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5일) 데뷔 15주년을 맞은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 SM엔터테인먼트 제공영어·중국어·일본어 등의 어학 실력은 물론 가수·영화배우·탤런트·MC·DJ·모델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할 다재다능함을 갖춘 10대들로 이루어진 그룹.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평정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지닌 소녀들. 2007년 데뷔한 소녀시대에게 붙었던 설명이다. 실제로 소녀시대는 본업인 음악 활동뿐 아니라 앞서 기술한 활동을 두루 경험하며 꿈을 이뤘다. 보이그룹보다 수명이 짧은 것으로 여겨지는 걸그룹임에도 10주년을 맞았고, 15주년으로 이어졌다.
2017년 정규 6집 '홀리데이 나이트'(Holiday Night) 이후 5년 만에 완전체(태연·써니·티파니·효연·유리·수영·윤아·서현)로 돌아오는 소녀시대는 꽤 많은 준비를 했다. 우선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만든 켄지가 작업한 타이틀곡 '포에버 원'(FOREVER 1)을 포함해 다채로운 장르의 10곡이 담긴 정규 7집을 발매하고, 오는 11일 엠넷 '엠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음악방송에 출연한다.
'아는 형님' '놀라운 토요일' '채널 십오야2' '문명특급' 등 이미 녹화를 마쳤거나 출연이 예고된 예능도 여럿이다. '2세대 아이돌'이라는 말이 조금은 과거형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해도, 소녀시대는 이 모든 것을 '현재 진행형'으로 소화한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지닌다. 멤버들은 최정상 아이돌 '소녀시대'라는 탄탄한 브랜드 아래 유닛 및 솔로 가수, 배우, 예능인, MC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 중이다.
콘서트 '투어'가 가능한 걸그룹 시대 개막
소녀시대는 2010년대 초반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난 '한류 열풍'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데뷔 3년 만인 2010년 8월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연 첫 쇼케이스는 '한국 톱 걸그룹의 일본 진출'이라는 점에서 현지 언론과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소원을 말해봐'와 '지'를 일본어 버전으로 차례로 선보인 소녀시대는 이듬해 제25회 일본 골든디스크대상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2011년 6월 발매한 일본 첫 정규앨범 '걸스 제너레이션'(Girls' Generation)은 발매 당일 일간 차트는 물론 첫 주 주간 차트 1위를 석권했다. 해외 아티스트 앨범 사상 신기록이자 한국 여성 그룹 최초로 '오리콘 주간 1위'를 거머쥐었고 2012년 6월 일본 레코드협회에서 판매 누계 '밀리언'(100만 장)을 인증받았다.
오사카·사이타마·도쿄·히로시마·나고야·후쿠오카 6개 도시에서 14회 공연해 14만 명 관객을 모은 첫 아레나 투어를 성황리에 마친 소녀시대는 일본 후지TV 'FNS 가요제'와 NHK '홍백가합전' 등 유명 프로그램에도 초청받았으며 2012 일본 골든디스크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소녀시대는 일본을 비롯해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서 콘서트 투어를 개최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투어 규모는 점차 커졌다. 2013년 두 번째 아레나 투어에서는 일본 7개 도시를 돌며 총 20만 명을 동원해, 한국 걸그룹 일본 단일 투어 사상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2014년 세 번째 아레나 투어로는 7개 도시 17회 공연을 통해 총 2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같은 헤 일본 데뷔 4주년을 기념해 단독 콘서트를 '꿈의 무대'로 불리는 도쿄 돔에서 열어 5만 5천 관객을 만났다. 소녀시대는 중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이름을 건 투어를 진행해 걸그룹으로서 새 지평을 열었다.
