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태어나서 처음 검찰 수사를 받았는데, 제가 법률전문가라고 자부했는데도 주눅이 들더라고요."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방창현 성남지원 부장판사가 항소심 최후변론에서 이번 사건 수사 중 느낀 소회를 털어놨다. 방 부장판사는 "현직 판사에게도 이러는데 법률을 잘 모르는 시민들에겐 어떤 식으로 수사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느꼈다"고 강조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최수환 부장판사)는 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방 부장판사와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현 성남지원 원로법관)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최후변론에 나선 방 부장판사는 "(검찰은) 일단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에 맞지 않는 대답을 하면 엄청난 호통을 친다"며 "진실을 얘기해야만 우리가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있다며 계속 회유를 하고 한창 호통을 치다가도 좋은 말로 달래면서 자백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자료표에 지장을 찍고 돌아오는 순간에도 검찰계장이 '수사에 협조해야 보호해줄 수 있다'고 했다"며 "순진한 생각으로는 협조가 이메일을 공개하고 휴대전화를 제출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윗선을 불라'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 연합뉴스심 전 원장도 최후변론에서 "공소사실의 핵심은 제가 항소기록 송부 전에 미리 사건번호를 부여하는 채번을 하고 그 채번된 사건번호를 통진당 사건에 부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인데, 저는 채번이라는 말은 검찰청에서 조사받을 때 처음 들었다"며 "항소기록 접수 전 사건번호를 미리 지정해준다는 것도 평생 법원에 근무하며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방 부장판사는 2015년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사건과 관련한 심증을 누설하고 법원행정처의 요구대로 판결문을 수정한 혐의를 받는다. 심 전 원장은 통진당 행정소송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이에 따라 사건을 배당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거나 법리적으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날 검찰은 "1심 판결에서 방창현 피고인의 공무상비밀누설죄 적용의 법리오해가 있었고 심상철 피고인 사건에서 중요 증언의 신빙성이 배척되는 위법이 있었다"며 "사법 신뢰의 중대한 손상에 대해서도 1심에서부터 수차례 말씀드렸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방 부장판사에겐 징역 1년 6개월, 심 전 원장에겐 징역 1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이들과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변론은 이날 종결하지 않고 공판을 더 진행하기로 했다. 이 전 실장과 이 전 위원은 현재까지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된 법관 중 유일하게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