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조직의 취약점을 발견해 찌르는 역할을 하는
'레드팀(Red Team)'은 냉전시기 미 육군에서 유래했다. 포인트는 일부러 적(敵)을 가장해 그들의 눈으로 아군인 블루팀(Blue Team)을 바라보는 것이다. 맞상대의 관점으로 전투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야, 공격 포인트가 보인다는 취지다. 때문에 유수의 기업들은 경쟁력 차원에서 '메타 인지'를 위한 사내 레드팀을 독립적으로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도 '레드팀'의 역사는 유구하다. 하다못해 조선왕조 때도 왕의 잘못된 언행과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이 제도화돼 있었다. 현대의 언론과 유사한 대간(臺諫)이 그 예다. 사간원의 간관(諫官)들은 나라의 녹을 먹으며 상소를 통해, 또 때로는 왕의 면전에서 거침없는
직언(直言)을 날렸다. '프로쓴소리'가 당장은 거북해도 후일엔 덕정(德政), 즉 좋은 정치의 밑거름이 된다는 합리적 믿음이 작용한 결과다.
굳이 왕정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은
최근 여의도를 달군 '패널인증제' 때문이다. 이 생소한 개념의 창시자는 강성 반탄(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노선을 어필해 지난달 당권을 거머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다.
앞서 장 대표는 지난 7일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측을 자처하는 방송패널들에게 당을 대변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알리는 인증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현안을 다루는 각종 방송에 당 간판을 달고 나간 이들 중
지도부 입장(당론)과 다른 결의 목소리를 내는 패널은 자당의 '공식 스피커'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패널들의 섭외·출연은 사실 방송사의 영역이다. 당이 해당 방송사에 공문을 보내 항의는 할 수 있을지언정, 이들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을 권한은 없다. 그것은 월권이다. 만약 비슷한 시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윤석열정부 당시 "보수 참칭 패널"이란 히트어를 낳은 '정진석 비대위'의 흑역사를 상기시킬 뿐이다.여기서 신박한 것은 그러니 우회적으로라도 페널티를 주겠다는 발상이다. '의견'을 가장한 해당(害黨) 행위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당원에 한해선 '최대 제명 조치'란 징계 구상도 언급했다. 장 대표가 전당대회 연설회에서 장내 분란을 유도해 경징계(경고)를 받은 전한길씨를 감싼 점을 고려하면 실로 뚜렷한 온도 차다.
장 대표는 단일대오와 통합을 거듭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결국
계엄·탄핵 국면부터 당을 향해 '셀프 디스'를 쏟아낸 찬탄(탄핵 찬성)파의 고립을 위한 책략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패널인증제가 실제 도입되면 첫 번째 타깃은 한동훈 전 대표와 친한(親한동훈)계가 될 거란 전망도 새롭지 않다.
강성 당원들은 이미 당의 자성과 쇄신을 촉구해온 패널들의 사진과 실명이 적힌 블랙리스트를 '짤(짤림방지용 사진)'로 만들어 전파 중이다. 기자가 접한 버전엔 서른 명의 사진과 함께 이러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종편·레거시 미디어와 각종 정치 유튜브 채널은 좌파 2중대와 위장우파를 패널로 내세워 국민의힘 내부를 공격하고 보수 진영을 분열·악마화하는 선동을 즉각 중단하고, 공정한 토론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블랙리스트'가 물론 국민의힘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또 강성 당심과 이들이 소비하는 유튜브 채널이 당대표 선거를 좌우한 점은 더불어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덧 하나의 관용어가 돼버린 '수박', '개딸' 등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3일 장 대표와의 회동에서 "우리 정부에도 레드팀이 필요하다"고 했던 이재명 대통령 역시 내부 비판이 항시 기꺼울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을 상대로 한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가능케 하자는 당정의 언론관을 '입틀막'이라 비판해온 국민의힘이라면 달랐어야 했다. 특히 진영 논리를 신봉하는 강성 유튜브가 아닌 레거시 방송의 경우, 당심보다 평균치에 가까운 여론을 의식하며 제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주지해줬으면 한다. 패널들에겐 정당의 인증 마크보다 시청자의 인정이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다.
다양한 방송에서 활약 중인 한 국민의힘 측 패널은
"어느 (당) 쪽 패널이든 다 어느 정도 '상식적인 얘기'를 해야 살아남는다"고 했다. 당에 '싫은 소리'를 하는 패널들이 비율상 과다해 보인다면 이는
심리적 방어기제에 의한 착시이거나, 당이 민심과 괴리돼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확률이 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