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탈때마다 몇번씩 반복"…장애母에겐 일상이 전쟁인 '출산‧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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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인구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심도 있게 모색해 본다.

[인구위기와 공존⑭]장애인에겐 더 버거운 출산‧육아

분유 만들기부터 책 읽어주기, 산책까지 일상이 고비
장애인 배제된 산모교육에 '아이 예방접종' 놓치기도
'장애인 도우미 서비스'도 이용시간, 지원기간 짧아

"애 울음 못 들을까봐" 잠 편히 못 드는 청각장애인
"직접 언어교육할 수 없어 교육 지원 필요" 목소리
여성장애인 "출산‧돌봄 관련 지원 서비스 가장 필요"

▶ 글 싣는 순서
①청년도 노인도 불행한 '인구 디스토피아'
②놀이터엔 노인들만…"애 한 명도 안 태어난 마을도"[영상]
③"마을 하나씩 매년 사라지는 셈…20년 후가 두려워요"
④20여년 간 41개 학교 문닫은 신안…"공공인프라 길게 보고 심어야"[영상]
⑤지역 특색 살린 '살아보기'로 인구 유치…"가장 큰 걸림돌은 주거 문제"
⑥'과밀한' 경기도마저 인구위기 '빨간불'…"80대도 안아프면 일해야"
⑦가평 이사 간 목동엄마의 분투기 "주3일은 서울行"
⑧MZ세대 남녀 '동상이몽' 심화…멀어지는 결혼·출산
⑨현실판 '82년생 김지영' 도처에…"이기적이란 말이 이기적"
⑩'비혼 1세대'가 바라본 저출생…"'삼중 노동' 여성들의 파업"
⑪"육아대디 되니 아내와 '동질감'…평일 회식도 눈치 안 봐"
⑫"젠더 갈등, 연애에도 영향…여성 고용문제 풀어야 저출생 개선"
⑬3년 만에 산모 44% 감소…장애인에 더 가혹한 '출산정책'
⑭"분유 탈때마다 몇번씩 반복"…장애母에겐 일상이 전쟁인 '출산‧육아'
(계속)

  그래픽=김성기 기자 그래픽=김성기 기자
누구에게든 출산과 육아는 어려운 일이지만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 부모에게는 몇 배로 버거운 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아이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장애인 엄마들은 비장애인이었다면 의식도 못한 채 지나갔을 평범한 일상조차 고비가 된 순간들이 많다.

서울에서 6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1급 시각장애인 김경미(46)씨에게 육아는 그야말로 매순간 '사투'였다. 당장 아이가 막 태어난 후 먹일 분유를 만드는 과정이 그랬다. 눈금이 점자로 표기된 젖병을 찾기 힘들어 얼마나 분유를 넣어야 하는지, 물은 얼마나 타야 하는지 매번 고생했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분유를 타서 먹이고 이런 거, 그냥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간단하잖아요. 물의 적정한 양 같은 것을 눈으로 보고 딱 맞출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대충 저는 소주잔이나 컵 같은 거를 이용해서 하긴 했는데 (젖병에) 물이 얼마나 되는지 먼저 넣어보고. 다 안 찼으면 또 따라서 넣어보고 이렇게 맨날 반복해야 했거든요"

