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진정한 '나의 집'을 향한 여정 '노매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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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노매드랜드'(감독 클로이 자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주거지가 아니라 집일지 모른다. 한 곳에 자리 잡고 그 안에서만 머물러 있을 장소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들어서 살고 활동하고 정말 그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곳 말이다. '노매드랜드'는 한 존재가 마음으로 머무를 수 있는 진정한 '나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묵묵히 뒤따르는 영화다.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에 위치한 US석고가 문을 닫는다. 단지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경제가 무너졌다는 의미다. 결국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역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도시를 떠나 작은 밴에 몸을 싣고 낯선 길 위의 삶을 시작한다.

공장과 도시를 벗어나 대자연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펀은 그곳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현대의 유목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방랑자가 됐던 펀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고 자연과 유목민들의 삶을 마주하며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펀은 '유목민'이 되어간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펀은 주인공이지만 화자에 입장에 놓여 자기의 이야기만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 놓여 있다.

펀이 유목민들의 삶을 자신의 입으로 정의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들어줌으로써 관객과 스크린 사이 중개자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은연중에 '유목민'이라는 편견으로 다가가려 했던 우리에게 슬며시 유목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한다.

펀이 일하는 곳에서, 길 위에서 사람들과 만나 듣는 이야기는 실제 유목민들의 증언이기도 하다. 펀과 감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중심에 위치한 사람과 시스템에 대한 사회 비판적 시선이 아닌 중심에서 멀어져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펀의 여정을 쫓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허구, 불경기의 그림자, 일자리 부족의 문제, 사회복지 시스템의 허점 등 자본주의와 미국 복지 시스템이 가진 문제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초점을 비판에 두지 않는다. 펀이 보고 듣는 유목민들의 삶과 증언을 통해 무너지지 않고 이겨내며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 인간성의 회복, 공동체의 의미를 짚는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아마존 물류창고를 비롯한 돈을 벌 수 있는 여러 일자리 환경 속 사람은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벗어난 자연에서의 펀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된다. 영화는 끊임없이 현실을 바라보되 현실이 놓친 인간과 그 내면을 포착하고, 무너진 삶을 넘어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희로애락을 길 위에 펼쳐낸다. 기존 사회에서 느껴지던 소외와 결핍은 펀이 자연에 다가서며 회복해 나간다.

물론 펀은 밴을 타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현실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만난 사람들은 펀이 향하는 길이 결코 의미 없는 길이 아니며, 무모하거나 자본주의로부터 도태된 선택이 아님을 알려준다. 펀의 유목민의 삶이 결코 안타깝게 바라봐야 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가 잃은 것은 자본주의 체제 하의 삶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펀의 여정은 곧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너진 공동체와 연대의 의식이 미국의 또 다른 풍경 속에서 회복되는 과정이다.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있어야만 공동체인 것은 아니다. 부유하듯 떠돌면서도 마음이 정착한다면 그곳에도 공동체가 존재하고, 집이 존재하게 된다. 홀로 떠돌던 펀이 다른 유목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을 발견하고, 이를 다시 또 다른 길 위의 방랑자에게 알려준 것처럼 말이다.

고정되고 한정된 세계 안에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사회 체계가 정의한 내가 아닌 '자신'이라는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것, 보이는 것으로 서로를 나누고 바라보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나누고 함께하는 삶의 회복이 펀이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되찾은 진정한 삶의 모습이다.

카메라 역시 인공적인 것을 더하기보다 현실의 색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한다. 광활한 자연, 그리고 자연과 길 위의 인간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을 오롯이 비춘다. 펀의 여정을 뒤쫓으며 펀이 유목의 삶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카메라가 비추는 자연의 모습 역시 더욱 강렬하고 벅차게 다가온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점차 '유목민'이라는 단어를 듣고 느꼈던 편견과 선입견을 되짚어 보게 된다. 단지 이 과정에서 필요한 건 미국 자본주의의 그림자까지 낭만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잊지 않고 바라본, 모든 것을 잃고 이룩한 다시 찾은 새로운 형태의 삶은 눈부시다.

기나긴 여정 끝, 펀은 여정의 출발지라 할 수 있는 엠파이어로 돌아온다. 과거 자신과 삶의 흔적을 둘러본 그가 거주지였던 곳을 벗어나 광활한 자연을 향해 발을 내딛는 것을 보는 순간, 벅차다는 감정이 한껏 밀려온다. 연민하지 않되, 현실을 가리려 하지 않고 정확하게 이야기해 온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희망'이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그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미국을 가로지르며 여정 중인 펀을 현실의 인물처럼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덕분에 관객들은 펀을 따라 밴을 타고 함께 여정을 떠나 수많은 유목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다.

펀의 여정과 길 위의 많은 유목민의 이야기를 광활한 자연과 함께 사려 깊으면서도 가슴 벅차게 그려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마법에 관객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8분 상영, 4월 15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노매드랜드'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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