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협의체 구성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문을 교환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방안을 접고 국민 의견을 더 수렴하기로 한데에는 청와대의 중재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철희 정무수석이 막후 국회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분명하게 전달했으며, 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 등을 우려한 민주당이 여러 정무적 판단을 한 끝에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이철희 수석, 文대통령 뜻 전달하며 막후 설득
청와대 이철희 정무수석. 연합뉴스본회의 개의 여부로 마라톤 협상을 벌이던 30일 오후 이철희 정무수석은 국회를 찾아 윤호중 원내대표와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를 만났다. 이 수석은 전날 송영길 민주당 대표를 면담한데 이어 원내 지도부를 찾아가 언론중재법과 관련해 본격적인 중재에 나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 수석은 문 대통령이 법안 강행처리에 우려하고 있다는 뜻을 명확히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뉴스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후퇴시킬 수 있는 조항들이 있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입장이었다.
법률가 출신인 문 대통령은 법조계는 물론 각계에서 제기하는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 여러차례 보고를 받았고, 좀더 논의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려 이 수석을 시켜 대여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선출 투표 도중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의장석으로 다가와 박병석 국회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이미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가 법안 처리에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던 만큼, 뒤늦게 회군한다면 당 지도부의 리더십에 당장 타격은 불가피했지만, 큰 안목으로 장기적인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청와대의 설득이 먹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당 지도부는 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크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이 법안을 강행한다면 문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당 입장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국면도 생각했을 것"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고, 거부권 국면 자체가 여권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거부권 국면으로 옮겨가는 것 자체가 당청관계에 큰 긴장과 정치적 파장을 줄 수 있는 만큼, 당 지도부가 한발 물러나 타협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유엔까지? 靑과 송영길 대표, 국제사회 따가운 시선 부담…대선 정국에도 도움 안된다 판단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현안관련긴급보고에서 이준석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등 참석 의원들이 언론중재법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 기자이밖에 한국의 언론중재법 이슈가 점차 국제적인 이슈로 비화되는 것도 당과 청와대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초반에는 세계신문협회(WAN-IFRA), 국제언론인협회(IPI·International Press Institute) 등 언론단체의 비판 성명에서 시작했다가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서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하며 이슈가 커졌다.
에서 민주당에 언론중재법이 세계인권선언 및 자유인권규약에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 반론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도 당 지도부의 생각을 바꾼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유능한 진보 정권으로서 문재인 정부가 쌓아올린 국제적인 명성에 타격이 갈 것을 우려한 것은 물론, 각국에 채널이 있는 '외교통' 송영길 대표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된다.
언론중재법 이슈가 민주당의 '180석 독주' 프레임을 일깨우며 대선 정국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정무적 판단도 작용했다. 중도층 외연 확장과 극렬 지지층인 이른바 '문파' 들과의 거리두기를 추구해왔던 송 대표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 논란이 점차 강성 지지층 주도의 노선 투쟁으로 흐르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문 대통령은 어렵게 물러선 당의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 즉각 환영하며 당 지도부에 명분과 퇴로를 활짝 열어줬다.
문 대통령은 31일 입장문을 내고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남용의 우려가 없도록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며 "언론의 자유와 피해자 보호가 모두 중요하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회적 소통과 열린 협의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