소녀시대는 2011년 말 미국 유니버셜 뮤직 그룹 산하 메이저 레이블인 인터스코프 레코즈를 통해 스페셜 싱글 '더 보이즈'(The Boys)를 발매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때 미디어 노출에 집중했다. 2012년에는 미국 3대 토크 쇼로 불렸던 CBS '데이비드 레터맨 쇼'(The 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와 ABC 인기 토크 쇼 '라이브! 위드 켈리'(LIVE! with Kelly)에 한국 가수 최초로 출연하는 기록을 썼다. 프랑스의 유명 토크 쇼 '르 그랑 주르날'(Le Grand Journal)에도 한국 가수로는 처음 출연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K팝 아이돌이 미국 시장으로 나간다는 건 '공연 위주의 활동'을 의미했다. 밴드가 하는 방식으로 작은 공연장에서부터 크기를 키워나가며 실제로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다. 반면 소녀시대는 적극적으로 미디어 노출을 꾀함으로써 영향력을 키워가려고 했다. 또한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아직 유튜브의 파급력이 확인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유튜브 공식 계정을 만들고 관리했다. 레거시 및 뉴미디어를 동시에 공략하려고 했던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보통 아이돌 그룹은 활동의 지속성 부문에서 '7년'이라는 한계가 있고, 걸그룹은 3년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면서 "소녀시대가 걸그룹으로서 미국 진출을 시도한 것은 다른 후배 그룹에게도 '미국에 가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또, 단독 콘서트 월드 투어를 한 것도 '걸그룹도 저게 되네?'를 보여준 사례다. 성공, 실패와 상관없이 시도를 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라고 부연했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는 "미국 시장에서는 어떤 실질적인 성과를 냈다고 하긴 모호하지만, 미국 대중음악 시장이 K팝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 계기로서 소녀시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K팝이 해외의 여러 노래를 사들이는 위치였다면, (소녀시대는) 해외 유명 프로듀서들도 충분히 관심 가질 만한 가수라는 점을 어필할 수 있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삼촌 팬'→'여성 팬' 차례로 부각, 구매력 있는 팬덤 확장
소녀시대는 미국 NBC 인기 토크 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한국 가수 최초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메가 히트를 기록한 '지'(Gee)의 대성공으로 소녀시대는 '국민 그룹'의 위상을 갖게 됐고, 동시에 팬덤이 날로 커졌다. 이때 가장 부각된 것은 아이돌에 별 관심이 없다가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3040 남성들을 의미하는 '삼촌 팬'이었다. 이후 다른 여성 아이돌 그룹과 여성 가수의 팬덤에도 '삼촌 팬'이란 말이 대중적으로 쓰였다.
미식축구팀을 응원하는 치어리더로 변신한 뮤직비디오와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 등의 노골적이면서도 다소 유치한 가사 등이 어우러진 '오!'는 남성 팬들을 공략한 대표적인 곡이다. 그러나 소녀시대는 곧바로 후속곡 '런 데빌 런'(Run Devil Run)을 통해 '블랙 소시'로 변신했다. '런 데빌 런'은 한눈파는 남자에게 경고하는 화자 시점에서 쓰인 곡으로, 그간의 소녀시대 활동곡과 결이 달랐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랜디 서 음악평론가는 "그때(2010년)까지 소녀시대가 냈던 노래 중에는 가장 이질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국 가수 케샤 버전의 데모도 있었는데, 케샤가 원래 클럽이나 반항아 이미지가 있었다면 소녀시대에게는 큰 변신이었다. '런 데빌 런'이 있었기에 '더 보이즈'와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도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세계 3대 프로듀서로 불리는 테디 라일리가 만든 정규 3집 타이틀곡 '더 보이즈' 역시 소녀시대가 여성을 대표해 세상의 모든 소년, 남자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나, 이후 활동곡에서는 보다 넓은 팬층을 끌어안으려는 쪽으로 방향성을 바꾸었다.
미묘 평론가는 "사실 '삼촌 팬'이 부각되긴 했으나 소녀시대는 초기부터 여성 팬도 많았던 그룹이다.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이라는 것이 문화 현상으로서 다뤄지기 시작할 때 그제야 소녀시대가 이랬었다, 하고 거론됐다. (언론 조명 등) 가시화는 덜 됐으나 소녀시대는 여성 팬덤이 존재가 강했고 여성 팬이 많은 걸그룹이 보이는 특성도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랜디 서 평론가는 "소녀시대는 여성 팬덤이 커야 오래간다는 교훈을 안겨준 첫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K팝 씬에서 더 특별하게 자리하는 게 아닐까. 이후에는 아예 여성 팬덤을 염두에 둔 걸그룹도 많이 탄생했는데, 여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효연, 유리, 서현, 수영, 티파니, 윤아, 태연, 써니. 자료사진차우진 평론가는 "소녀시대는 소녀다운 이미지로 활동하다가 '블랙 소시'라는 콘셉트 아래 이미지 변신을 꾀하면서 마의 3년이라는 구간을 극복하려고 했고, 이것이 통했다. 그러면서 구매력 있는 팬덤을 확실히 가져오게 됐다. '소녀시대를 아는 사람'을 '소녀시대를 위해 돈을 쓰는 사람들'로 전환하는 셈인데, 포토카드 등 여러 굿즈를 살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냈고, 나아가 글로벌 인기를 바탕으로 월드 투어를 하면서 스케일 업을 이뤘다. 이때 걸그룹의 한계라는 걸 확실히 깨뜨렸다"라고 바라봤다.
