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재명표' 지역화폐 지역경기 살리는 마중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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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금산·김포·고양 현장 취재
지역화폐 활용도 제각각 이지만…
정부예산 확대에 따라 기대감 높아져
"지역화폐 늘어나면 소비도 늘어날 것"
"혜택 워낙 많아…지역화폐로 모든 걸 해결"

금산 주민 이씨가 기자에게 금산사랑상품권 모바일 앱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다연 인턴기자금산 주민 이씨가 기자에게 금산사랑상품권 모바일 앱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다연 인턴기자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 정부에서 포퓰리즘으로 비판받던 지역화폐가 다시 뜨고 있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종이 상품권 또는 모바일 상품권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발행한다.

이재명 정부는 2차 추경에 6천억원을 지역사랑상품권에 배정해 역대 연간 최대 규모인 29조원의 지역화폐 발행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지역 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과 달리, 지역화폐는 발행 지역 외에서는 사용할 수 없어 지역 내 소비를 더 효과적으로 유도한다.

'지역화폐'가 소도시 소비 행태 바꾼다

"혜택이 워낙 많어야지. 여기는 금산사랑상품권으로 거의 모든 걸 해결혀.  방금 전에도 요 앞 마트에서 상품권을 쓰고 돌아오는 길이여"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에 위치한 금산수삼센터. 한 켠에서 인삼이 가득 담긴 박스를 나르던 이장혁(74)씨가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금산사랑상품권 사용 내역을 보여줬다.

인구 5만 명인 금산군에서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생겨난 지역화폐 '금산사랑상품권'이 유통된 이후 주민들의 소비 행태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싸게 물건을 사러 차로 왕복 두 시간 이상 걸리는 대전에 있는 대형 쇼핑몰을 찾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금산군내에서 금산사랑상품권을 쓰면 1만 1천원 어치를 1만원에 살 수 있어 대도시 쇼핑몰보다 싸고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인천에 사는 대학생 이우중(27)씨도 고향인 금산을 찾을 때면 금산사랑상품권을 애용한다. 이 씨는 "금산사랑상품권을 사용하면 다른 결제 수단보다 싸서 동네에서 물건을 많이 산다"고 말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심부에 위치한 전통시장. 김다연 인턴기자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심부에 위치한 전통시장. 김다연 인턴기자
지역화폐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곳은 읍내 상점들이다. 금산읍 중심부에 있는 한 마트에서는 직원이 계산대 앞에서 푸른색 금산사랑상품권 뭉칫돈을 세고 있었다. 마트 사장인 현수옥(56) 씨는 "마트가 재래시장과 가까워서 어르신들 발길도 잦아졌고 매출도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지역화폐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소도시 뿐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라베니체.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연상케 하는 수변상업지구지만 강을 따라 설치된 복합상가에는 오가는 인적이 드물었다. 장사가 잘 안되지만 이 곳 상인들은 김포시가 발행하는 '김포페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라베니체의 한 편의점 입구에 '김포페이 QR결제 됩니다'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김다연 인턴기자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라베니체의 한 편의점 입구에 '김포페이 QR결제 됩니다'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김다연 인턴기자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이명선(63)씨는 "요즘은 김포페이 결제가 기본"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편의점 주인 40대 김모 씨는 "지역화폐 정책에 감사하다. 정부가 관련 예산을 늘리고 지역화폐가 전국적으로 늘어나면 소비도 그만큼 늘어날 거다"고 지역화폐 확대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통계로 입증된 지역화폐…尹 정부에서는 '눈엣가시'

지역화폐가 침체된 민생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는 분석은 통계 자료로도 뒷받침된다.

한국은행이 2020년 발표한 '지역사랑상품권 도입이 지역 소비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매출 증대, 역외소비율 하락 등 지역 내 소비 진작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022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발표한 '대전 지역화폐 효과 연구'에서도 지역화폐 사용으로 인한 소상공인 매출 전환 효과는 31.7%, 순소비 증대 효과는 26~29%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화폐는 정치화폐다. 각 지자체에서 발생하는 상품권에 정치색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이재명표'라는 딱지가 붙은 지역화폐를 없애려 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지역화폐 예산을 지키려고 했고 정부 원안과 민주당 요구안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점이 찾아지고는 했다.

지역화폐 대부분이 중앙정부 예산과 지방정부 예산을 함께 투입해 10% 안팎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어서 정부가 예산을 줄이면 여당이던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으로 있는 지역에서도 예산 배정을 안 하거나 줄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전시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지역화폐를 '대표적인 포퓰리즘 사업'으로 규정하고 발행 규모와 캐시백 비율을 줄여왔다. 이에 따라 이용률이 점차 감소했고, 결국 2023년 말에는 국비 83억 원 중 60억 원을 반납하기도 했다.

