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박근혜도 최순실도 '무죄'…강요죄 왜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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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강요죄 피해자 맞냐"…엄격한 판단
'해악의 고지' 해석, 평균인 시각 벗어나 '비판'도

좌측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최서원)씨.(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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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0. 박근혜 전 대통령 파기환송심 선고
재판장 "피고인 안나오셨죠?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 한다고 사유서를 냈습니다. …(중략)… 오늘 판결에서는 대법원 파기 취지를 반영해…강요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일부 범죄사실에 관해서 당심에서 직권으로 일부 부분에 대해 무죄를 하게 됩니다. 강요죄의 대부분이 무죄가 되는 것이고요. 블랙리스트 공소사실 중 (직권남용을 제외한) 강요죄 부분이 무죄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 10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파기환송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총 형량은 징역 30년에서 20년으로 줄었습니다. 여전히 장기이긴 하지만 단번에 10년이나 줄어든 것이죠.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연령이나 개인이 취득한 이득은 크지 않다는 점 등의 양형사유를 들긴 했지만, 강요죄 대부분이 무죄로 바뀐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당초 박 전 대통령의 공소장에 적시된 강요·강요미수 혐의는 15건에 달했는데, 이번 파기환송심에서 13건에 대해 무죄 선고가 나왔습니다. 앞서 1심에서는 딱 1건을 빼고 모두 유죄(일부유죄 포함)였었는데 완전히 뒤집어진 거죠.

'갑질'이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을 만큼 강요 범죄는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보입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공소사실도 쉽게 말하자면 대기업들이 특정 업체(최서원 관련 회사)에 대한 투자를 하고 이권을 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갑질'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은 이 '갑질'이 형법상 강요죄가 되기 위한 요건을 상당히 엄격하게 제시했습니다. 잠시 강요죄에 대한 기존 대법원의 해석을 보겠습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1995~2013년 강요죄 관련 대법원 판례(박근혜 파기환송심 판결문 발췌)
"강요죄(형법 제324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이다. 여기에서 협박은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

"협박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 해악의 고지는 반드시 명시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어떠한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면 충분하고, 제3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대법원은 "협박을 받는 사람이 공포심이나 위구심을 느낄 정도의 해악을 고지했는지 여부는 행위 당사자 쌍방의 직무나 사회적 지위, 강요된 권리·의무에 관련된 상호관계 등 관련 사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박 전 대통령의 한 마디는 난다 긴다 하는 재벌 총수들에게도 넉넉히 '강요'가 될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재정·금융·고용·산업 등 각종 경제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최종 결정하고 행정 각부에 직·간접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지위는 그 자체로 '위력'이니까요.

그러나 지난해 8월 대법원은 강요죄 법리를 기존보다 더 엄격하게 해석해 '대통령의 한 마디'가 강요일지 협의가 될지는 상대방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한 상대방(강요죄의 피해자)에게 어떤 이익을 요구했을 때 상대방도 어떤 대가를 바라고 그 요구에 응했다면 이는 해악의 고지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상대방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하는 행위가 수반돼야 '강요'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박 전 대통령의 요구 행위가 대기업 회장 등을 독대한 면담 자리에서 이뤄지긴 했지만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해악에 이를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할 만한 언동이나 상황'은 알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또 이처럼 '두루뭉술한' 뇌물 요구를 들은 대기업 총수들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직무행위를 매수하려는 의사로 적극적인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강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거죠.


이 판단에 따라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사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문화부 블랙리스트 의혹, 최씨 조카 장시호씨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기업 압박 사건 등에서 강요죄는 줄줄이 무죄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같은 범죄사실에 대해 강요죄가 아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나 뇌물죄 등이 적용돼 대체로 중한 처벌은 받게 된 상황입니다.)

(표=정다운 기자)

이처럼 대통령의 위력이 있어도 쉽게 성립되지 않는 강요죄가 최근 언론의 잘못된 취재행태를 꼬집는 근거로 호출되고 있습니다. 채널A 이동재 전 기자가 재소자를 상대로 회유를 가장한 압박성 취재를 한 사건입니다. 여기에 이 전 기자가 한동훈 검사장과 사전에 모의했다는 의혹도 제기되면서 앞서 국정농단 사건과 비슷하게 민간인과 공무원, 피해자가 삼각형을 이루는 구도가 됐습니다.

이 전 기자가 이철(수감중)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에게 쓴 편지의 표현들을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로 볼 수 있을지. 이 전 기자의 편지를 받고 공포감을 느꼈다는 이철 전 대표 역시 이 전 기자와의 교류로 내심 바라는 바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등이 유무죄 판단의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다만 지난해 대법원 판단 중 소수의견도 기억해두고자 합니다. 박정화·민유숙·김선수 대법관은 강요죄에서 말하는 해악의 고지(협박)를 너무 엄격하게 보는 것은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 반하고 그 결과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2019.8.29.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결 소수의견(박정화·민유숙·김선수 대법관)
"'해악의 고지'는 구체적인 사정을 두루 참작해 판단해야 하고 개별적인 사정을 단편적으로 보아 판단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일관된 판시 사항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의 경우 그 요구 행위자가 상대방에게 직무상 또는 사실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문체부 제2차관이라는 것에 더해 각 사안별 사정을 종합해 보면 그 요구는 묵시적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묵시적 해악 고지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요구 당시의 상황과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의 국정운영 방식과 사회분위기 그리고 이에 대한 평균적인 사회인의 인식 등을 감안해야만 한다.

오는 5일 이 전 기자의 구속수사 기한 만료를 앞두고 검찰은 이 전 기자를 재판에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법원은 이 전 기자의 취재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요? 최근 들어 자주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언론의 취재 관행도 심판대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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