조금 자란 아이가 읽어 달라며 들고 오는 그림책도 김씨에게는 종종 부담이 됐다. 김씨는 "아이가 책을 볼 때, 도우미 선생님이 귀가한 뒤에 저랑 아이랑 둘이 남으면 읽어달라며 온다"며 "그 뒤에 제목만 점자로 읽고 대충 추론해서 '어떤 내용이다' 이렇게 아이에게 읽어주고 말해주는데 이런 부분도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안나경 기자그래픽=안나경 기자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아이가 네 살 남짓 됐을 때 외출했다가 아파트 단지 내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은 한동안 '트라우마'였다. 울며 보채는 아이를 달래려 손 잡고 나갔다가 이곳저곳 쏘다니는 아이에 마구 끌려가다보니 어느새 방향감을 잃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설명을 듣다가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우리 아파트로 좀 데려다 달라'해서 겨우 집에 들어왔다. 그 다음부터는 솔직히 아이와 둘이서는 나갈 엄두 자체를 못 내겠어서 외출하지 않는다"며 "아파트에 이렇게 방향을 알리는 신호기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예전보다 개선됐지만 여전히 산모 교육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맞춰져 있어 장애인 부모로서는 육아에 필요한 정보를 놓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김씨에게는 아이에게 시기별로 맞혀야 할 예방접종을 놓치거나 뒤늦게야 주사를 맞힌 일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어디서도 관련 정보를 알려준 적이 없다. 지금 필요한 주사를 아이에게 다 맞혔는지 안 맞혔는지도 사실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경기 성남에서 일하며 3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지체장애인 A(43)씨는 이러한 불편함을 산후조리원에서 겪었다. 한쪽 팔과 다리를 거의 쓸 수 없는 A씨는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진행된 프로그램들이 비장애인 산모 중심으로만 진행돼 여러 불편함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저 같은 경우 일어선 상태로는 남의 도움 없이는 모유 수유를 못 하는 상황이었어요. 한 손으로만 아이를 안을 수 없으니까…그런데 산후조리원도 사실 비장애인 위주로 프로그램이 구성돼있어요. 모유 수유를 알려주는데 제가 한 손을 못 쓰는 상황을 말해도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지는 않더라구요. 나중에야 누워서 먹이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맞벌이 부부'인 A씨가 최근 체감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육아 지원 부족'이다. 그가 거주하는 경기도에서는 장애인 맞춤형 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자녀가 36개월이 될 때까지만 월 48시간 이용 가능하다. 하루 평균 2~3시간 정도밖에 이용할 수 없는 점도 아쉽지만 아이가 27개월을 막 지나 도움 서비스가 9개월 뒤면 끝나는 것도 걱정거리다.

A씨는 "도우미 서비스 제공 시간을 좀 더 늘리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육아는 더욱 버겁다.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아 기른 이진희(52)씨는 자녀가 클 때까지 편히 잠을 잔 적이 없다고 했다. 밤에 아이가 우는지 알 수 없으니 아이 몸에 손을 올려놓고 잠에 들지만 여러 번 위험한 일을 겪기도 했다.

"아이가 울거나 하면 숨 쉬는 게 달라지니까 그걸 느끼려고 했던 건데 사실 엄마도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하잖아요. 잠도 거의 하루에 2~3시간밖에 못 자고 이러는데…어느 날은 아이 배에 손을 올려놓고 잤는데 우는 신호를 못 느낀 거에요. 너무 피곤해서 (곤한) 잠에 빠진 거죠. 깨고 보니까 아이가 위험하게 혼자 다른 데로 기어간 다음에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울고 있어서 너무 놀랐어요. 그 이후로는 더 잠도 못 자고 그랬죠"

청각장애인 이진희(52)씨가 수어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재완 기자청각장애인 이진희(52)씨가 수어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재완 기자
이같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두 아이를 모두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낸 이씨는 이제 자신과 같은 장애인의 권익 향상을 돕고 있다. 그는 많은 청각장애인 엄마들을 만나며 과거보다는 여러 사회적 지원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는 영역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특히 아이에 대한 언어 교육 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씨는 "청각장애인 부모는 직접 언어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방문 교육이 정말 중요한데 이런 지원 저변이 넓어져야 할 것 같다. 현재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불가하고 지자체별로 아주 소수의 지역만 이런 지원이 있다고 알고 있다"며 "부모가 청각장애인인 경우 대부분 기초수급자인 경우가 많아 개별 학원 같은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가기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장애인 출산·육아 지원 부족 현실은 통계로 선명히 드러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8~49세 여성 장애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 중 출산 관련 서비스(33.4%)가 압도적으로 1위다. 세부 항목 별로는 출산비용 지원(10.2%), 임신‧출산관련 교육 및 정보제공(8.8%), 여성장애인 임신‧출산 전문병원(7.1%), 산후조리 서비스(5.1%) 등으로 출산 관련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자녀 양육 지원 서비스가 13.3%로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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