예산 끊기자 화폐 사용률 뚝…지자체 대응도 제각각

경기도 고양시 일산전통시장의 한산한 풍경. 김다연 인턴기자경기도 고양시 일산전통시장의 한산한 풍경. 김다연 인턴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전통시장. 고양시 지역화폐인 '고양페이' 사용 현황을 묻자 정육점을 운영하는 하두식(69)씨와 양은그릇을 판매하는 박모(70)씨는 "작년까지는 지역화폐를 많이 썼는데, 올해는 유독 사람들이 안 쓴다"고 입을 모았다.

시장 한 켠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상인 A씨도 "작년까지만 해도 신도시 사는 언니들이 와서 고양페이로 옷을 싹쓸이 했는데, 지금은 전혀 오지 않는다"며 "페이백 혜택이 많이 줄어서 그런지 장사가 아예 안 된다"며 인상을 썼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시도 대전시처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중앙정부의 지역화폐 예산이 삭감되자 2024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인센티브 지급을 중단했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고양시는 고양페이에 7%의 인센티브를 붙여 발행액이 73억 6천만 원에 달했지만, 올해 5월엔 4억 5천만 원으로 크게 줄었다.

시장 근처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최모씨는 "이제 인센티브가 아예 없는데 누가 굳이 자기 돈을 굳이 (고양페이에) 충전해서 쓰겠냐"고 말했다.

일산전통시장 내 한 상점 창문에 '고양페이 사용 가능' 스티커가 붙어 있다. 김다연 인턴기자일산전통시장 내 한 상점 창문에 '고양페이 사용 가능' 스티커가 붙어 있다. 김다연 인턴기자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와 민생회복 필요성을 역설하며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국비지원을 확대하면서 지역화폐가 지역 상권을 살리는 효자상품이 될 전망이다.

한국외대 행정학과 견진만 교수는 "소상공인을 포함해 지역 경기가 매우 힘든 상태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지역화폐를 지급할 정당성은 충분해 보인다"며 "예산을 극빈층이나 차상위 계층에 우선 배분하는 방향도 복지 측면에서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30억 매출 초과시 규제… "소도시 현실 외면"

지역화폐 사용처가 온누리상품권보다는 넓지만 다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금산군 일부 마트에서는 2년 전부터 금산사랑상품권 사용이 제한돼 군민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2023년 2월 행정안전부가 지역사랑상품권 지침을 개정하면서, 연 매출 30억 원을 초과하는 사업자를 소상공인에서 제외하고 지역과 업종에 상관없이 가맹점 자격을 일괄적으로 해지했기 때문이다.

금산종합터미널 인근에 있는 중앙식자재마트는 매출액 상한 조치로 2년 전 상품권 가맹 등록을 취소했다. 이 곳 박현석 점장은 "소도시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불평했다.

금산 인삼시장 인근 하나로마트도 연매출액이 30억원이 넘어 지역화폐를 받을 수 없다. 정미경 주임은 "작은 경제가 돌아야 큰 경제도 살지 않겠느냐, 이런 소규모 도시엔 유연하게 규제를 풀어줘야 군내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라고 매출 상한 규정 상향이나 철폐를 주장했다.

충남 금산군 금산읍 금산천 다리 위에서 바라본 금빛시장 전경. 김다연 인턴기자충남 금산군 금산읍 금산천 다리 위에서 바라본 금빛시장 전경. 김다연 인턴기자
이에 대해 금산군청 관계자는 "매출액 제한 규정에 금산뿐만 아니라 타 지자체에서도 마찬가지로 계속 건의를 드리고 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국비 지원이 확정된 만큼 소비자 혜택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러한 이유로 정치권도 매출액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일에는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에 회부됐다. 이 개정안은 연매출 30억 원을 초과하더라도 농산어촌이나 인구감소지역에 위치한 영농자재 및 농수산물 도·소매업체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용이 막혔던 지역 내 일부 마트에서도 지역화폐가 다시 통용될 수 있다.


Q&A
지역화폐란?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대안 화폐 또는 상품권 형태의 지급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며 해당 지역 내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자금의 외부 유출을 막고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매출을 늘려,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온누리상품권과의 차이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모두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한 수단이지만 발행 주체와 사용 범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지역화폐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발행하며 지역 실정에 따라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온누리상품권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행한다.
사용 가능 업종에서도 차이가 있다. 지역화폐는 식당, 약국, 카페, 미용실, 편의점 등 골목상권 전반에서 널리 활용되지만, 온누리상품권은 주로 전국 단위 재래시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지역화폐의 인센티브

지역화폐는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할인 구매형'이다. 예를 들어 10만 원권 지역화폐를 9만 원에 구입해 즉시 1만 원의 할인 효과를 누리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캐시백 적립형'도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충남 금산군은 지역화폐 결제액의 5%를 포인트로 적립해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경우 정가로 결제하지만 일부 금액이 되돌아와 지속적인 사용을 유도한다.

이러한 인센티브 예산은 정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2024년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르면 수도권 대도시나 일반 지자체는 국비 70%, 지방비 30%를 부담하는 '7:3' 구조가 기본이다. 반면 인구 감소 또는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군 단위 농촌 지역은 국비와 지방비를 각각 50%씩 분담하는 '5:5' 구조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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