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관 신고 직후부터 '뭉개고 회유'…성추행 3개월간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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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그날 밤, 이후 사건의 재구성
공군 수사는 처음부터 부실…핑계대며 영장 청구 안해
피해자 숨진 후 국방부 보고엔 '성추행 피해자' 내용 누락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A중사의 영정과 위패가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놓여 있다. 지난 3월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신고한 A중사는 두달여만인 지난달 22일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공군 수사당국은 극단적 선택을 한 여군 부사관 A중사의 성추행 피해 사건을 처음부터 엉터리로 수사했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4월 14일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고, A중사가 숨진 뒤 그가 성추행 사건 피해자라는 보고를 받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정작 공군은 A중사 사망 사건을 국방부에 보고하며 성추행 피해 관련 내용은 쏙 뺐다.

CBS노컷뉴스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3월 2일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난 5월 21일,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일어난 일들을 국방부와 공군의 입장, 유족 측 변호인 김정환 변호사의 설명, 공군의 사건 관련 보고 등을 종합해 정리했다.

◇ 3월 2일 사건 발생, 다음 날 밤늦게까지 뭉갰다

피의자 장모 중사는 3월 2일 밤 충남 서산의 20전투비행단 근처에서 피해자 A중사, 부대 상관인 노모 상사와 함께 부대 밖에서 술을 곁들여 회식을 하고 돌아오던 중 차 안에서 A중사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족들은 A중사가 추행 도중 곧바로 차에서 내려 상관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군은 하루 뒤인 3일 오전 A중사가 상사에게 알려 레이더반장 노모 준위에게까지 보고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날 오후 노 준위는 A중사와 저녁을 먹으며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은 현재 노 준위를 해당 사건 이전에도 A중사를 추행한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당시 군에선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회식이 불가능한데다 문제의 저녁자리에 있었던 인원은 5명이었다.

김정환 변호사는 3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방역 수칙을 위반한 것이 들통날까봐 회유가 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생각이 든다"며 "'이 사건으로 인해 신고가 이뤄지면 회식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내용의 회유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남자친구에게도 '가해자의 인생을 생각했을 때 한 번 용서해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식의 회유가 들어갔다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3월 3일 밤 9시 50분쯤 노 준위가 소속 대대장에게 보고했고, 오후 10시 30분쯤 대대장이 군사경찰대대장에게 신고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보고 시점이 언제였든 최소 10시간 이상 대대장에게로의 보고가 지연된 셈이다. 유족 측은 노 준위와 노 상사를 직무유기와 강요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의무사령부 장례식장 접견실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A중사의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 피의자 장모 중사, 첫 조사에서 일부만 시인…휴대전화도 확보 안한 공군

A중사는 청원휴가를 신청했고 3월 4일부터 5월 2일까지 휴가를 갔다. 휴가 중이던 3월 5일 A중사는 군사경찰 조사에서 피해 사실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유족 측은 그가 차량의 블랙박스를 직접 확보해 군사경찰에 전달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차량을 운전했던 유일한 목격자인 하사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군사경찰은 3월 17일 피의자 장모 중사를 처음으로 조사했는데, 그는 혐의 일부만 시인한 채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이날 장 중사는 경남 김해의 5공중기동비행단으로 파견됐다. 바꿔 말하면 사건이 발생하고 2주 동안 여전히 피해자와 같은 부대를 활보하고 있었던 셈이다.

공군은 피해자와 장 중사의 주장이 엇갈려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도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진행하며, 장 중사의 휴대전화조차 압수하지 않았다.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은 불구속 수사를 한 이유에 대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군사경찰은 4월 7일 장 중사의 강제추행 혐의에 기소 의견을 달아 군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일주일 뒤인 4월 14일, 서면으로 이뤄지는 주간 사건사고 보고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다. 통상적으로 중요 사건이 아니라면 검찰 송치 뒤 참모총장에게 보고가 이뤄진다고 한다.

유족 측 김정환 변호사(가운데)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은폐의 중심에 있는 부사관들을 직무유기, 강요미수 등으로 추가 고소한다"며 "이 가운데 별건의 강제추행 피해도 1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국선변호인도 군 법무관…변호인과 검사, 판사가 모두 같은 사무실?

