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심'인 대법원의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다툴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사법개혁 3법'이 공표된 첫날인 12일 서울 헌법재판소 민원실에서 관계자들이 재판소원 관련 안내문 비치 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법원의 재판에 대해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를 두고 재판 지연과 소송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공익 변호사들은 국가폭력·인권 사건에서 막혀 있던 권리 구제 통로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싣고 있다. 다만 제도가 형식적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사전심사 기준과 법률구조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폭력 피해자, 헌법 판단 다시 받을 길 열려"
공익 변호사들은 재판소원이 기존 재판 절차로는 해결되지 않았던 사건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염형국 법무법인 DLG 공익인권센터장은 "어떤 제도든 부작용 가능성은 있지만 그 가능성만으로 제도 도입 자체를 막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장애인 사건이나 인신매매 사건처럼 법원의 이해 부족으로 권리 구제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사건에서는 재판소원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납북귀환어부들이 '형사보상 결정 지연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를 기각한 법원의 패소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재판소원을 청구한 사건을 맡은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 역시 "현장에서 보면 법원이 헌법적 가치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판결을 적지 않게 접한다"며 "대법원에서 사건이 끝나면 (국가폭력) 피해자 입장에서는 더 이상 다툴 방법이 없었지만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헌법적 판단을 다시 요청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과거사 국가배상 소송에서 문제됐던 '소멸시효 적용'이 꼽힌다. 과거 법원은 국가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도 일반적인 장기 소멸시효 규정을 그대로 적용해 피해 구제를 제한해 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2018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등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장기 소멸시효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이후 대법원 등에서도 과거사 사건에 대한 장기 소멸시효 적용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확정된 판결의 효력인 기판력 문제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거론된다. 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인 김병진씨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등을 통해 피해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음에도 과거 패소 확정판결의 기판력 때문에 국가배상을 다시 받지 못한 바 있다.
재판소원이 법원 판결에 대한 외부적 견제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의미로 꼽힌다. 최 변호사는 "지금까지 법원은 사실상 스스로 외에는 견제 장치가 거의 없는 구조였다"며 "재판소원 도입은 법원이 헌법적 가치를 더 충실히 반영한 판결을 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난민 등 소수자 권리 구제에도 의미"
재판소원 관련 안내문. 연합뉴스재판소원이 소수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익법단체 두루의 이상현 변호사는 "이주민이나 난민처럼 정치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집단의 권리는 입법이나 정치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헌법재판이 그동안 이런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재판소원 확대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법원이 헌법보다 개별 법률 해석에 치중하면서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 좁은 판단을 내린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상 기본권은 대부분 국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리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법률 적용 과정에서는 이주민이나 난민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며 "재판소원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헌법적 관점에서 다시 검토할 수 있다면 인권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헌 법률 제청은 결국 법 조항 자체를 바꾸는 것이어서 의미도 크고, 헌재도 무겁게 볼 수 있는 반면, 재판소원은 구체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다루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헌법적 권리 침해 중심으로 판단해야"…접근성 확보도 과제
다만 재판소원 제도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 비용과 접근성 문제 등 운영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익변호사단체 농본 소속 하승수 변호사는 "돈이 없는 사람도 재판소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공익변론이나 국선대리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비용 문제를 이유로 국민의 권리 구제 장치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짚었다.
헌법소원의 경우 원칙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청구인은 헌재에 국선대리인 선임을 신청할 수 있다. 현재 국선대리인의 사건 당 기본 보수는 60만 원이며 변론이나 증거조사 등에 따라 추가 보수가 지급되지만 총 보수는 200만 원을 상한으로 한다.
앞서 지난 10일 헌재의 재판소원 기자간담회에서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은 "국선대리인 제도 역시 재판소원 사건에 적용될 예정이며 예산 범위 내에서 운영될 것"이라며 "내년에는 관련 예산을 증액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 변호사는 재판소원 제도 논의의 배경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 법원 재판, 특히 대법원 재판에 대한 불신이 큰 것이 현실"이라며 "법원이 제도 도입에 반발하기에 앞서 국민들이 왜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제도를 두고 충분한 심리 없이 사건이 종결된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하 변호사는 "민사·행정 사건의 경우 판결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상고가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며 "대법관들이 기록을 충분히 검토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강조했다.
이에 헌재가 사건을 심리할 때 형식적 요건보다 기본권 침해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법률사무소 별빛의 서채완 변호사는 "재판소원이 기본권 구제라는 취지에 맞게 작동하려면 헌재가 형식적 요건만으로 사건을 좁게 보지 않고 헌법적 권리 침해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재판소원을 제기하는 요건 혹은 절차적 요건이 까다로울수록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사안을 적극적으로 살펴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헌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