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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은 못 막고, 귀환 뒤엔 고문" 어부들이 묻는 국가의 책임[법정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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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납북 귀환 어부' 국가 손배소 항소심
1심 "국방력 부족"…항소심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정면 충돌
고문·사찰까지 이어진 국가폭력…"입증책임 국가가 져야" 주장
"납북은 막지 못했으면서 귀환한 사람들 고문할 힘은 있었나"

지난달 30일, 납북 귀환 어부들과 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변론기일에 참여하기 위해 강원 춘천고등법원 앞에 모였다. 주보배 기자지난달 30일, 납북 귀환 어부들과 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변론기일에 참여하기 위해 강원 춘천고등법원 앞에 모였다. 주보배 기자
4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앞. 머리가 희끗해진 어부들이 하나둘 모였습니다.

'원고'인 어부들은 일찌감치 법원에 도착해, 햇빛을 피해 정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썬글라스를 벗은 임복남(73)씨가 먼저 입을 엽니다.

"판사 앞에서 내가 겪은 걸 직접 다 얘기해서 듣게끔 하고 싶어. 나는 진화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조사받고 여러 가지 했는데, 그 책자에 나온 거는 진짜 이만큼밖에 안 적혀져 있어 가지고…난 너무 억울해."

잠시 말을 고르던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나는 형 집행은 안 받았지만서도… 너무 심한 고문을 받았어요."
 
건너편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어부 김춘삼(70)씨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책자에는 우리 이야기가 100% 다 적히지 않아요. 여기 있는 우리 선원들은 다 그렇지."
 
어부들은 책 한 권으로도 다 담지 못할만큼 많은 일을 겪었지만 삶을 관통하는 몇 가지 단어는 있습니다. 어부, 납북, 귀환, 고문, 그리고 국가입니다.

이들은 1970~80년대 동해에서 조업 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돌아온 어부들입니다. 귀환 직후 수사기관에 의해 장기간 구금돼 조사를 받았고, 일부는 고문 속에서 허위 자백을 강요당해 간첩 혐의로 처벌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엔 오랜 기간 사찰과 감시가 이어졌습니다.
 
사건 발생 수십 년이 지난 뒤 이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납북을 막지 못한 국가의 책임과 귀환 이후 이어진 국가폭력 전반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오늘 법정B컷은 납북 귀환 어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항소심 변론기일이 열린 재판정으로 가봅니다.


"납북 막을 수 없었다"는 국가…항소심선 "능력 있었다" 반대 의견

김춘삼씨는 1971년, 15세에 어선 '제2승해호'에 승선했다가 동해상에서 북한에 납치됐습니다. 그는 북한에 약 1년간 억류됐다가 귀환한 뒤, 수사기관에 의해 불법 구금과 조사를 거쳐 간첩 혐의로 처벌됐습니다.
 
임복남씨도 마찬가집니다. 1980년, 27세에 어선에 탑승했다가 속초 바다에서 북한에 끌려갔습니다. 그 역시 약 8개월 간 억류됐다가 귀환한 뒤 수사기관의 고문을 받았습니다.
 
손배소의 핵심 쟁점은 납북 당시 국가의 책임입니다.
 
원고인 어부들은 "국가가 최소한의 경비·구조 조치를 다하지 않아 납북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고인 대한민국 측은 "당시 해상 국방력과 경비 여건상 이를 방지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심을 담당한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은 피고 대한민국이 원고 김춘삼씨에게 당초 청구 금액 3억4400여만 원 가운데 22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도 1심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아래와 같이 판시했습니다. 어부들이 납북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보지 않은 것입니다.
▶'납북 귀환 어부' 국가 손배소 1심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판결(23가합30538)
즉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배려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보호 의무의 정도, 방법 등은 국가의 정치, 경제적인 제반 여건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점, 당시 피고는 해군 군함, 해경 경비함, 어업지도선 등을 배치하여 어선 등을 보호하려고 하였던 점, 그러나 1950~1970년대에 피고의 해상 국방력이 상대적으로 강하지 못하여 그 한계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때에 어느 장소에서 어선 납북이 발생할지를 예견하기가 쉽지 않았고, 따라서 이를 회피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에도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와 그 소속 공무원들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원고 김춘삼을 보호하여야 할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였다거나 그 부작위 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이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쟁점이 제시됐습니다. 

