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과 구제역 방역지원 등으로 남북 관계 개선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다음 이슈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남북 관계 개선과 대북 원칙 지키기라는 딜레마를 정부가 어떻게 풀어낼 지가 관건이다.
북측은 한국 정부가 24일 구제역 공동방제 지원 의사를 밝힌 데 대해 26일까지 침묵했다. 이산가족 상봉 확대와 정례화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북남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북측 이충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고 한 것이 전부다.
우리 정부는 북측 표현대로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구제역 방역지원을 제시한 셈인데, 이 카드는 북측의 주된 관심사라고는 할 수 없다. 해외 자본 유치와 관광객 모으기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그 첫 단추를 금강산 관광 재개로 풀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아 왔다.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한 묶음으로 풀어내려고 시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두 사안을 '분리대응'해왔던 우리 정부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북측이 조건 없이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응한 것에 대한 일종의 '대가'를 제시할 생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통일 대박론'을 살릴 이슈도 필요하다. 북측의 요구를 단 칼에 잘라냈다가, 기껏 형성된 남북 대화 무드가 깨질 수 있다는 계산도 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곧바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권 지지층인 보수진영은 금강산 관광은 곧 '현금다발 지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업 자체부터 반대하는 입장이다. 박왕자 씨 피살사건에 대한 조치 없이 관광을 재개할 경우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정부 지지층의 반발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처지다. 이같은 딜레마를 극복하는 향후 대응 방법과 관련해 정부 안팎에서는 '1998년 모델'을 다시 한번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실향민들이 금강산 관광의 시작을 이끌었다면 2014년에는 이산가족들이 관광 재개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북한전문가는 "보수 진영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에는 반대해도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면회소에서 만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며 "이들을 위해 일단 금강산 내 면회소를 활성화하고, 이 과정에서 재개를 위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분단사의 한 획을 그으며 출항했던 '현대금강호'가 실향민을 가득 싣고 떠났다가 육로 관광까지 이어졌듯, 이번에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정례화 차원으로 시작해 남북 요구사항을 조율한 뒤 관광 정상화까지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