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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열전]현역 軍 '게이머' 투입…'컴퓨터 한미훈련'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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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기동 없이도 지휘절차 등 배우는 '워게임'과 CPX
직접 부대가 움직이며 손발 맞춰보는 FTX
매번 연합훈련마다 공포에 떨었던 북한…수십년간 중단 요구
'외교적 노력 뒷받침' 한다며 대규모 한미연합 FTX 중단
3년째 비핵화 협상 시원찮자 '전투준비태세에 문제 생긴다' 비판
군은 국가 정책 뒷받침해야 하지만 현명한 해법 필요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2015년 키 리졸브(Key Resolve) 연합훈련 당시 오산 공군기지의 한국 공군 시뮬레이션 센터.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이번 주 월요일(8일)부터 한미연합훈련이 한창입니다. 한미연합 지휘소훈련(CCPT)이라고 하는 올해 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용산의 합동참모본부 지하 벙커, 과천의 수도방위사령부 B-1 문서고와 성남의 미군 CP 탱고 벙커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연합훈련 때마다 전차들이 움직이고 해병대원들이 상륙하는 모습을 TV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료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2019년부터 대규모 실병(實兵)기동훈련 또는 야외기동훈련(FTX)을 하지 않고 지휘소훈련(CPX)만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일선 부대에서는 여전히 FTX 연합훈련을 하고 있긴 하지만, 군 당국은 이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3년 동안 계속되다 보니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연합훈련이 '컴퓨터 게임'처럼 돼 간다는 논리가 대표적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워게임'에 정치경제 시나리오 등 결합해 '한반도 전구급 군사작전' 재현

지난 2013년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 연합훈련 당시 대구 캠프 워커의 미8군 벙커에서 훈련하고 있는 한미 장병들.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워게임(war game)'은 부대가 실제로 움직이지 않고도 지휘절차 등을 배우기 위한 도상(圖上) 훈련에서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마치 보드게임처럼 지도판 위에 말 등을 가져다 놓고 했다면, 요즘은 컴퓨터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고 합니다. 군에서 CPX를 할 때도 이 워게임 방식을 통해 부대 지휘절차를 훈련합니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각각의 유닛이 일정한 체력과 공격력, 방어력 등을 가지고 전투를 벌이는 방식이죠. 워게임도 기본 원리는 비슷합니다. 아군과 적군(북한군)의 전력과 장비 등 전투력을 디지털화해서 입력한 뒤, 컴퓨터로 재현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죠. 실제로 과거에는 우리 공군이 손 빠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프로게이머들을 전산특기병으로 모집해 워게임 테스트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우리 육군에서 통상적으로 실시하는 워게임 방식의 전투지휘훈련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뤄집니다. 먼저 사령부와 군단, 사단과 여단 등 장성급 장교들이 지휘하는 큰 규모의 부대를 편성합니다. 이러한 큼직큼직한 부대들 밑에는 각각 기동(공격과 방어), 군수, 정보, 포병 등의 기능을 맡는 단위인 '셀(cell)'들이 편성되죠.

각각의 셀에는 통제장교와 함께 이를 조작하는 현역 군인 '게이머' 여러 명이 투입됩니다. 훈련 상황에서 지휘관이 부대 운용에 대한 결정(지휘결심)을 내리면, 통제장교를 통해 이를 전달받은 게이머들은 자신이 할당받은 셀의 단위 부대를 조작해 이동이나 공격 등을 하도록 한 뒤 결과를 보고합니다. 보고 자체도 게임과는 달리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하네요.

우리 육군이 워게임용으로 쓰는 모델은 '창조21'이라고 하며 군단급 전투를 재현할 수 있고, 해군의 경우 '청해', 공군은 '창공', 해병대는 '천자봉'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더 복잡하지만, 간단히만 설명드리면 이러한 워게임 모델들을 미군 모델들과 연동시키고 규모를 한반도 전구(theater) 단위로 확대, 한미연합사령부가 작전통제하는 전면전 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는 것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CCPT입니다.

전쟁은 항상 정치나 경제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여러 상황을 가정해 주는 MSEL(Master Scenario Events List)이라는 것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유사시를 대비한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 5015에는 북한의 급변사태 등을 가정한 여러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훈련용 시나리오를 만들어 CCPT에 활용하죠. 통상적으로는 1부가 '방어', 2부가 '반격'과 평가로 이뤄진다고 합니다.

