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이 웃기고 인간적이네…박찬욱 "꽉꽉 눌러담았다"[EN: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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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영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박찬욱 감독의 가장 유머러스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작품." _BBC

"이병헌의 놀라운 연기를 담아낸 작품이자 그의 탁월한 코미디 감각을 입증하는 작품." _데드라인


"박찬욱은 이번 작품을 통해 현존하는 가장 창의적인 영화감독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특유의 카메라 워크와 편집은 여전히 혁신적이면서도 강렬하다." _넥스트 베스트 픽처

 
'칸느 박'이라 불리며 전 세계 영화계를 매료시킨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정확히는 어둡고, 웃기다. 말 그대로 '블랙 코미디' 그 자체다.
 
해고당한 만수가 안쓰럽다가도, 재취업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를 때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그 과정을 보다 보면, 영화의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이 웃게 된다. 그게 '어쩔수가없다'의 매력이다.
 
낯설면서도 박찬욱스럽고, 박찬욱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새로운 듯한 '어쩔수가없다'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하게 됐을까. 그리고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어떤 면이 만수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합했던 걸까. 이러한 궁금증에 박찬욱 감독은 어떤 답을 내놨을까.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첫 번째 궁금증: 박찬욱의 '블랙 코미디'

 
▷ '어쩔수가없다'는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인 만큼, 그동안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많이, 가장 대놓고 어쩔 수 없이 웃는 지점들이 많다. '블랙 코미디'를 지향한 이유가 궁금하다.
 
박찬욱 감독(이하 박찬욱)>
원작을 읽으면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내게 영향을 준 건 '모던 타임즈'(감독 찰리 채플린) 같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 톱니바퀴 같은 한 개인의 이야기이기에 저절로 떠오르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보니 코미디가 강해졌는데, 만수의 코미디는 대부분 그가 어리석거나 어설퍼서 나온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비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해고됐다는 자체도 비극인데, 아라(염혜란)의 말마따나 실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실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다. 대처할 때 살인의 길을 선택했다는 사고방식의 어리석음, 숙련된 제지 노동자지만 새로운 임무 수행하는 초보로서의 어리숙함이 있다. 그러다 보니 실수하고 허둥지둥하고 우왕좌왕하고 우물쭈물하고, 거기서 코미디도 나오고 연민도 생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두 번째 궁금증: 전작과 정반대의 영화 '어쩔수가없다'

 
▷ 전작인 '헤어질 결심'과 이번 '어쩔수가없다'는 영화의 톤앤매너나 구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다. 일부러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의도한 것인가?
 
박찬욱> '헤어질 결심'이 여성적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남성에 관련된 분위기가 있다. '헤어질 결심'은 확실히 여성적인 느낌이 어딘가 모르게있다. 박해일도 탕웨이와 대등한 주인공이지만, 박해일은 초식남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은 여백이 많은 영화였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시적인 느낌이 감돈다.
 
'헤어질 결심'과 반대되는 스타일로 만들고 싶어서 꽉꽉 눌러 담아 꽉 찬 영화를 만들었다. 한 프레임 안에서도 그렇고, 편집도 그렇고, 여백이 없는 영화다. 그러다 보니 '어쩔수가없다'는 시적이기보다는 산문적이다. 그리고 미리(손예진)와 아라가 나오지만, 역시 만수의 이야기이고, 만수가 제거할 대상들이 다 만수의 거울 내지 분신 같은 면을 공유한 사람들이라서 확실히 남성적이다.
 
주제 자체가 남성성에 관한 탐구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여서 그런 면도 있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적이라는 게 마초적인 영화로 만든 것도 아니다. 남성성에 관한 분석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연민 어린 조롱 같은 것도 있다. 현대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사는 남편, 아빠, 직장인, 직장을 잃으면 자기 정체성이 송두리째 붕괴한 것처럼 느끼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헤어질 결심'과는 다른 스타일이 됐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세 번째 궁금증: 미학 완성한 촬영과 편집

 
▷ '어쩔수가없다'는 당연히 박찬욱 감독 작품답게 미장센이나 음악, 캐릭터 등이 다 훌륭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특히 재밌었던 건 촬영과 편집이다.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촬영과 편집이 시각적인 재미를 극대한다.
 
