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가 통째로 망가진 사태였다. 시민들은 국민이 뽑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 노릇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졌고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CBS노컷뉴스는 3차례에 걸쳐 '최순실 게이트'가 우롱한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시민들의 분노는 결국 '국민 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가 짓밟혔기 때문이다.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은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분노한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 '짝통 박통'에 사라진 국민 주권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지난 29일 서울 청계과장에서 2만개의 촛불이 타올랐을 때 시민들은 '국민 주권'을 외치고 나섰다.
시위에 동참한 대학생 정모(24) 씨는 "내가 대통령에게 투표로 이양한 권력을 한 일반인이 쥐고 있었다"고 말했고 이날 발언대에 오른 한 대학생은 "최순실은 선출 받지 않은 권력이고 최순실은 대통령의 권력을 그 옆에 붙어서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은 소위 '진보진영' 만은 아니었다. 한자리대까지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이 이를 뒷받침했다.
경북대, 영남대, 부산대 등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TK(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시국선언은 불 번지듯 일어났고 콘크리트 같던 50대의 대통령 지지율은 10%에 미치지 못했고, 60대 지지율은 20% 언저리로 급락했다.
진보진영 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지지율로 박 대통령을 떠받쳤던 보수진역도 돌아선 셈이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여당-야당'이나 '보수-진보' 등 진영 싸움이 아닌 국민의 권리를 통째로 앗아간 사태기 때문이었다.
◇ 민주주의 원리 무시하는 비선(秘線) 실세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60, 개명 후 최서원) 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사진=박종민 기자)
'비선 실세',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권력의 실제 주인이라는 뜻이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최순실 씨는 대통령의 비선 실세였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맘껏 누렸다.
국민이 투표로서 행사한 주권을 국민이 존재조차 몰랐던 최순실이라는 개인이 행사하고 있었던 것.
앞서 최 씨가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되기 시작하던 당시, 청와대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설립에 관여했고 그 가운데에 최 씨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당시만 해도 시민 사회는 들끓지 않았다.
그러나 최 씨가 실제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가 쥐고 있던 권력이 바로 국민들에게서 나온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대통령과의 사(私)적 친분을 이용해 공(公)적 권력을 이용했다. 시국선언에 나섰던 한 서강대학교 학생은 "권한 없는 사적 의사 결정이 국가의 공적 의사결정을 대체했다"며 "국가의 '시스템'은 초라하게 무너졌다"고 개탄했다.
◇ 망가진 '시스템' 보여준 '최순실 게이트'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민주주의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터졌지만 누구도 이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국민들은 오히려 거짓말만 늘어놓는 대통령을 보며 한층 더 분노할 뿐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재묵 교수는 "최순실게이트를 볼 때 국민 주권의 원리가 작동하는지,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답을 낙관할 수 없으니 국민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의영 교수는 "국민이 뽑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민주주의"냐며 "현재의 민주주의는 훼손되고 비정상적인 민주주의"라고 한탄했다.
이어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릴 수도, 안되면 법을 통해 처벌할 수도, 그것도 안 되면 여론을 통해 압력을 행사할 수도 없으니 민주주의 국가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어떤 체계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어이 없고 그야말로 패닉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