일체감과 개성 두 마리 토끼 잡다
기획 당시부터 여러 방면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을 염두에 두었던 소녀시대는, 신인 시절부터 빠르게 이를 실현해 나갔다.
윤아는 데뷔 연도였던 2007년 드라마 '9회말 2아웃'에서 고등학교 3학년생인 인터넷 소설 작가 신주영 역을 맡아 눈도장을 찍었고, 이듬해인 2008년에는 KBS1 일일 연속극 '너는 내 운명'에서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장새벽 역을 연기해 큰 사랑을 받았다. 178부작이었던 '너는 내 운명'은 최고 시청률 43.6%를 기록했고, 윤아는 중장년층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유리와 수영은 시트콤 '못말리는 결혼'에서 코믹한 호흡을 자랑하는 듀오로 등장해 '연기돌'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각각 2007년과 2008년에 개봉한 영화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과 '순정만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수영과 써니는 멜론방송의 '천방지축 라디오' DJ로서 슈퍼주니어 성민과 차례로 호흡을 맞췄다. 티파니는 '소년소녀 가요백서'의 초대 MC로 귀여우면서도 엉뚱한 매력을 발산했다.
태연은 2008년부터 MBC라디오에서 '친한 친구' DJ를 시작했고, 처음에는 슈퍼주니어 강인과 2MC 체제를 선보이다가 이후 단독 MC로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라디오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데뷔한 지 3년이 채 되기 전 현역 아이돌로서는 드물게 KBS2 '승승장구'의 MC 중 한 명이 되어 진행 경험을 쌓았다.
소녀시대는 여러 멤버가 음악방송 MC로도 활약했다. 효연과 써니는 Y-STAR '라이브 파워 뮤직', 써니는 MTV '더 엠' MC를 맡았고 티파니·유리, 태연·티파니·서현이 MBC '쇼! 음악중심'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청춘불패' 시즌 1~2(써니·유리·효연), '우리 결혼했어요'(태연·서현) 등 굵직한 예능에도 장기 출연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왔다.
소녀시대는 데뷔 15주년 당일인 5일 저녁 6시 정규 7집 '포에버 원' 전 곡 음원을 공개한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이승한 TV 칼럼니스트는 "대체로 아이돌이 연기를 병행하는 건 팀 활동이 다 끝난 이후이거나 홀로서기를 꾀할 때였다"라고 운을 뗀 뒤 "2세대 아이돌은 아예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방위 엔터테이너를 육성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은 세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동료 걸그룹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현역으로 팀이 유지되고 동시에 각 멤버가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갖고 활동하는 그룹은 소녀시대가 대표적이다. 가장 성공한 사례로도 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가수가 노래만 잘 부르면 되는 게 아니라 다재다능해야 한다는 전방위적인 압박에 시달리게 된 분기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수로서 전성기가 지나가더라도 여전히 본인의 재능과 영역을 통해 연예계에서 유의미한 플레이어로 생존했다는 점에서, 아이돌의 수명이 많이 늘어난 계기이기도 하다"라고 바라봤다.
랜디 서 음악평론가는 소녀시대가 무대와 무대 밖에서의 모습을 차별화한 데 주목했다. 그는 "소녀시대는 다인원 그룹이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보일 위험성이 있음에도 꾸준히 유니폼을 입혀 하나의 치어리딩 팀 같은 미감을 추구, 전원이 뭉쳤을 때 파괴력을 극대화했다. 의상과 함께 군무도 이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각종 예능을 포함한 TV·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부각해 개인 인지도도 함께 가져갔다는 설명이다. 랜디 서 평론가는 "음악 활동 때는 다인원을 일체화하는 느낌이 돋보였다면, 예능에서는 개개인의 강한 개성을 드러냈다. 덕분에 무대 위에서는 '하나'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그 애가 그 애라는 느낌이 없었던 게 남달랐던 지점"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