재판부가 군사전문가인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의견을 받은 겁니다. 문 전 교수는 "당시 대한민국이 북한의 어선 납치를 막을 능력이 없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문장렬 전문심리위원의 답변서 <1960~1970년대 한국과 북한의 해군 군사력 비교>
어선납북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71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한국해군이 북한해군에 비해 전체적으로 열세였다는 주장은 일부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 단독의 해군력 비교는 크게 의미가 없으며 남한의 군사력(해군력 포함)은 한미연합 전력을 포함한 전쟁수행능력을 평가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한미연합 해군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했다고 봅니다.
 
사실은 남북한 해군력 전체를 비교하는 것보다 국군의 국민 보호책임을 수행할 만한 전력과 의지를 보유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호를 위한 군사작전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설령 그렇더라도 전쟁수행능력은 한미 연합전력이 북한을 압도했습니다.
 
한국해군은 1971년 기준 보유 함정과 장비가 동해상에서 북한의 어선납북을 저지하고 심지어 구출할 정도의 능력은 갖추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또한 해상 군사연습이 상당한 빈도로 실시되고 있었으며 납북상황에서 무전기 등을 사용한 통신이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인근에서 항행중인 함정이 즉각 대응하거나 가장 가까운 묵호항에서 즉각 출동하여 피랍중이 어선을 구출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즉, 한미연합 전력과 실제 작전 능력을 고려할 때 어선 납북을 저지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는 것이 전문심리위원의 판단입니다.

지난달 30일, 납북 귀환 어부들과 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변론기일에 참여하기 위해 강원 춘천고등법원 앞에 모였다. 주보배 기자지난달 30일, 납북 귀환 어부들과 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변론기일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앞에 모였다. 주보배 기자

"국민 지킬 힘은 없지만 고문할 힘은 있었나"…어부들의 절규

하지만 피고 대한민국은 어부들이 북한에 납치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귀환한 어부들에게 돌아온 건 위로가 아닌 폭력이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춘삼씨는 북한에 납치돼 조사를 받은 뒤 금강산과 산업시설 등을 견학하고, 체제 우월성을 주입하는 이른바 '사상교육'을 받았습니다.
 
약 1년 뒤, 그는 무사히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고국에서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납북 귀환 어부' 국가 손배소 1심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판결(23가합30538)
원고 김춘삼을 포함한 대다수의 납북 귀환 어부들은 합동신문 초기부터 철야신문을 받고, 북한을 찬양했으며 특별지령을 받았다는 진술을 강요당하며 가혹행위를 당했다. 구체적으로 원고 김춘삼은 조사를 받을 때 주먹으로 맞고, 전기 고문을 받으며, 고춧가루 탄 물을 얼굴에 부어 숨을 쉬기 어렵게 하는 고문 등을 당했다.
임복남씨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고 임복남씨 진술서
어느 날 밤에 권총을 들고 들어와서 '꼼짝 마라'하고 녹음 테이프 일기장과 메모지를 몽땅 수거하고 수갑을 찬 채로 보안대로 끌려갔다. 끌려간 날 "임복남, 여기에 무엇 하러 왔는지 알지?"라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군화발로 짓밟았다. 그리곤 '저 새끼 잠 재우지 말라'고 하여 나는 무서움에 잠도 못 자고 삼일 째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신문이 시작되면서 계속 매를 맞고 폭력에 시달렸다. 평생 처음 당하는 고통이었다. 손발을 묶어 파이프에 끼워서 짐승처럼 메달고 물고문을 시켰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손가락에 젖은 솜으로 감은 다음 전깃줄을 감았다. 그리곤 나는 계속해서 악, 악, 악 소리만 질렀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가운데 소리가 들려 왔다. "야 한 번 더해." 그러자 "더하면 위험합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이 고문은, 이들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고통 끝에 김춘삼씨는 허위 자백을 했고, 1972년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후 일부 무죄 판단에도 불구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간첩'이라는 낙인이 남았습니다.
 
