데 데커드의 총에 맞은 '조라'라는 이름의 리플리컨트가 거리로 뛰쳐나와 죽음을 맞는 장면이 천천히 화면에 흐릅니다. 이 곡은 바로 그 장면에서 쓰이죠. 처연하지만 그 처연함을 한 꺼풀 감싼 듯 일면 무심하게, 일면 연민을 담은 듯 노래가 들려 오죠. 개인적으로 SF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리들리 스콧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를 본 후로 제 마음의 향방은 더 확고해졌습니다.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OST 중 'Fly me to the moon'
OST 속에서 여러 버전을 들을 수 있는데 사실은 TV판 엔딩 버전으로 듣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 작품이 방영될 당시 극 중 '미사토'와 저는 또래였죠. 이후 TV가 종영되고 극장판이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졌고 십 수년이 흘러 다시 리빌드 되어 네 편이 하나를 이루는 극장판 '에반게리온'이 만들어졌는데 이게 지난해, 2022년에 완결되었어요. 그렇게 미사토와 저도 청춘을 보냈더라고요. TV판 첫 화, 첫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시간이 꽤 흘러버렸네요.
영화 '시네마 천국'(1990) OST
영화도 너무나 좋지만 계속 변주되는 테마가 영화의 곳곳을 어루만져 줍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스코어 곡입니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이 영화의 OST 중 'Love Theme'는 엔니오의 아들인 안드레아 모리코네가 작곡했고 그 곡을 엔니오 모리코네가 편곡해서 'Love Theme for Nata'라는 제목으로 OST에 함께 수록했습니다. OST 전체 트랙 중 아무래도 인기가 많은 곡은 '메인 테마'(Main Theme)와 '사랑의 테마'(Love Theme)입니다.
네이버 영화 캡처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8) OST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상으로 펼쳐집니다. 그 영상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스코어가 흐르는데 바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곡들이죠. 르네 플레밍이 부른 주제가 'You'll Never Know'도 당연히 최고입니다. 이 영화는 지난 2018년 '신지혜의 영화음악' 20주년 기념 상영회로 청취자 여러분들과 함께 한 영화라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 '3000년의 기다림'(2023) OST
최근에 본 작품 중에 저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에 매료되는데 이야기들이 어떻게 풀려 나가는지, 이야기들의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늘 궁금하거든요. 이 작품은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의 조지 밀러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작품인데 감독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 작품이고 OST를 듣는 순간 그냥 마음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조지 밀러 감독의 전작 '매드맥스'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폭발시킨 정키 XL(Junkie XL) 감독이 이번에도 음악을 맡았는데 과연 '그 사람이 이 사람인가' 할 정도로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3000년의 기다림'에서는 톰 홀켄보그(Tom Holkenborg)라는 이름을 썼죠. 영화도 음악도 상당히 매혹적인 작품으로 '신지혜의 영화음악' 25주년 기념 상영회작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