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의 일상화, 부동산 경기 침체, 증시 급락… 암울한 경제상황 아래 재산증식 방법을 찾지 못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유사수신업체들의 사기행각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유사수신은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들을 양산하게 하고 유지되는 동안에는 피해자들이 오히려 유사수신업체를 옹호토록 만든다는 점에서 공포영화의 '좀비'같이 사회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CBS 노컷뉴스는 6~9일까지 유사수신업의 실태와 근본대책을 보도한다. [편집자주]"기자님은 이렇게 속은 제가 바보 같으시죠? 하지만 그 사람들 얘기 들으면 어디까지가 맞는 말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어서… 그저 다 맞는 말인 것 같단 말입니다"
회사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정모(60)씨.
예순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가상 전자화폐라는 '힉스 코인'에 투자한 건 지난 2월, 회사 동료의 달콤한 제안이 화근이었다.
"동료가 좋은 투자처가 있는데 돈 몇 푼 잃어버렸다 생각하고 맡겨보자고 하더라고요. 결국 그 친구도 한 60만원 손해 봤어요"
업체 측은 힉스 코인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세운 국영 기업인 안난그룹이 만들고 국책은행 '호이진 센트럴시티'가 발행해 곧 시장에 통용할 전자화폐라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가 각종 해외송금은 물론, 중국인이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현금 대신 힉스 코인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진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업체 측이 중국 힉스코인 발행 책임자라고 주장하는 에디자오 총재와 힉스코인 임원.
"중국 에디자오 총재라는 사람이 힉스 코인을 만드는데 한국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나란히 G20 대회에 참석했다는 거에요. 고급호텔에서 업체 대표와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니 믿을 수밖에 없었죠"
업체 측은 통상 전자화폐와 달리 사두기만 하면 코인 스스로 양을 불리는 '분할형'이라며 일찍 살수록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 코인을 사면 3개월이면 10배, 6개월이면 100배가 된다는 거에요. 그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얘기해도 복잡한 해외 사례를 들어가며 1년 안에 무조건 오른다는 겁니다"
평생 일한 대가로 거액의 노후자금을 모았지만, 금융·IT 정보에 어두운 노년 서민은 유사수신업체들의 주요 범죄대상이다.
더구나 주변 지인이 투자하면 관련 수당을 지급하는 다단계식 영업 수법에 너도나도 가족, 친구를 끌어들였다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기 십상이다.
"사무실에 가보면 나이 드신 분들, 은퇴자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6, 70대고 저는 오히려 젊은 축이라 커피 타드려요. 그분들도 의심은 가는데 컴퓨터도 잘 모르고, 돈까지 묶였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죠"
하지만 "다음 달이면 전 세계에 전자화폐 거래소가 정식 개장하고, 거액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던 힉스 코인의 약속은 여름이 가고 겨울이 되도록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불안해진 정씨가 투자를 포기하고 원금만이라도 돌려달라고 하자 업체는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피해자에게 고수익을 보장하며 투자를 권유하는 힉스코인 관계자
"고발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땅 파서 사업하느냐, 수당 주고 사무실 운영하는데 어디서 돈 나오냐는 식이에요. 이게 사기꾼이 아니고 뭡니까"
정씨는 각종 명목으로 투자금 가운데 25%를 떼이고 90여만원만 돌려받았지만,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수천만원씩 투자했어요. 경남 진주에서는 은퇴한 교장 같은 분들이 주변 사람 돈까지 모아서 십수억씩 투자하고 서울까지 올라와서 설명회를 듣고 가더라고요"
사기를 당했다고 법에 호소하려 해도 "정상적으로 투자 중이고, 단순히 사업이 지연될 뿐"이라고 우기는 업체를 상대로 법정 투쟁까지 벌이기는 쉽지 않다.
경찰·검찰이 수사하려 해도 피해자가 수천, 수만여명에 달하는 데다 다단계 수법 때문에 피해자·피의자가 쉽게 구분되지 않는 점도 수사의 발목을 잡는다.
힉스 코인의 경우에도 일부 피해자들이 검찰에 고발했지만, 업체가 피해 금액 일부를 되돌려주면서 합의한 바람에 수사가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조성목 서민금융지원국장은 "저금리 추세가 오래 되다 보니까 퇴직한 노인들이 노후자금을 마련하려 이러한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며 "심지어 투자자가 불법인 걸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 단기적 수익에 투자하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했다.
조 국장은 "불법 유사수신업체는 사전에 단속하거나 조사하기 어려운데다 피해자가 잃은 투자금을 정부가 보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내 재산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