◇비용 절감과 다양한 시나리오 가정, 외교 문제 방지 등 CPX도 분명한 장점

지난 2015년 키 리졸브(Key Resolve) 연합훈련 당시 성남 CP 탱고 벙커를 방문한 레이먼드 오디어노 미 육군참모총장.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언뜻 생각해 보면 실제로 병력들이 움직이며 훈련하는 FTX가 가장 효과적일 것 같지만, 사실 CPX만의 장점들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우선 비용이 적게 들고, 시끄럽기로 소문난 군용 장비들의 대규모 기동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민원에서 자유롭습니다. 만약의 만약을 대비해서 훈련을 하긴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훈련장에서 재현하자니 좀 까다로운 정치적 상황과 같은 여러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해볼 수도 있고요.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FTX의 성격상 초래될 수 있는 외교 문제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FTX를 하려면 작전계획에 따른 부대 기동을 위해 식량과 연료 등 각종 자원이 필요한데, 여기에 실탄까지 지급하면 전쟁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 직전에 병력을 집합시키면서 '훈련' 핑계를 댄 뒤 실제론 '침공' 작전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거죠.

한 예로 1983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에이블 아처' 훈련은 선제 핵공격으로 시작되는 전면전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는데, 소련군은 이 훈련이 눈속임이고 실제로는 NATO가 자신들을 침공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해 삼엄한 경계태세에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한미연합훈련 때마다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과거 팀 스피리트(Team Spirit)나 독수리(Foal Eagle) 등 대규모 한미연합 FTX 때마다 북한군은 전시에 준하는 경계태세를 발동하고, 이른바 '북침 위협'에 맞대응한다며 훈련을 하느라 엄청난 자원을 소모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그런 일은 없었으며, 1990년엔 이런 훈련들이 방어적인 성격임을 강조하기 위해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아예 북한에 훈련을 참관하라고 제안한 적도 있었죠.

북한은 가장 최근인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뿐만 아니라 수십년 전부터 연합훈련 중단을 계속해서 요구해 왔습니다. 한미는 지난 2018년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화 분위기가 성사되자, 이듬해부터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한다며 대규모 연합 FTX(독수리 훈련)를 중단했고요.

국방부 부승찬 대변인은 지난 11일 정례브리핑에서 "연합훈련은 통상적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지휘소 훈련이 주가 됐었고,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고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일관되게 해 왔던 훈련이다"며 "야외기동훈련은 특정 기간에 집중하지 않고 연중 분산해서 균형되게 실시하고 있으며, 독수리 훈련 때 했던 기동훈련도 일부 포함해서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선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한미연합훈련을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훈련 자체는 FTX와 함께 시행됐을 뿐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꾸준히 해 왔습니다. 장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비핵화 협상 교착 3년째, '대규모 FTX 재개' 목소리도…"문제 있다는 지적 타당"

지난 2015년 독수리(Foal Eagle) 연합훈련에서 공중강습 기술을 숙달하고 있는 한미 장병들.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그런데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협상 상황이 별로 나아지고 있지 않은 데다, 전투준비태세 약화를 막기 위해 대규모 FTX가 다시 필요하다는 비판적인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군인의 기본 책무는 전쟁에 대한 억지와 함께 유사시 싸우기 위해 땀 흘려 훈련하는 것이니까요.

한미연합사 연합연습장교, 국방부 대미정책과장, 연합사 부참모장(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직) 등을 지낸 전인범 예비역 중장은 "CPX의 경우 예산이 절감되고 기상이나 주변여건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FTX를 통해 참모들의 계획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지 여부와, 지휘관과 참모들이 계획을 시행할 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대비태세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면서 생길 수 있는 시행착오 등을 몸으로 겪으면서 배워야 유사시 일어날 수 있는 실전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국군이든 미군이든 직업군인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생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크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의견들도 나옵니다. 지난해 8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 지휘관들의 연합∙합동훈련은 항상 컴퓨터를 통해 이뤄지고, 야외훈련도 계속되고 있다"며 "이전만큼 야외훈련에 대해 말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밀러 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도 "야외훈련 부족으로 한미연합 준비태세가 약화될 수 있지만 한미 양국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로 한미연합훈련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해도 우려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고 하고요.

군 관계자는 "대규모 FTX를 할 때와 현재를 비교하면 훈련의 효과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방위태세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FTX 중단 때문에 생기는 단점보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외교적 성과가 더 크다는 판단이 들면, 정부 입장에서는 감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군이 국가의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해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 대한 지적 또한 타당한 점이 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FTX의 필요성 자체는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전인범 장군은 "FTX를 하지 않는 대신 (1년에 두 번 하는) CCPT 횟수를 늘리는 방법을 고려하면 어떨까 한다. 연합사의 기본 임무인 연합훈련이 정치화되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며 "전구급 FTX는 필요하기 때문에, 북한을 설득하고 연합훈련이 방어적 성격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의 전구급 훈련도 종합적인 협상의 대상으로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과연 대규모 FTX 없는 연합훈련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이끌어내면서도 연합방위태세를 제대로 확립할 수 있을까요.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한국군 주도의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위해서라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 등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현명한 해법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이 다음 주 미국 국무∙국방장관을 상대로 하는 '2+2' 회의 등에서 우리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고, 지금과 같은 상황을 보완할 대안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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