박찬욱> 
김우형 촬영 감독은 2010년 토론토 로케이션을 갔을 때 같이 갔고, 몇 년 뒤 뉴잉글랜드에도 했을 때도 함께 갔다. 그렇게 서로의 취향도 알고 많이 맞췄기 때문에 '리틀 드러머 걸' 할 때는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때 실제 촬영은 처음 한 거지만, 몇 번 찍은 사람처럼 잘 맞았다. 그리고서 이번 영화를 찍게 됐는데, 우리는 이미 공유한 게 많았다.
 
김우형 촬영 감독은 굉장히 조용하고 말이 없다. 그런데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대담하고, 용감한 시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좋아한다. 거리끼는 게 없다. 누구보다도 과감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헤어질 결심'과는 상반된 스타일의 영화를 하길 원했기 때문에 그게 잘 맞았다.
 
물론 김우형 감독은 워낙 훌륭한 사람이니 정적인 영화를 찍자고 해도 잘할 사람인데, 이번엔 정말 신나고 재밌게 했다. 뭔가 주저하는 것이나 절제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자고, 클로즈업이 크게 들어가고 싶으면 크게 가고 카메라 움직임이 요동칠 때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어쩔 수 없이 난 구식 인간이고, 옛날 필름 시대 룩을 못 잃는 사람이라서 처음엔 필름 촬영을 시도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어렵더라. 그래서 필름 테스트를 했다. 완전히 똑같은 상황을 디지털로 찍고 필름으로 찍어서 비교했다. 그렇게 막연하게 '필름 룩'이라고 알고 있던 기억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데이터를 갖고 카메라, 렌즈, 조명, DI(Digital Intermediate) 등 모든 것을 수행했다. 그전에 했던 영화보다도 필름 룩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색깔도 과감하게 쓰고, 콘트라스트도 다른 영화보다 높고, 여러 가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자 했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 때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개봉을 기다리며 편집을 오래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절반의 시간밖에 못 써서 걱정을 많이 하면서 했다. 정말 치열하게 노력했다. 편집실 가서 12시간 일하고, 집에 편집본을 가져와서 메모하고, 다음날 편집실 가서 메모한 걸 갖고 편집하는 식으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썼다.
 
약간 길게 찍은 걸 콤팩트하게 압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이 있다. 보통 적절한 시간만 찍은 다음 적절하게 붙이기보다 많이 찍어서 몇 프레임 단위로 잘라내고, 촘촘하게 해놓으면 그때 생기는 미학과 긴장감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길더라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 작품이 된 거 같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네 번째 궁금증: 배우 이병헌

 
▷ 오랜만에 이병헌과 같이 작업했는데,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장점은 무엇인가?
 
박찬욱>
내가 인간적으로나 직업인으로서나 똑같은 평가를 하는 게, 그의 장점은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잡념이나 고정관념도 별로 없고, 아집도 없다. 심지어 정치적인 견해도 뚜렷하게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시작할 때 백지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 캐릭터가 이런 상황에서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할 때, '어떻게 해요?' 이런 이야기를 별로 안 한다.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온 인간관계를 통해서나 인간을 관찰하면서 가진 방대한 데이터가 있기에 그럴 수 있는 거다.
 
그런 기초가 있기에 표현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한 영화에서 대부분 장면에 등장할 정도가 되면, 관객도 중반 이후 넘어가면 지칠 수 있다. 그 표정이 그 표정이고, 지겨울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거다. 그런데 이병헌을 보며 그렇지 않은 이유는 표정과 몸짓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에 맞춰서 꺼내쓸 카드가 많은 사람이다.
 
내가 한 번은 어떤 비유를 했냐면, 피아니스트가 88개 건반의 피아노를 연주한다면 이병헌은 200~300개 건반을 가진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손가락도 20~30개 되는 거 같다. 그런 피아니스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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