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 황진환 기자과거 정부에서 대통령 민정수석실이 담당했던 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능을 법무부로 옮기는 것을 놓고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고위공직자들 중심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른바 '왕장관'론이 확산되자 법무부는 스스로 '인사 실세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법무부와 인사혁신처, 행정안전부가 24일 대통령령인 '공직 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 등의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인사검증 기능의 법무부 이관을 둘러싼 논란은 본격화됐다. 개정령안이 통과되면 인사혁신처는 공직 후보자에 관한 개인정보 수집·관리 권한을 기존 대통령비서실장에 더해 법무부 장관에게도 위탁할 수 있다. 또 법무부령에 따라 법무부 장관 직속 인사정보관리단장이 신설되고, 단장을 포함해 필요한 인력 20명(검사 최대 4명, 경정급 경찰 2명 포함)이 투입된다.
검사 인사권 틀어쥔 한동훈, 고위공직자 인사권한까지?
이런 조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예고됐던 사안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민정수석실 폐지를 공언하며 인사검증 기능을 경찰과 법무부 등으로 다원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인사검증 기능이 '한동훈' 법무부에 할당됐다는 점이다. 검찰 총장 출신 대통령 정부의 검사 인사권을 한 손에 쥔 장관이 다른 손에 전 부처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인사권까지 좌우할 여지를 준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야권에서는 이미 비난 일색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오전 당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모든 공직자 인사가 '소통령' 한동훈 장관을 거쳐 검찰 손에 들어갈 것"이라며 "검찰이 모든 국가권력을 독식하는 '검찰 친위 쿠데타'로 대한민국을 검찰 왕국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원천적으로 월권 집단이자, 위법 조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공직 인사 검증을 핑계로 일반 국민들의 신상이나 또 평범한 일상까지 뒤를 보는 거 아니냐 이런 우려까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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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의 한 축이면서 한동훈 장관과 악연을 맺고 있는 법원 내 반발 기류도 심상치 않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모두 한동훈 법무부 산하에 들어서는 인사정보관리단의 검증대상이 된다. 당장 9월 5일 퇴임하는 김재형 대법관 후임 후보자 인사부터 해당된다. 법원은 특히 '한동훈'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주도한다는 점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법원관계자는 "특히 원로법관들 사이에서 한동훈 장관이 지난 2017년 사법농단 수사를 악용했다는 심증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법관들 대부분이 무죄를 선고받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와 거래를 위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사법농단 수사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였던 한 장관과 이번 인사에서 신임 법무부 검찰국장에 임명된 신자용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주도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도 지난 2020년 말 불거진 이른바 '판사사찰' 의혹 등으로 인한 뿌리깊은 검찰 불신이 여전하다. 판사사찰 의혹은 지난 2020년 12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면서 근거로 든 의혹이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같은해 2월 작성한 이 문건에는 주요 특수·공안 사건의 판사 37명의 출신 고교·대학, 주요 판결, 세평 등이 기재돼 사찰 논란이 일었었다. 한 대법원 관계자는 "판사사찰 의혹과 한동훈 장관이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법무부 산하 인사검증팀에 검사만 최대 4명이나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판사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소추 대리인단 대표를 역임했던 황정근 변호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검찰청법 제44조의 2항을 근거로 "기존 민정수석실에서 인사정보 수집·관리를 할 때는 현직 검사가 일체 관여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하고, 거기에 현직 검사를 파견 근무시키면 종래의 인사정보의 수집·관리에 대한 검사 불관여 정책이 훼손되고 검사의 정치 중립성 및 수사 독립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각계 우려 높아지자 법무부 적극 대응 나섰지만…
연합뉴스이른바 '왕장관' 등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법무부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적극적 대응에 나섰다. 법무부는 이날 설명자료를 내고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하는 건 대통령실의 권한 내려놓기 차원에서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는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이뤄진 조치"라며 "대통령실에 집중됐던 인사추천, 인사검증, 검증결과 최종판단 기능을 대통령실, 인사혁신처, 법무부 등 다수 기관에 분산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인사검증이 오히려 권한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법무부는 과거 인사검증 자료가 정권 교체시 모두 파기돼온 관행을 바꿔 신설되는 인사정보관리단에서는 업무상 다룬 자료들을 모두 보존하기로 원칙을 세웠다. 또 검증과정의 독립성 보장 차원에서 법무부 장관은 인사정보관리단으로부터 중간보고를 받지 않고, 사무실도 법무부가 아닌 제3의 장소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인사정보관리단장은 비검찰·비법무부 출신의 직업공무원으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왕장관' 우려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대응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1차 인사검증 실무를 담당하는 것에 불과하고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전담하는 게 아니다"며 "법무부의 1차 인사검증과 이후 대통령실의 최종적인 인사검증을 통해 인사검증이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또 법무부는 인사추천과 2차 검증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부각시켰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무부의 이같은 대응 자체가 거꾸로 법무부 장관에 권한이 쏠린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검찰출신 변호사는 "새로운 인사 시스템에서 한가지 확실한 점은 한동훈 장관의 권한이 강력해졌다는 것"이라며 "한 장관 스스로가 항상 권한남용을 경계하지 않는한 법무부가 내놓은 장치만으로 견제가 가능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법무부로의 인사검증 기능 이관이 한 장관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향후 인사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의혹이 제기될 경우 그 책임이 한 장관에게 쏠릴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 초대 조각부터 낙마자가 다수 생겼다는 점에서 한 장관에게 인사검증은 상당한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