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30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4.27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비판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회담 전부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홍 대표는 30일엔 "우리 안보의 자발적 무장 해제"라고 혹평했다.
홍 대표의 발언이 남북 관계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여권에 요구하는 것을 넘어 비난 일변도로 흐르자 다른 야당 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식의 비판론도 감지된다.
특히 여론에 민감한 지방선거 주자들을 중심으로 지도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분출하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이대로 가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홍 대표는 이날은 따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회담 결과는 우리 안보의 자발적 무장 해제에 다름이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겠다고 합의를 해줬다. 앞으로 북한이 선언을 지키라고 시비를 걸면 한미 군사 합동훈련을 비롯한 군사훈련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비정상적인 남북 정상회담 합의가 이뤄진 이면에 북한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번 정상회담 선언문의 1조 1항은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한다는 내용인데, 우리 민족끼리로 표현되는 민족 자주의 원칙은 북한의 대표적인 통일 전선 전략이자, 한국 내 주사파들의 이념적 토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적으로 보면 우리 민족끼리 단합하고 힘을 합쳐서 미국 문제를 풀자는 것이 이번 선언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홍 대표는 회담 전날인 지난 26일엔 일본 아사히 TV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김정은의 위장 평화 쇼를 나는 믿지 않는다"며 "한국 여론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계층은 좌파들뿐이고 우파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27일엔 페이스북에 "김정은과 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라고 재차 비난했고, 28일엔 "미국은 이런 류의 위장평화 회담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9일엔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 번 속으면 그 때는 공범"이라며 "여덟 번을 속고도 아홉번 째는 참말이라고 믿고 과연 정상회담을 한 것인가"라고 밝히면서 하루도 빠짐 없이 정상회담 결과를 깎아내렸다.
이렇다보니 북미 회담 결과까지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기조의 바른미래당에서조차 비판론이 터져나왔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렵사리 틔운 한반도 평화의 싹을 위해 한국, 북한, 심지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정부도 모두 힘을 합치고 있다"면서 "유일하게 홍 대표만 갓 피어난 싹까지 짓밟아버리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하 최고위원은 나아가 "홍 대표는 평화의 적"이라며 "홍 대표의 정계 퇴출을 위해 정치권이 힘을 모을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의 '매일 강경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당내에서도 나온다. 광역단체장급 지방선거 주자들이 연일 홍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남북 관계 만큼은 '당 따로, 후보 따로'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인천시장 재선에 도전한 한국당 소속 유정복 시장은 30일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한국당 지도부는 정신 차리고 국민의 언어로 말하라"고 했다. 그는 "홍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며 "특히 남북 정상회담 관련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몰상식한 발언이 당을 더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대표의 시각이 여론과 유리돼 있다는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재선에 도전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평화선언은 무의미하다"면서도 "평화를 향한 여정은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님, 수고하셨다"고 응원 글을 남겼다.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 역시 "남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환영한다"며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완전한 평화도 없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론 홍 대표와 주자 간 엇갈리는 시각이 드러난 셈이지만, 지역 정가로 한 걸음 들어가보면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캠프 관계자는 "(홍 대표가) 도움은 못 줄 망정, 표는 갉아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보통 지방선거에선 당의 얼굴인 당 대표를 지역에 모시려고 하는 게 정상인데, 이번 선거에선 '좀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밝혔다.
홍 대표와 함께 강경론을 펼쳐온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에 미묘한 기조 변화가 이뤄진 것도 이 같은 당내 여론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김 원내대표는 긴급 의원총회에서 "비록 문재인 정권이 이번 회담도 (결과 발표를) 쪼개팔기 하며 광을 팔고 있지만, 국회에서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용의도 있다"고 말해 기존보다 온건한 입장으로 선회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편에선 홍 대표의 마이웨이식 강경론을 두고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한 관계자는 "안보, 북한 문제는 보수진영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대체적인데, 이번 회담으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인식이 번질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이는 진영의 위기와 직결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안보 주도권은 보수진영의 핵심 정치 동력이기에 홍 대표가 배수진을 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