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이 11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내란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출범한 정부인 탓에 인수위원회 없이 나서면서 상당 기간을 정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소요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 활성화와 정상외교 재가동 등 국가 정상화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반면, 개혁 작업의 속도감과 조각 등 인사, 정무 등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회복과 성장' 강조…회복세 보이는 경제
이재명 정부는 '회복과 성장'을 기치로 건 것처럼, 출범 100일간 무너진 각종 국가 시스템 재건에 중점을 두고 국정을 운영했다.
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행정명령 또한 비상경제점검 TF(태스크포스) 구성이었다.
경제상황 점검과 함께 펼친 또 하나의 경제정책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었다.
1인당 15만원 이상을 지급하는 소비쿠폰이 소비 선순환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확장재정 정책으로 인한 국가채무 증가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이와 달리 소비쿠폰은 소비심리를 긍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5월 101.8이던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6월에는 108.7로 높아졌고, 소비쿠폰이 지급되기 시작한 7월에는 110.8, 본격 사용이 이뤄진 8월에는 111.4로 지속 상승했다.
취임 30일 기자회견. 연합뉴스10일 코스피지수가 3317.77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점도 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의 원인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지난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기술주도 성장이 강한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성장의 핵심 플랫폼인 '자본시장 선진화'를 통해 '코스피 5000시대'를 준비해 가겠다"며 "우리 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우리 국민이 성장하는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보장해서 국부가 늘어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일본과 크게 차이나지 않은 시점에 마무리함으로써 외부 변수에 조기 대응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다만 소비심리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기업 투자책 마련과, '옥상옥상옥'이라는 비판을 사고 있는 경제부처 정부조직 개편에 후폭풍 최소화는 숙제로 꼽힌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관세협상과 소비 회복 등 대내외 경제 전반에 걸쳐 행정적으로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소비쿠폰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경제에 숨통을 트이게 했다면, 앞으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는 상황 속에서 세제개편안이나 노란봉투법과 같은 정책의 속도조절을 통해 긴 호흡으로 경제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국가 회복' 선언하며 국제무대 복귀…'구금사태' 여파 촉각
이재명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가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6월 16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실용주의를 강조하며 '국익 중심'을 내세웠던 외교·안보 행보도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대미·대일 협력에 힘을 실으면서 기존 정부들이 가져왔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프레임을 탈피하면서도 현안에 따라 중국과도 멀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한 것은 변해가는 국제정세를 고려한 적절한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 직후 캐나다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외교무대 복귀를 알렸다. 주요국 중에서는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가장 먼저 만나면서 경색됐던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다.
대미 외교는 전체적으로 '잘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호관세 25% 적용을 이틀 앞두고 지난 7월 30일 관세율을 15%를 낮추고 미국에 3500억 달러 투자 펀드 조성을 약속하면서, 25% 관세 일괄 적용과 농축산물 추가 개방을 피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또한 회담 직전 불거진 한국 내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오해"라고 말하며 해소했고, 미국 측의 추가적인 요구 등 돌발변수 없이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고비를 잘 넘긴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현지 당국이 불법 노동 등을 이유로 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 근로자를 체포·구금한 사건은 향후 파장이 주목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익에 따라 차분하게 정부로서의 기조를 유지했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이던 혼란을 정리하고 그 어느 때보다 독해진 미국에게 '한국은 흔들림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구금사태는 한미 간 외교의 큰 변곡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에 가까운 일인 만큼, 이를 통해 관련제도를 개선하며 대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개혁·정무·인사에는 다소 아쉬움…속도조절·장악력 회복이 관건
연합뉴스검찰청 해체와 노란봉투법 추진 등 각종 개혁 관련 움직임과, 여야 지도부를 향한 정무 및 인사 등에 대해서는 다소 아쉽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은 검찰개혁과 관련해서는 제도 개선으로 인해 불거질 수 있는 불필요한 부작용 최소화에 방점을 두고 신중한 접근을 주문해왔다.
특히 "중요 쟁점에 대해 국민 앞에서 합리적으로 논쟁하고 토론하라"며 개혁을 원하는 진영이나, 이를 직접 추진하는 실무자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해당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혁안 확정 시기,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어느 부처 산하에 둘지 여부, 보완수사권의 유지 여부 등을 두고 대통령실과 여당간 이견이 확인되면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다수 제기됐다.
최근에는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만난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비서관과 정청래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사이에 신경전이 펼쳐졌다는 내용마저 전해졌다.
법무법인 평안의 최봉균 변호사는 "검찰개혁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법조 사안보다 충분한 토의를 거쳐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정책 방향이 확고하게 선 만큼 이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으로서는 호흡을 맞춰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란사태에 대한 여야의 사뭇 다른 대응 수위도 숙제로 꼽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대 특별검사의 수사 인력과 기한을 늘리고 재판 중계를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특검법 개정과 내란특별재판부 구성을 추진하는 반면, 야당은 이에 대한 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당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8일에는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선출 후 처음으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초청해 정청래 대표와 함께 오찬을 가졌다.
이 대통령이 내란사태의 여파로 그간 서로 손도 잡지 않던 여야 대표의 악수를 이끌어냈고, 여당에게 양보를 요청하는 등 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하루 뒤인 9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 나선 정 대표는 "내란과 절연하라. 내란의 늪에서 빠져나오라"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야당을 압박했다.
그러자 10일 같은 연설에 나선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 역시 "이재명 정부의 100일은 역류와 퇴행의 시간이었다. 정치 특검(특별검사)을 앞세운 야당 탄압의 정치보복만 있었다"며 이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당 대표가 아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여야를 만나 협의를 통해 가끔씩이라도 합의를 하는 모습을 바라게 되는데, 이번 회동이 이뤄진 직후에는 곧바로 '내란정당 해산' 얘기가 나오지 않았나"라며 "이는 민주당과 대통령실의 엇박자이고 결국 대통령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당이 대통령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국정에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이를 정리해야 한다"며 "그립감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