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간 들여다본 인구위기…"한국사회 문제의 종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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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인구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심도 있게 모색해 본다.

[인구위기와 공존⑱]CBS 복지팀 2022년 인구기획 결산 대담
수도권도 '남 얘기' 아닌 소멸위기…인프라 마비, 생명과도 직결

효율성만 따진 '압축 성장' 그늘…"경쟁사회 자식에 물려주기 싫어"
'여성=출산도구' 시각 얼마나 달라졌나…저출생은 원인 아닌 '결과'
"계량적 관점 익숙해지다 보니…결혼·출산의 고유 가치가 묻힌 느낌"

지자체 모두 사활 걸지만…'부울경 메가시티' 등 거점 도시 고민해야
"관계인구, 하나의 대안 될 수 있어…워케이션 등 체류기회 제공 중요"


▶ 글 싣는 순서
①청년도 노인도 불행한 '인구 디스토피아'
②놀이터엔 노인들만…"애 한 명도 안 태어난 마을도"[영상]
③"마을 하나씩 매년 사라지는 셈…20년 후가 두려워요"
④20여년 간 41개 학교 문닫은 신안…"공공인프라 길게 보고 심어야"[영상]
⑤지역 특색 살린 '살아보기'로 인구 유치…"가장 큰 걸림돌은 주거 문제"
⑥'과밀한' 경기도마저 인구위기 '빨간불'…"80대도 안아프면 일해야"
⑦가평 이사 간 목동엄마의 분투기 "주3일은 서울行"
⑧MZ세대 남녀 '동상이몽' 심화…멀어지는 결혼·출산
⑨현실판 '82년생 김지영' 도처에…"이기적이란 말이 이기적"
⑩'비혼 1세대'가 바라본 저출생…"'삼중 노동' 여성들의 파업"
⑪"육아대디 되니 아내와 '동질감'…평일 회식도 눈치 안 봐"
⑫"젠더 갈등, 연애에도 영향…여성 고용문제 풀어야 저출생 개선"
⑬3년 만에 산모 44% 감소…장애인에 더 가혹한 '출산정책'
⑭"분유 탈때마다 몇번씩 반복"…장애母에겐 일상이 전쟁인 '출산‧육아'
⑮장애부모는 쓸수 없는 산모수첩…출산·돌봄 '사각지대'
⑯'전국 꼴찌' 서울 출산율…일극화가 낳은 필연이다
⑰"이러다 다 죽을 판"…지역소멸 어떻게 막을 수 있나
⑱반년 간 들여다본 인구위기…"한국사회 문제의 종합판"
(계속)

"한국은 2305년 저출산으로 사라지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다." 영국의 인구학자인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지난 2006년 남긴 말이다. 이 경고는 15년 만에 철회됐지만, 콜먼 교수의 말처럼 정부 정책이 출산율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국내 합계출산율은 '0.7명대'로 직전 기록(0.81명)을 또다시 갱신할 예정이다.
 
CBS 복지팀은 회사의 '출산·돌봄 캠페인'을 뒷받침하는 인구기획 기사를 반 년째 취재·생산해왔다. 15년 동안 380조를 쏟아 부었다는 저출산 정책의 면면을 뜯어본 '팩트체크'부터 일본·독일 등 앞서 이 문제를 직면한 해외 국가들의 '다른 길'을 살펴보기도 했다. 취재 기자들이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은 소멸위기지역을 직접 방문하면서부터다. 경북 의성(김재완 기자), 전남 신안·보성(이은지 기자) 등 비수도권은 물론 경기 가평·연천(정영철 기자) 같은 수도권도 열외가 아니라는 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세 기자는 새해를 앞두고 지금껏 인구 문제를 취재하며 느낀 점 전반과 각자가 생각하는 근본적 원인, 대안을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은 지난 20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한 비대면 방식으로 약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수도권은 무조건 사람 몰린다?…"일부는 지방 데칼코마니"

지난 8월 경북 의성군 의성읍 문소길에 위치한 주차장. 과거 목욕탕이었지만 찾는 사람이 줄어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김재완 기자지난 8월 경북 의성군 의성읍 문소길에 위치한 주차장. 과거 목욕탕이었지만 찾는 사람이 줄어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김재완 기자
-정영철 팀장(이하 정): 기획 초반에 인구감소 문제를 심도 있게 알아보고자 지역 현장을 돌아봤다. 그 전까지는 '인구 절벽'이네 뭐네, 수치로만 보였던 문제를 조금 더 캐치하고자 함이었다. 실제 가보니 어땠는지 그 부분부터 시작해보자.
 
