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3년, 회복이 더딘 사회…죽음 헛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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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다 빠진 故진세은씨 아버지 "아직은 힘들어"
故이주영씨 아버지 "원인 안 드러나 2차 가해 이어져"
정부 3년 만에 합동감사…경찰·지자체 대응 부실 공식화
늦어진 진상규명에 늦어진 치유…"고립된 것 같았어"
이제는 사회 전체가 참사 상처 회복해야 할 때
故신애진씨 아버지 "공감이 우리 사회 지탱하는 힘"
영국 템스 강변 '치유의 벽'처럼 추모 공간 필요

이태원 참사 3주기 하루 전인 28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쪽지가 붙어 있다. '벌써 3주기네요. 누군가에게는 길고 길었을 이 시간이 감히 헤아려지지가 않습니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지켜보고 기억하겠습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김지은 기자이태원 참사 3주기 하루 전인 28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쪽지가 붙어 있다. '벌써 3주기네요. 누군가에게는 길고 길었을 이 시간이 감히 헤아려지지가 않습니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지켜보고 기억하겠습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김지은 기자
완연한 가을이 찾아오는 매년 10월, 가슴에 묻지 못한 자녀들의 죽음을 여전히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의 이야기다.

"날짜가 다가오니 그날 생각이 나요. 이번에는 이가 다 빠졌네요."

딸을 보낸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진정호씨는 "재작년이나 작년이나 올해나, 지내는 건 똑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3주기가 다가오면서 이가 다 빠졌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156번째 희생자 故진세은(당시 22세)씨는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3일 뒤인 11월 1일 가족 곁을 떠났다. 세은씨의 아버지 정호씨는 올해는 날짜에 맞춰 가족끼리만 조용히 딸이 있는 곳에 다녀오려고 한다. 정호씨는 "이제는 다시 활력을 찾고 일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날로부터 3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유족들은 원통함을 조금이나마 벗었다. 이태원 참사가 경찰, 지자체의 총체적 대응 부실로 인한 사회적 재난이었다는 정부 합동감사 결과가 발표되면서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진상규명이 늦어지면서 유족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감내해야만 했던 상처 역시 깊다. 회복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폭력보다 무서웠던 침묵"…늦어진 진상규명은 또다른 상처로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 희생자 159명의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 김지은 기자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 희생자 159명의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 김지은 기자
지난 3년간 참사는 희생자 개인의 탓으로 돌려졌던 적이 많았다. '축제를 즐기러 가서 변을 당한 것 아니냐', '왜 희생자라고 표현하냐', '몇년을 우려 먹냐' 등의 말들은 참사 유가족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세은씨의 아버지 정호씨는 "솔직히 올해 초까지만 해도 댓글을 많이 봤는데, 그 이후로는 못 보겠더라"고 깊은 숨을 토해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지낸 故이주영(당시 29세)씨 아버지 이정민씨는 "정부가 자꾸 책임을 감추려고만 하니 거기 갔던 사람들이 무질서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처럼 매도하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정민씨는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왜곡된 정보들만이 나와 혼란만 가중되면서 2차 가해가 이어졌던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3일 이태원 참사 합동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용산 대통령실 이전으로 관련 집회 관리에 경비 인력이 집중되면서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경찰 경비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참사 전후 용산구청의 초동 대응도 미흡했다. 사고 발생 당시 당직 근무를 서고 있던 재난관리 담당자는 담벼락에 붙은 윤석열 전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재난관리 책임자들이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 역시 지적됐다.

정민씨는 "초기에 이런 원인으로 대형 참사가 발생했었다는 것을 공식화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까지 신속하게 진행해야 했는데, 결국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이제서야 이루어진 것이 너무 한탄스럽다"고 탄식했다.

그는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게 침묵이란 걸 깨달았던 3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태원 참사)특별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이 힘든 싸움을 계속해 왔는데, 지난 정부가 아무런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을 땐 마치 무인도에 고립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책임 주체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실형을 선고받은 건 1명.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1심에서 금고 3년을 선고받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현재 항소심에 있다. 박 구청장 측은 2심에서도 압사사고는 당시 재난안전법상 사회 재난 유형에 포함되지 않아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할 의무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사회 전체 상처 아물려면…회복의 출발은 '잊지 않는 것'

영국 국립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의 벽(National Covid Memorial Wall)은 국회의사당과 빅벤 건축물 반대편까지 펼쳐지는 대형 추모 공간이다. 하트 모양으로 빨간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하트에는 추모 메시지가 적혀 있다. 홈페이지 캡처영국 국립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의 벽(National Covid Memorial Wall)은 국회의사당과 빅벤 건축물 반대편까지 펼쳐지는 대형 추모 공간이다. 하트 모양으로 빨간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하트에는 추모 메시지가 적혀 있다. 홈페이지 캡처
故신애진(당시 25세) 아버지 신정섭씨는 참사 이튿날 새벽부터 매일 일기를 쓰면서 지난 3년을 버텼다. 아내는 옆에서 그림을 그렸다. 정섭씨는 "애진이에 대한 기억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잊고 싶지 않아서 글을 썼다"고 했다. 그렇게 책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를 펴냈다.

외국계 회사에 막 취업한 신입사원이었던 애진씨는 회식을 하러 참사 당일 이태원을 찾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정섭씨는 "끝나고 골목에 나가서 휩쓸리기 전까지는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겠냐"며 애써 웃었다.

힘든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추모해 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섭씨는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손을 잡아주고 위로해 줬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슬픔이 다른 슬픔을 만나면서 커지지만, 고통은 줄어들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공감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란 걸 느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참사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민영 센터장은 "이런 참사는 당사자들이 가장 힘들지만, 나아가 사회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며 "집단 트라우마 관점에서 사회가 다같이 회복해야 된다"고 말했다.

심 센터장은 "복합 재난이나 기후 재난 등을 포함해 사회적 재난은 매년 벌어지는데 그런 위험을 극복하는 사회 전체의 회복력, 성숙함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집단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참사에 대해) 말 꺼내는 것을 싫어하거나 오히려 희생자를 공격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대하는 방식이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집단 트라우마를 회복하려면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유족들에 대한 사회 전체의 공감과 연대가 회복을 돕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에 설치하는 것도 좋다는 의견이 있다.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명재 교수는 영국 런던 템스강변의 국립 코로나 메모리얼 '치유의 벽'을 예로 들었다. 템스강을 따라 500m로 길게 이어진 벽은 대형 추모 공간이자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백 교수는 "영국에는 우리나라의 광화문 정도로 유명한 지점에 사망자를 추모할 수 있는 벽면이 있다"며 "가족, 친구들, 지나가는 시민들, 관광객들도 가서 추모할 수 있게 하는 작업들이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9.11 테러 같은 경우, 쌍둥이빌딩이 있던 자리에 '그라운드 제로'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소가 관광지로서까지 자리 잡게 된 또 하나의 사례"라고 덧붙였다.
 
각자의 방식으로 지난 3년을 견뎌온 유가족들이 공통으로 바라는 것은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그날 159명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정섭씨는 "참사가 고통이나 슬픔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우리 모두의 다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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