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한 주거지에서 민간 사회보호시설 인근에 아파트가 근접해 있는 모습이다. 양형욱 기자 서울 중랑구에 사는 채모(46)씨는 여성가족부가 발송한 성범죄자 안내 통지서를 받아보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딸과 함께 사는 아파트 인근에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채씨는 "수차례 성범죄자가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를 배회하는 모습을 본 뒤 '아이를 혼자 밖으로 내보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출소자들이) 학교 근처, 학원 근처가 아니라 조금 더 멀리 살았으면 좋을텐데 밤이 되면 그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되게 불편하다"며 "아이들은 집에 오거나 학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인데 저들하고 마주쳤을 때 불편하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올해 5대 핵심 추진과제로 발표한 '한국형 제시카법'은 이러한 성범죄 전과자에 대한 우려를 줄이고 위험 요소를 제한하기 위한 법안이다. 앞서 김근식, 박병화, 조두순 등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지역 사회는 큰 두려움에 휩싸인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재범 우려가 큰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했을 때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집, 유치원 등 미성년자 교육 시설에서 500m 안에 살지 못하게 하는 게 핵심이다.
미국에선 이미 30개 이상 주(州)에서 아동성범죄자 주거지 제한책으로 제시카법이 시행 중이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일어난 아동 성폭행 살해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성범죄 전과자가 학교와 공원의 2천 피트(약 610m) 안에 살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을 두고 아이를 둔 학부모 등 시민들은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5세 여아를 키우는 정원(35)씨는 "이사를 온 지 2년 정도 됐는데 성범죄자 안내 통지문이 한 달에 한 2~3일 정도 날아와서 이 동네에 (성범죄자가)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항상 자녀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사를 할 예정이다.
정씨는 제시카법 도입에 대해 "성범죄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게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법들이 추진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이사를 고민 중인 직장인 조효주(27)씨도 노파심에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 성범죄자 거주 여부를 조회했다가 계약하려던 집 500m 인근에 범죄자가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계약을 포기했다.
조씨 어머니인 원옥남(56)씨는 "딸이 아직 성인인데도 항상 집을 알아볼 때 치안이 괜찮은지 따져본다.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성인보다 약자이니까 법으로 보호해야 되는 게 맞다"며 제시카법 도입에 찬성했다.
전문가들은 제시카법의 실효성을 더욱 확보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민들 입장에서 성범죄자가 500m 근방에 자기 이웃으로 살고 있는 것도 겁이 나지만 성범죄자를 만나는 것도 걱정이 된다"고 밝혔다. 성범죄자 거주 제한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 대한 적극적인 안전 대책도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범죄자 교화와 관리를 담당하는 보호수용시설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폭력 범죄자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야 한다"며 "(주민들이 크게 불안을 느끼는) 저녁시간에는 시설에서 성범죄자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치료를 하는 것만으로도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소한 범죄자들이 지방으로 몰리는 '게토화'(ghetto·격리지역)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구가 밀집된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성범죄자가 출소한 뒤 거주 가능한 지역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법원의 판단에 의해서 학교 500m 이내에도 출소자들이 거주할 수 있다"며 "법무부 소속 법무보호복지공단 내 시설이나 수용시설의 경우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