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모여 추석 차례 준비를 하고 있다. 한아름 기자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추석 명절에도 여객기 참사 유가족은 여전히 무안공항을 지키고 있다.
추석 당일인 6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유가족은 황망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떠올리며 첫 차례상을 준비했다.
무안공항에 상주하며 음식을 도맡아 온 유가족 이경임(64)씨의 손이 이날따라 분주했다.
참사로 아들을 떠나 보낸 이 씨는 이면지에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준비물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더니 "최대한 좋은 것을 올려야 한다"며 "햅쌀에 신선한 나물과 전, 달콤한 사과대추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임씨는 추석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을 종이에 적어뒀다. 한아름 기자 유가족이 가지고 있는 조리 기구는 휴대용 전기 레인지뿐이었다. 이번 추석은 공항 직원들의 배려로 사내 식당 주방에서 차례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추석 차례 준비 소식을 전해 들은 무안공항 청소 노동자 박애심(63)씨는 양파와 햅쌀 등을 가져와 유가족들에게 전했다. 박 씨는 평소에도 유가족들에게 깍두기와 청포묵, 부추김치 등 손수 만든 반찬을 수시로 전해주곤 했다.
박 씨는 "밥도 잘 못 챙기고 찬 바닥에 누워있는 유가족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면서 "함께하는 마음으로 힘내라는 의미에서 시골에서 농사지은 음식을 전했다"라고 말했다.
받은 식재료 값을 꼭 치르겠다는 유가족들과 돈을 안 받겠다는 박 씨 사이에 한동안 기분 좋은 실랑이가 이어졌다.
한편 주방에 모여 고구마줄기 껍질을 까고 꼬치전을 끼우던 유가족 중 한 명은 "내가 왜 차례 음식 준비를 여기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끝내 목이 메었다.
'추석에도 못 떠납니다'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
6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내 설치된 20여 개의 대피소 텐트에 유가족이 머물고 있다. 한아름 기자무안국제공항에 들어서 불 꺼진 전광판과 맞이방의 차디찬 의자를 지나 한편에 여전히 유가족의 보금자리가 남아있다.
참사 이후 300일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무안공항 한편에는 천막 스무 동이 나란히 서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뒤로 유가족에게 명절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친언니를 떠나보낸 조미영(52)씨는 평소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던 부모님 묘역에도 이번 명절엔 가지 않았다.
조 씨는 "언니랑 같이 열심히 부모님 묘를 찾았는데, 착한 언니를 부모님이 데려가 버린 것 같아 괜히 부모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아내와 딸 부부, 토끼 같던 손자 손녀를 떠나보낸 박인욱(70)씨는 "평소 추석은 가족들과 모두 모여 보름달처럼 방긋 웃었는데 이젠 돌아오지 않을 그 추석 분위기가 그리울 뿐"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가족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진상규명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남동생 부부를 떠나보낸 정진경(59)씨는 "우리가 무안공항에 남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진상규명 때문"이라며 "독립적이고 공정한 여객기 참사 조사를 통해 황망히 떠난 가족과 남아있는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왜 가족을 떠나보내야만 했는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길 위에 선 유가족들은 추석에도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