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의 '드라이브 쓰루' 백신 접종소. 권민철 특파원
'트럼프가 깎아먹은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신뢰를 되찾겠다'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약속은 현재로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 백신 문제를 놓고 보면 적어도 그렇다.
전세계가 백신 1도스(병)라도 더 확보하려고 사활을 걸고 있는 때 미국에서는 남아도는 백신을 어떻게 소진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CNN은 2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백신 열정(vaccine enthusiasm) 감소로 인한 '잉여' 백신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앞으로 2~4주 안에 백신열정이 변곡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백신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 이유는 많다.
우선 백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흑인 사회의 백신 배척, 최근 존슨앤존슨 백신의 혈전 부작용 등으로 인한 백신 주저(vaccine hesitancy) 현상 때문이다.
두 번째는 백신 저항(vaccine resistance) 문제다. 백신에 대한 과학적 지식 결여와 정치적 신념 등에서 오는 백신 거부감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백신 저항 인구의 73%는 공화당 지지자, 41%는 백인 복음주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는 백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증가다. 이미 대규모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이 생겨가고 있는 만큼 굳이 백신 접종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무리다.
여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백신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된 뒤에 접종해도 늦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미국 정부의 무차별적인 백신 사재기도 백신 잉여 문제를 야기한 주요 원인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잉여 백신 소진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우선 백신 접종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다.
그 동안 백신 접종을 엄격하게 관리하던 것에서 지금은 기본적인 신원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은 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예약을 받지 않고 현장에서 즉석에서 백신을 접종해주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백신을 공중에서 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정부가 백신 3차 접종까지 검토중인 것도 잉여 백신 소진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에 현재 얼마나 많은 백신이 남아도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의 15일 보도를 보면 미국은 오늘 6월말까지 3억 도스의 잉여 백신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 같은 잉여 백신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공언과도 배치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우리에게 백신이 남는다면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나누겠다"고 말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공격적으로 백신 외교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에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라도 잉여 백신의 해외 공급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워싱턴 민간단체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올 여름까지 잉여 백신의 10%를 국제사회에 기부하고, 연말까지는 50%를 내놓으라는 제안을 미국정부에 공개리에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 행정부의 양심 있는 사람들도 현재의 상황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다고 한다.
베니티페어는 지난 6일자 보도에서 "미국의 물류창고에 유통기한이 다 되가는 백신을 쌓아놓고 있는 동안 나머지 세계는 죽어가고 있는 그런 비난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는 어느 고위 관료의 자괴감을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