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무역협상이 타결된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도쿄 총리 관저로 들어가며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일본 참의원 선거 참패 후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퇴진을 압박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한일관계에 적극적이었던 이시바 총리가 물러나는 수순이 되면 훈풍이 불던 양국관계의 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패배 후 이시바 총리의 거취를 두고 당내 분란은 지속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8월말 퇴진설' 보도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며 부인했지만, 전직 총리들이 사임을 압박하며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당초 이시바 총리는 미일 관세협상과 고물가, 대지진 등을 들며 직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지만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예상보다 조기에 타결되면서 명분을 잃은 모양새다.
한일관계에 있어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시바 총리의 퇴진이 가시화되면서 협력에 가속이 붙던 한일관계의 앞날도 안갯속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캐나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과 한국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한미일 공조와 셔틀외교 재개를 약속했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19일 도쿄에서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도 직접 참석하며 한일협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정부는 다음달 15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부각하는 메시지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가 퇴진한다면 이에 대한 호응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일본의 향후 리더십 또한 정부의 고민을 깊게 한다.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부상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상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을 부정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매년 두 차례 직접 참배하는 것으로 알려진 극우인사다.
아울러 '일본인 퍼스트'를 앞세운 극우 참정당이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는데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정당화를 주장하고 선거 과정에서 한국인 멸시 발언도 했다. 이들이 종전 80주년을 전후해 한국과 관련한 자극적인 발언을 한다면 정부의 입장이 곤궁해질 수밖에 없다.
국립외교원 오승희 조교수는 "작년까지 정부의 광복절 메시지가 북한에 관한 것이었다면 올해는 일본과 관련한 진전된 메시지가 예상된다"며 "문제는 일본에서는 누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기에 분명한 메시지가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초 한국의 정치상황이 흔들렸을 때 일본이 안정적인 메시지를 내줬는데 입장이 역전됐다"며 "이제 한국이 안정감 있는 한일관계를 지속하자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후 이시바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중대하고 특별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한일관계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정치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우리가 안정적인 관계 지속의 시그널을 줘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