-김재완 기자(이하 김): 수도권 출생은 아니지만, 거의 서울에서 자라고 생활했다. 통상 낙후된 시설이나 폐가 등을 볼 때 '시골 풍경이 이렇구나' 하고 느꼈는데, 의성군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받은 느낌도 일반적인 감상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역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더라. 목욕탕, 학교 등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공간들이 있었다. 인구가 줄면서 활기를 잃고 건물만 남아서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등 기능이 마비된 모습이었다.
 
-이은지 기자(이하 이): 취재지 선정 단계에서 소멸위험지수가 비슷한 다른 후보군이 있었지만, 일부러 신안을 택했다. 가능하면 평소에 우리가 가보기 어려운 곳, 지역적 특수성이 잘 드러나는 지자체를 가보고 싶었다. 드라마 등을 통해 '섬마을 선생님'이나 분교 이야기를 종종 접했지만, 본교→분교→폐교의 과정을 현장에서 목도한 것은 처음이기도 했다. 압해초등학교 쌍룡분교를 나와 지금도 근처에 살고 계신 주민 분은 본인을 제외한 모든 동창이 '여기를 떠났다'고 하셨다.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삶을 영위할 만한 조건이 안 되는 거다.
 
-김: 의성군의 경우, 워낙 인구 감소로 대표되는 지역이다 보니(올해 기준 경북 의성군의 소멸위험지수는 군위군에 이은 전국 2위다) 청년들의 정착 지원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충분히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의료시설 부족'은 (유입된) 청년들이나 현지 주민들이나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문제다. 가령 산부인과가 하나밖에 없고 산후조리원이 아예 없어서 여기서 계속 생활하기 어렵다는 거다. 작은 도시에 필요시설이 모두 갖춰질 수는 없더라도 유인을 더 악화하는 요소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에 폐교된 전남 신안의 안좌초 자라분교 전경. 신안군은 행안부에서 배분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해 이곳을 섬살이 교육전문센터('로빈슨 크루소 대학')로 꾸밀 예정이다. 이은지 기자작년에 폐교된 전남 신안의 안좌초 자라분교 전경. 신안군은 행안부에서 배분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해 이곳을 섬살이 교육전문센터('로빈슨 크루소 대학')로 꾸밀 예정이다. 이은지 기자-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이후 '필수의료' 이슈가 대두되고 있지만, 신안 같은 곳에서는 이미 고착화된 문제다. 목포 쪽으로 나가면 그나마 조금 낫다고는 하지만, 상급종합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광주 전남대병원까지 1시간 가까이 더 나가야 한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 완공 전에는 구급차 대신 닥터헬기가 떠야 했다. 중증 응급·외상환자의 '골든타임'이 걸린 문제다. 인구 문제가 국민의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음을 느꼈다.
 
-정: 경기 연천과 가평을 가봤는데, 보통 수도권 하면 으레 인구가 몰린다고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이라고 하니 좀 묘하더라. 가평·연천은 보통의 시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육 문제나 산부인과 등의 의료 인프라 문제가 똑같이 제기되고 있었다. 청년 인구들은 상대적으로 일자리와 편의시설이 더 많은 지역으로 빠져나간다.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수도권 안에서도 '데칼코마니'처럼 일어나고 있다는 거다.
 

'무한경쟁', 성 불평등…수십 년 누적된 한국사회 문제 총합


 -정: 그럼 이토록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뭘까. 먼저 운을 떼면, 우리가 이 문제에 200조~300조를 썼다 하면서 막대한 돈을 뿌렸는데도 크게 실효를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게 일반적인 관점이었잖나. 하지만 막상 사업별로 뜯어보니 영양가가 없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족 관련 공공지출은 일본의 절반도 안 되니 솔직히 '우리가 최선을 다해봤는데도 (해결이) 안 되더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1970년대 이후 '압축 성장'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생존의 문제로 효율성만 따지다 보니 삶의 질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한국의 행복지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하위권인 점도 연관이 깊어 보인다. 남녀 간의 성평등, 타자에 대한 배려, 공감 등은 생존을 좇을 땐 크게 필요 없는 미덕이니까. 수십 년간 누적된 문제라 더 풀기가 어려운 거고, 이런 문화적 요소를 바꾸지 않으면 한순간에 변하긴 불가능하다.
 
