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부실"…'카르텔'이 삼킨 재두루미 보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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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급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의 보존 사업이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 사람이 먹는 '고급' 쌀보다 비싼 볍씨가 먹이로 뿌려지는가 하면, 연구 보고서마저 매년 '판박이'다. 당국의 허술한 관리 감독에 수억 원의 혈세는 업자들의 '먹잇감'이 됐다. 관계 당국과 업자 간 유착도 의심된다. CBS노컷뉴스는 경기 김포시의 재두루미 보존 사업의 실체를 파헤쳤다.

[그 많던 재두루미 먹이는 누가 다 먹었을까⑤]
김포 재두루미 도래지, 현장 관리 미흡
통제구역인데도 불법낚시꾼들 드나들어
기러기 등 많지만 재두루미 보기 힘들어
업자들 배만 불린 '먹이+연구용역' 사업
감시 맡은 특정 주민‧조류단체도 수익자
사업주체 김포시‧국가유산청 대책 고심

11월 5일 김포시 후평리 재두루미 도래지 일대 모습. 불법낚시꾼들이 몰고 온 차량들이 세워져 있고, 조류관찰대와 차폐막 등이 어지럽게 방치돼 있다. 박창주 기자11월 5일 김포시 후평리 재두루미 도래지 일대 모습. 불법낚시꾼들이 몰고 온 차량들이 세워져 있고, 조류관찰대와 차폐막 등이 어지럽게 방치돼 있다. 박창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단독]'金쌀'보다 비싼 재두루미 먹이 '볍씨값'…왜?
②[단독]'입찰 사냥'에 먹힌 재두루미 먹이, 담합·유착 의혹도
③[단독]'재두루미 먹이' 사느라 연구비까지…보고서는 매년 '판박이'
④[단독]판박이 재두루미 보고서 실체, '부부‧형제'가 돌려썼나
⑤"총체적 부실"…'카르텔'이 삼킨 재두루미 보전사업
(끝)

지난 5일 오후 2시쯤 경기 김포시 후평리 일대. 길안내 앱으로 경로조차 잡히지 않는 논두렁길을 따라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의 도래지다. 가을걷이를 마친 질퍽한 농지 위로 수백 마리쯤 돼 보이는 왕기러기 떼 등 겨울철새들이 낟알을 쪼아 먹고 있었다.
 
재두루미를 살피기 위해 설치한 관찰시설은 절반쯤 부서진 채 잡초에 덮여 접근이 불가했고, 검정 차광막 등이 땅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바로 옆 하천은 불법낚시꾼들의 성지. 낚시금지 안내문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든 차량들로 통행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이곳에 30여년 거주해온 한 농민은 "지금이 재두루미들을 볼 수 있는 시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재두루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맘때 날아들던 재두루미는 다 어디 간 걸까.
 

'억대' 연구용역에도 서식지 개선은 '제 자리 걸음'

 
김포시가 10여년 공들여온 천연기념물 재두루미 보전사업이 '총체적 부실'로 CBS노컷뉴스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매년 연구와 먹이 살포에 투입된 수억 원의 혈세가 느슨한 감시망을 틈 타 업체와 특정 단체‧주민으로 묶인 이른바 '재두루미 카르텔'의 먹잇감이 됐다는 지적이다.
 
2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시는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 취서식지 보전방안 연구를 위해 수억 원대 예산을 들여왔지만, 실제 사업현장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마다 연구용역사가 발간한 보고서는 재두루미의 안정적인 서식 환경 조성을 위해 관찰시설과 차폐막 등의 훼손 문제를 계속 제기했으나, 여전히 방치 상태다. 형식적인 지적을 되풀이했을 뿐, 이행이 되지 않고 있는 것.
 
마찬가지로 서식 방해 요인으로 지목된 불법낚시꾼들의 잦은 출입과 도래지 일대에서 진행되는 수로 공사 등도 아무런 통제 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추운 북부 지역으로부터 철새들이 날아오는 11월 초중순이 되도록 김포에서 재두루미 개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실제 보고서에 담긴 김포 재두루미 개체수 추이는 연도별로 들쭉날쭉 큰 편차를 보였고, 지난해에는 100여 마리에 그쳤다. 예산 규모가 절반 이상 적은 강원 철원군의 재두루미 개체수가 6천여 마리에 이르는 것과 대비된다.
 
철원군 관계자는 "김포와 달리 철원군 연구용역비는 2천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개체수가 훨씬 많은 곳에 예산을 더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먹이‧인건비로 '쪼개진' 연구비, 14년 '독점 운영' 흔적

 
김포시 운양동 한강신도시 내 설치된 대형 재두루미 조형물. 지역 곳곳에 관련 홍보물이 설치되는 등 재두루미는 김포시를 대표하는 겨울철새다. 박창주 기자김포시 운양동 한강신도시 내 설치된 대형 재두루미 조형물. 지역 곳곳에 관련 홍보물이 설치되는 등 재두루미는 김포시를 대표하는 겨울철새다. 박창주 기자이 같은 연구용역의 실효성 부족은 애초 사업 목적에 맞지 않게 예산이 분산 지출된 데다, 특정 업체가 독점적으로 운영을 해온 탓으로 풀이된다.
 
