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설파해 작금에 정치권,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화두가 '싸가지 없는 진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이 강준만 교수의 비판을 받아들여 "품격있는 정치로 바꿔야 한다"며 "진보는 싸가지 없다는 이미지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는 자기 확신이 배타성으로 발전해 야당의 기반마저 좀먹고 있다는 지적에도 꿈쩍 않던 친노의 좌장이라는 문재인 의원이 자기고백을 한 것이다.
문 의원은 28일 새정치연합 소속 광역의원 70여 명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1년 내내 당을 완전히 바꾸는 혁신을 해내지 못하면 집권은 불가능하다. 총선과 대선은 이길 수 없고 당의 존립조차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또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내다본 정치적 '혜안'으로 읽힌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올 7.30 재보궐선거 이전만 해도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던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패배의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계파와 싸가지 없는 진보의 민낯이 세월호 특별법 합의 과정에서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2016년 총선의 100석 달성도 어렵지 않느냐는 비관론이 상당하다.
심지어는 이 모습으로 내년 3월 전당대회를 치러 당의 새 얼굴을 내세우더라도 지지기반의 확대는커녕 지지도 바닥을 헤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어떤 정치평론가들에게 물어봐도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진보 성향의 정치학자인 최창렬 교수는 "이런 식으로 가면 단언컨대 야당의 집권은 어렵다"고 잘라 말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 간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분석이긴 해도 당을, 당원들을, 아니 새정치연합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환골탈태를 하지 않고서는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없다는 말도 숨기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텃밭인 호남에 가서 물어보면 새정치연합을 깨고 신당을 만들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한다.
차기 당 대표가 되겠다는 새정치연합의 그 어떤 중진 의원도 이런 기류를 알고 있으면서도 환골탈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내가 당 대표가 되면 달라질 것이라는 안이한 사고와 행동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문재인 의원만이 유일하게 싸가지 없는 진보 청산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싸가지 없는 정치인들과 가장 가깝다는 문재인 의원이 스스로 '진보는 싸가지 없다'는 강준만 교수의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라는 문재인 의원의 진단은 그래서 옳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주변의 친노 인사들을 내치라는 진언을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여러 차례 거절했다.
정세균 공동선대위원장도, 박지원 의원도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에게 측근들의 '자팽선언'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나 그때마다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997년 12월 초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이라는 동교동계 인사 7명은 그 어떤 임명직 공직에도 진출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자팽선언'을 해 큰 호응을 얻었다.
친노 인사들에겐 97년 동교동계 인사들만큼의 절박함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문 의원 주위에 포진한 인사들의 역량과는 별개로 국민은, 특히 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은 그들을 싸가지 없는 진보 그룹으로 보고 있다.
잘못된 선입견이 분명하지만 실상은 그렇다.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에서 한 정치적 언행을 좋지 않게 기억한 나머지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기류 때문이다.
억울할지라도 야당이 살기 위해서는, 문재인 의원이 당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사에서 살아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좀 빠져 있어야 한다.
문재인 의원이 그들의 우두머리처럼 행동해선 그의 "싸가지 없는 진보의 청산" 발언은 구두선에 그친다.
새정치연합의 정치인 가운에 가장 먼저 그런 류의 사람들과 결별을 해야 할 정치인이 문재인 의원이다.
그래야만 그의 정치적 미래가 있고 한쪽만의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정으로 부활한다.
문재인 의원이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주변 인사들의 교체다.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온, 측근에서 보좌해온 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과 비슷한 행동·사고방식과 헤어지거나 벗어나야 가능하다.
그래야만 새로운 인재들이 그의 주변에 모일 것이고 새로운 문재인을 만들어낼 것이다.
문재인 의원에겐 조국 교수 같은 진보 성향이 강한 교수들이나 친노 인사라는 딱지가 붙은 정치인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와 윤여준 전 장관 같은 개혁적 보수 인사이거나 합리적인 진보 인사들이 포진해야만 그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박영선 공감혁신위원장이자 원내대표가 안경환-이상돈 교수의 공동비대위원장 체제로 구성하자는 데 적극 동의해놓고서도 당내에서 비판론이 일자 발을 빼는 모양새를 보인 것은 '패착'이다.
그때 새정치연합이 싸가지 없는 진보를 청산해야 한다며 안경환-이상돈 교수라는 투톱체제를 밀어붙였다면 문재인 의원의 위상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486 운동권과 친노 성향의 의원들로부터는 비난을 받았을지언정 중도 진영과 40~50대들 사이에서는 '와~ 문재인이 변했다'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국민 여론도 그렇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안경환-이상돈 체제 구성안의 책임이 없는 것처럼 발을 뺐다.
이제 와 "싸가지 없는 진보 이미지 청산"을 외치며 당을 네트워크 정당으로 바꿔야 하고 오픈 프라이머리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 정치가 개혁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틀린 진단은 아니나 그런 정치개혁보다도 인적 교체가 가장 중요하다.
시스템 정비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새정치연합과 문재인 의원에게 필요충분조건은 인적 교체다.
지금과 같은 당의 폐쇄적 구조와 '동종교배'(친노이거나 운동권 출신들 위주)로서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 거물을 탄생시키지도 못할뿐더러 새누리당과 같은 역동성과 유연성을 가질 수 없다.
새누리당에는 가장 보수적인 김진태 의원(과거엔 김용갑 의원 등)도 있지만 이재오, 김성태, 김용태 의원 같은 중도 진보적인 의원들이 여럿 있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새누리당은 선거 때마다 당명 교체와 함께 탈색을 하며 국민을 현혹시킨다.
표를 얻기 위한 대단한 능력이다.
좋게 보면 국민의 변화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봐줄 수 있지만 야당엔 그런 역량조차 보이질 않는다.
만날 '동종교배'만 한다. 지난 2012년 4월 총선이 대표적이다.
그 많은 정치적 호재에도 언제나 새누리당에 질질 끌려만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정치연합 의원들 대부분이 개헌론에 바짝 다가가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식으로 가면 결코 집권 근처에도 가보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의식을 은연중 반영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한 야당 의원은 "우리가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자탄하며 "그래서 대안으로 분권형 개헌을 하자고 한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무능과 싸가지 없음이란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보는 결코 집권하지 못할 것"이라며 싸가지 있게 하는 진보여야 한다고 역설한 강준만 교수의 질타는 정곡을 찌른다.
적극 호응하고 나선 문재인 의원도 맞다.
그러나 그다음엔 뭘,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