4월 15일 A중사는 상담관에게 '죽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상담관은 그가 군 외부에서 상담을 받길 원한다는 점을 감안해 서산 성폭력상담소 연계지원과 병원진료를 안내했다.

이후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A중사는 서산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4월 30일 이 성폭력상담소는 A중사에게 자살 징후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4월 20일 20전투비행단 군 검찰은 성고충 전문상담관을 만났고 A중사의 정신적 불안정 상태를 감안해, 좀더 상태가 나아진 뒤 조사하기로 했다.

4월 27일 A중사는 군 법무관인 국선변호인과 통화했고, 5월 21일에 군 검찰의 조사를 받기로 했다.

군 검사와 판사 모두 군 법무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피해자를 대변해야 할 국선변호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군 검찰, 판결을 맡는 재판부가 사실상 같은 사무실을 쓴 셈이다.

청원휴가를 마친 5월 3일부터 A중사는 2주 동안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격리 도중이던 5월 14일 20전투비행단은 그의 요청에 따라 경기도 성남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의 전속을 결정했다. 실제 전속은 5월 18일에 이뤄졌다.

5월 17일 A중사는 국선변호인과 다시금 통화했고 향후 수사에 대한 안내를 받으며 조사 일정을 조율했다. A중사의 요청으로 조사는 다시금 6월 4일로 미뤄졌다.

이 과정에서 국선변호인이 A중사와 단 두 차례만 통화하며 성의 없는 변호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군은 최소한 7~8차례 통화하고 문자메시지도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며 이를 부인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A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모 중사가 2일 저녁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압송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 기일이 된 결혼기념일…다음 날 남편이 발견해 신고

5월 21일 A중사는 오후 반차를 냈고, 성남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뒤 20전투비행단에 있는 남편의 관사로 갔다. 남편은 이날 밤 근무 때문에 부대에 있었다.

A중사는 그날 밤 극단적 선택을 하며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다음 날 아침,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A중사의 남편 B중사가 자신의 관사에서 아내를 발견해 신고했다.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문자메시지로 긴급 보고를 받은 뒤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에게서 곧장 대면보고를 받았고, 관련 내용이 국방부 조사본부에도 약식으로 보고됐다. 하지만 여기에서 A중사가 성추행 피해자라는 내용은 빠졌다.

주말 동안 현장감식과 검시가 진행됐고, 그의 유족 가운데 한 명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관련 글을 올려 군 당국을 성토했다.

◇ 장관 보고 뒤, 공군은 참모총장 지시 받고도 계속 엉터리 수사…보직해임도 뒷북

5월 24일 20전투비행단과 15특수임무비행단 인원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바꿔 말하면 피해자가 사망한 뒤에야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숨진 A중사가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라는 보고를 받고 2차 가해 가능성을 포함해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 관련 글이 그에게 보고됐고, 이 총장은 2차 가해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다음 날인 5월 25일 공군 군사경찰이 A중사의 사망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보고한 서류에서는 성추행 피해 관련 내용이 빠졌다. 공군참모총장에게는 성추행 피해 관련 내용이 보고됐는데, 국방부에는 이를 쏙 빼고 보고한 셈이다.

같은 날 이 총장이 성추행 피해 관련 내용을 포함한 사건의 세부 내용을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처음으로 보고했다.

서 장관은 이 총장에게 2차 가해 가능성을 포함해 사건을 엄정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유가족을 최대한 지원하고, 고인에 대한 순직 처리 등 관련 규정에 의거 최대한 예우하라고도 지시했다.

대한민국 공군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1차적으로 각군 참모총장이 수사의 지휘감독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정상적인 지휘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지시를 받은 이 총장도 이같은 내용의 지시를 공군에 하달했다.

하지만 공군은 지시를 건성으로 들은 채 뒷북 수사를 계속했다. A중사가 숨진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난 5월 31일, 20전투비행단 군 검찰은 장 중사를 조사하며 그제서야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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