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주민등록이 말소된 30대 여성이 영양실조로 숨졌다는 CBS 보도와 관련해 주민등록말소제도의 비인권성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주민등록말소자라 할지라도 ''기초생활보호번호제''를 통해 생계보장을 받을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실제로 이 제도는 현장에서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나모(30) 씨가 지난 27일 새벽 영양실조에 의한 폐기능 정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나 씨는 7여년간 폐결핵을 앓으며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주민등록말소 등의 이유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나 씨 같은 주민등록말소자에게도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부여해 생계보호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일선 동사무소들 ''모른다'', ''그냥 주민등록 복원하고 급여신청해라''실제 주민등록말소자라 할지라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을 수 있는지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 지역에 있는 15개 동사무소에 나 씨와 같은 사연을 얘기하며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해 봤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의 절반 가량은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의 경우 기초생활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나머지 절반 가량은 "그같은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행정절차가 까다롭고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냥 주민등록을 복원하고 생계지원을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주민등록말소자들에게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부여해 수급자로 보호하는 등 특별보호대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해명을 무색케 하는 답변이었다.
실제 혜택받은 주민등록말소자 최대 160명, 60만 주민등록말소자의 0.002%이 제도가 주민등록말소자들에게는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것은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부여받아 생계보호를 받는 주민등록말소자를 포함한 소외계층은 전국적으로 402명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는 주민등록말소자가 아닌 ''구룡마을''에 사는 비닐하우스촌 주민 240여명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실제 기초활보장번호를 통해 보호받는 주민등록말소자는 구룡마을같은 경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160여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60여만명의 주민등록말소자의 0.02%에 불과한 숫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연 보건복지부의 설명대로 숨진 나 씨가 용케 이같은 제도를 알고 이를 신청했다 하더라고 정부의 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주민등록말소자 현실 모르는 탁상행정의 소산그렇다면 왜 정부가 마련한 이같은 대책이 있으나 마나한 제도로 전락하게 된 걸까?
현장에서 실제 주민등록말소자를 돕고 있는 ''신용회복구조대''나 ''노실사'' 등 시민, 사회단체들은 이같이 실효성 없는 제도가 나온 것은 주민등록말소자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용불량 등 채무문제로 쫓겨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이 대부분인 주민등록말소자들은 이같은 제도가 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알더라도 과연 제발로 찾아가 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겠냐는 것.
또, 설사 시민,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원을 요청하더라도 실제 동사무소에서 이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뿐 아니라 설사 알더라도 복잡한 사정 절차때문에 사실상 지원을 받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라는 것이다.
신용회복구조대 정의철 연구소장은 "한달에 300여명의 상담자 가운데 30% 정도가 주민등록말자다. 기초생활보장번호제도가 생긴 2001년 이후 빈곤문제연구소 등과 연계해 주민등록말소자들에게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부여해 생계보장을 해달라며 관할 동사무소 등에 수없이 요구했지만 지금까지 성사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현장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덧붙여 "얼마전 대전에서 한 노숙인이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파상풍으로 장애를 가지게 됐다"며 "노숙인쉼터에서 그같은 제도가 있는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면 과연 그런일이 발생하겠냐"고 반문했다.
또,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 문헌준 대표는 "노숙인 지원센터 별로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의 노숙인이 주민등록말소자로 파악되고 있지만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받아 생계보호를 받는 노숙인은 거의 없다"며 "오죽하면 노숙인들과 함께 관할 동사무소를 항의방문해 시위를 벌였겠냐"고 말했다.
주민등록말소제도의 비인권적 측면부터 해결해야뿐만 아니라 이들 시민, 사회단체들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정부가 주민등록말소제도의 비인권적인 측면은 그대로 둔 채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을 건드리려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소지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취업은 물론이고 혼인신고나 자녀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없는 국민 아닌 국민을 60만명이나 양산한 주민등록말소제도 자체의 문제는 개선하지 않은 채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유명무실한 지원제도를 만들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것.
실제로 정부는 주민등록말소자를 양산하고 있을 뿐 이들의 인권이나 생활상 등에 대한 실태 조사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는 "행자부의 업무는 주민등록법에 따라 해당자의 주민등록을 말소하는 것이고 그들의 생계문제 등은 보건복지부의 관할사항"이라며 보건복지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 역시 "주민등록말소는 행자부 업무고 우리는 주민등록말소자가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부여를 원할 때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사정을 거쳐 자격이 있으면 지원해주는 것일 뿐 직접적으로 이들의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고유업무가 아니다"라고 행자부에 책임을 돌렸다.
이 같은 관계부처간의 책임떠넘기기 공방 속에 주민등록말소자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는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국민 100명당 1.25명 꼴로 국민 아닌 국민으로 만들고 있는 현행 주민등록제도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주민등록말소제도의 비인권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채 유명무실한 보호대책만을 홍보하며 물타기를 하는 정부. 과연 문제해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