항소심 변론기일이 열린 재판정에서 김춘삼씨는 직접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1심 판결을 다시 봐달라고 호소했습니다.
▶26.04.30 납북 귀환 어부 국가 상대 손배소 변론기일 원고 김춘삼씨 최종 변론 발언 중
우리가 국방력이 약해서 납북된 건 법리적 모순입니다. 국방력이 약해서 납북은 막지 못했다면서, 귀환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처벌할 힘은 있었습니까. … 이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즉, 북한이 국민을 납치하는 것을 막을 '힘'은 없었으면서, 돌아온 국민을 고문할 '힘'은 있었냐는 항변입니다.
 
귀환한 어부들의 지옥은 고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어부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고통, 바로 '사찰'이었습니다.
 
김춘삼씨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18세 무렵, 친구가 유치장에 갇혔다가 풀려난 뒤 이런 말을 전해줬습니다. "김춘삼에 대한 정보를 넘기면 풀어주겠다고 하더라."
 
그 뒤로는 일상 곳곳에서 감시의 흔적이 이어졌습니다. 삼척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시절, 숙소에서 잠을 자던 그는 무장 군인들에게 끌려나와 총구를 겨눈 채 서울 서빙고 조사실로 압송됐고, 사흘간 조사를 받았습니다.
 
1983년에는 함께 일하던 선장으로부터 "해경 정보과에 활동비를 받고 네 동향을 보고하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속초에서 생활하던 시기에는 집주인이 "모르는 사람들이 집에 들락거린다"고 묻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에게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마다 확인해야 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2001년, 어렵게 집을 마련했을 때는 보안과 형사가 찾아와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도 감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경찰 후배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관리 대상' 명단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고, 퇴직을 앞둔 정보과 형사가 과거 자신을 추적해왔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입 닫은 '피고' 대한민국…어부 "기억들은 소설 아닌 현실"

지난달 30일 이들의 국가 손배소 항소심 변론기일이 열린 재판정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원고 측이 요구한 증거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손배소의 입증 책임은 본래 '원고'에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손배소의 경우는 조건이 조금 달라집니다. 원고 측은 "국가가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증 책임을 원고에게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가 이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재판부 역시 사건의 성격을 고려해 해법을 고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주심 판사는 "제기된 주장들은 잘 살펴보겠다"면서도 "다른 사건들과 함께 사회적 해결이 가능한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법리 판단을 넘어, 위자료 수준이나 조정 가능성 등을 포함한 '화해 권고'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민사 소송에서 '화해 권고'란 법원이 당사자 간 분쟁이 합의로 해결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직권으로 화해를 권고하는 절차입니다. 화해권고 결정문이 송달된 뒤 2주 동안 이의 제기가 없으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합니다.

수십 년 전 바다에서 납치됐던 소년들은 이제 노인이 됐습니다. 열다섯 소년이었던 김춘삼씨는 이제 일흔살 노인이 되어 법정에 섰습니다. 국가의 책임을 물었던 그는 재판부를 향해서도 '법은 정말 이 시대에 정의로운가'를 묻고 있습니다.
▶원고 김춘삼씨 진술서 일부
존경하는 재판장님. 1972년 11월 24일 어느 법정에서 법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은, 그 당시 법 집행이 정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그 소년은 없고, 이제 그 자리에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 남기고 인고의 세월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로 살아온 내가 여기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당시의 법의 집행자(경찰, 정보부, 보안사 등)들의 만행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정당한 행위인진 몰라도, 조사 받으면서 구타 당하고 고문 받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서로에게 위로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의 악몽이자 지옥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차례는 내가 구타 대상이자, 고문 대상이기 때문이죠.
 
존경하는 재판장님. 살아 존재하는 원고의 글을 믿어주세요. 지금의 기억들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중략) 존경하는 재판장님. 법은 정말 이 시대에 정의로운가라는 물음표를 갖게 되는 이 시절입니다. 아무튼 이유야 어떠하든 나의 사고방식으로는 동의하진 않지만 그래도 독립된 사법부의 판결에 관해서는 존중합니다. 법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납북을 막지 못한 국가, 돌아온 이들을 고문한 국가, 그리고 오랫동안 감시해온 국가. 이제 그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법정이 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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