-이: 팀 내 유일한 여성으로서 지방소멸위험지수와 합계출산율을 계산하는 방식도 새삼 흥미로웠다. 전자는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층 수로 나눠 구하고, 후자는 출생아 수를 15~49세 가임여성 수로 나누는 방식으로 산출한다. 객관적 지표를 위해 불가피한 수식일 수 있지만,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대상화하는 관점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당시 가임기 여성 수를 지역별로 표시해 논란이 된 '출산 지도'에서 얼마나 진일보했는지 의문이다. 출산을 여성의 삶에서 독립된 요소가 아닌 교육·고용 등을 아우르는 생애주기 일부로 바라보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해진 여성들의 '욕망'도 인정해야 한다.
 
-김: 저출생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저출생 자체가 잘못됐으니 이걸 뜯어 고치자'는 아닌 것 같다는 거다. 생사의 차원을 넘어 사회에서 '잘'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을 텐데 저만 해도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이 상황을 아이에게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극심한 경쟁, 빈부 격차, 교육 격차 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한데 공급방안은 굉장히 적다.
 
경쟁이 너무 과열된 상태에서 이를 뚫고 아이를 유능하게 길러내기가 아주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거다.
 
신안 자라분교 내부 모습. 2019년 12월의 달력이 걸려 있는 교실 뒤편엔 '마지막 재학생'이었던 두 어린이의 글과 그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은지 기자신안 자라분교 내부 모습. 2019년 12월의 달력이 걸려 있는 교실 뒤편엔 '마지막 재학생'이었던 두 어린이의 글과 그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은지 기자
-이: 번외로 'MZ 세대'로 느끼기엔 관계 맺기와 유지가 이전보다 서툴러진 것 같기도 하다. '손절'이란 말이 유행어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연결 폭은 확실히 넓어졌지만 끈끈함은 떨어지고 지속기간도 짧아졌다. 과업은 많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멀어진 것도 있다. 연애 또는 성관계로 가는 사전단계를 최대한 축소하려다 보니 '틴더' 등의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이 뜨는 것 같기도 하다.
 
-김: 동시에 '출산'이라는 건 내가 어느 정도 자산을 갖춰서 특정 수준의 배우자를 만나야만 애를 낳을 수 있다는 수학적 공식은 사실 아니지 않나. 취재원인 전문가도 했던 말이지만, 결혼·출산이 계량적 측면에서 많이 논의돼다 보니 파트너 관계와 출산·육아가 주는 행복이 너무 등한시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수치화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가 묻힌 느낌이다.
 

각개전투보다는 '거점도시'…'워케이션' 등 관계인구도 대안


-정: 지자체들을 비롯해 저출산 관련 정책 평가도 대안을 곁들여 해보자.
 
-김: 짧게 얘기하자면, '애를 낳기 위해 이렇게 하자'는 정책보다는 출산을 막는 요소들을 살펴서 고치는 게 우선인데 주객이 전도됐다. '100만원을 주면 낳겠지' 등 접근이 너무 단순화되는 것이 문제다. 조금 더 거시적 차원에서 사회의 문제를 진단해야 한다. 내가 이 삶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살아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할 것 같다.
 
-정: 청년층 유치를 위해 일정한 정착 지원금을 제공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은 많은 지역에 보편화된 것 같다. 그게 얼마나 창의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는지가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일본의 몇몇 소도시 성공사례를 보면, 핵심 포인트는 지방 정부와 현지 주민들이 협업해서 거의 주민 중심으로 (사업이) 돌아간다는 거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관(官) 중심이다. 수도권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거점 도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도 그런 차원에서 연구해볼 수 있다.
 
-이: 공감한다. 선배가 기사로 쓴 '관계 인구'가 그래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수도권 밖의 삶을 상상하더라도 갑자기 터전을 옮기기는 쉽지 않고, 리스크도 크다. 일과 휴가를 함께하는 '워케이션(Work+Vacation)'처럼 그 지역에서 지내보고,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관심 있는 민간 기업과 지자체가 MOU(업무협약)를 맺고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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