김포시의 재두루미 보전을 위한 또 다른 사업인 '먹이 살포'는 별도 운영되고 있음에도, 연구용역사는 예산의 상당 부분을 먹이인 볍씨 추가 구매를 비롯한 각종 인건비와 부대비용으로 지출해 왔다. 연간 연구용역비 1억 원 중 순수 연구비는 2천만 원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 현장을 관리하고 먹이 구매와 뿌리기 등을 맡은 명목으로 지역 조류보호단체 대표와 주민참여단 소속 특정 농민에게 지속적으로 돈이 지급됐다. 사업 감시 역할을 맡은 주체가 수익자인 셈이다.
 
시 역시 '현장을 일일이 다 확인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이 단체와 주민참여단에게 관리감독을 맡겨 온 점을 고려하면, 감시 기능이 정상 작동했는지 물음표가 붙는다.
 
더욱이 매년 대동소이한 내용의 '판박이' 보고서를 낸 연구용역사들은 대표들이 부부이거나 형제 혹은 지인 관계로 밝혀져, 14년 동안 이어진 사업권을 독차지하면서 핵심 과제인 연구 결과물과 현장 개선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감사 등으로 보다 구체적인 증거들이 확보돼 시가 직접 정식 고발을 하거나, 누군가의 제보가 있어야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조사에 나설 수 있다"며 "공정거래법 위반 부분은 검찰이 담당하고, 다른 혐의는 경찰에서 다루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인 '볍씨'…입찰 사냥꾼에 먹혀

 
수년 전 김포지역에서 촬영된 재두루미 모습. 김포시 홈페이지 캡처수년 전 김포지역에서 촬영된 재두루미 모습. 김포시 홈페이지 캡처먹이 살포 사업도 허점 투성이었다. 시가 주된 먹이인 볍씨를 고가에 다량 구입, 업체들에게 의도적으로 수익률을 높여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시가 공개입찰로 볍씨 납품업체를 선발하면서 지난 2020년부터 제안단가(1kg당)를 급격히 올려 최대 2964원을 기록, 지난해까지 2500원대 이상을 유지했다. 1급 정부공공비축미 등의 평균시세 대비 최대 60%가량 높고, 유사 사업을 하는 타 지자체보다도 훨씬 비싼 금액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입찰 과정에서 경쟁사들 모두 낙찰 하한선 미달로 입찰심사를 받지 못하고 탈락한 가운데, 한 업체만 시에서 제시한 단가의 96.1%에 달하는 가격에 단독 낙찰권을 손에 쥐어 업계는 담합 등을 의심하는 눈초리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볍씨 구매사업을 낙찰받은 업체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은 입찰로 사업을 영위하는 '입찰 사냥기업'으로 확인됐다. 한 업체가 두 차례 선정되거나 서로 다른 상호인 낙찰업체들이 충청남도 동일 정미소에서 볍씨를 사와 시에 납품한 기록도 있다.
 
시가 볍씨 원가와 등급을 검수하지 않아 업체들의 실질 차익이 얼마인지 측정이 불가해지면서, 시가 곡물 전문업체가 아닌 종합상사 형태의 업체에 사업을 맡기게 된 배경에도 의문이 더해진다. 과거 시는 김포지역 정미소와 영농법인 등과 시세에 맞춰 거래한 적도 있었다.
 

예산 감축 등 긴급처방…"방만 운영 방지책 필요"

 
지자체의 관리 소홀 문제도 도마에 오르면서, 시는 긴급 처방에 나섰다.
 
시는 올해 재두루미 연구용역비를 기존 1억 원에서 2천만 원으로 대폭 줄였고, 먹이구매 단가도 평균 시세와 타 지자체 구매단가 수준에 맞춰 낮추기로 했다.
 
다만 △사업 현장에 대한 지자체 차원에서의 관리 시스템 강화 △지역 소재 정미소와의 먹이 직거래 방식 도입 △입찰 참여 업체들에 대한 사전 검증 △사업비 집행 항목별 세부내역 정산 모니터링 등 근본적인 종합 대책 마련은 숙제로 남았다.
 
재두루미가 김포 후평리 일대를 날고 있다. 김포시 홈페이지 캡처재두루미가 김포 후평리 일대를 날고 있다. 김포시 홈페이지 캡처사업별 특성에 맞도록 예산을 집행하고 세부 내역을 투명하게 정산하는가 하면, 사업현장과 성과에 대한 명확한 검증을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여러 지자체들이 비슷한 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관련 사업이 방만하게 운영되는 추가 사례는 없는지, 또 근본적인 제도 개선사항은 무엇인지 국가 차원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녹색연합 박은정 자연생태팀장은 "단순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전년도 사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 연구 결과에 담기고 현실에 반영되도록 발주처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먹이비용에만 쏠리면 조류 서식에 위해가 되는 요소들을 저감하는 등 복합적이고 효율적인 사업효과를 도모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자체와 정부기관 모두 용역이나 납품업체, 주민단체 등에게만 맡겨 놓지 말고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며 "부조리 현상을 논하는 것과 별도로 사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세밀한 관리 규정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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