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찰 사냥'에 먹힌 재두루미 먹이, 담합·유착 의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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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급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의 보존 사업이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 사람이 먹는 '고급' 쌀보다 비싼 볍씨가 먹이로 뿌려지는가 하면, 연구 보고서마저 매년 '판박이'다. 당국의 허술한 관리 감독에 수억 원의 혈세는 업자들의 '먹잇감'이 됐다. 관계 당국과 업자 간 유착도 의심된다. CBS노컷뉴스는 경기 김포시의 재두루미 보존 사업의 실체를 파헤쳤다.

[그 많던 재두루미 먹이는 누가 다 먹었을까②]
'최고가' 낙찰, 경쟁사들은 하한선 미달 '탈락'
업계는 업체 간 담합과 지자체 유착 의심
낙찰업체는 정자측정기 등 '입찰 사냥' 정황
사업장 주소는 아파트 특정 동, 호수로 기재돼
지방 정미소서 '저가 구매', 수익 극대화 흔적
A업체 거래내역서엔 B업체 상호가 적혀 있어
B업체는 2년 전 낙찰됐던 또 다른 개인사업자
김포시 "담합 등은 지자체 확인 불가" 입장
규정 위반, 단가 적정성 여부 등 감사 착수

▶ 글 싣는 순서
①[단독]'金쌀'보다 비싼 재두루미 먹이 '볍씨값'…왜?
②[단독]'입찰 사냥'에 먹힌 재두루미 먹이, 담합·유착 의혹도
    
경기 김포시가 최근 몇 년간 재두루미 먹이 볍씨를 고가로 사들여 납품업체에 막대한 수익률을 올리게 한 사실이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드러났다.
 
업계는 업체 간 담합과 지자체와의 유착을 의심하고 있고, 김포시도 본격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최고가' 낙찰 A업체, 경쟁사 모두 커트라인 미달로 '탈락'

1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A업체는 김포시 재두루미 먹이 볍씨 구매 공개입찰에서 8747만 6천 원에 낙찰 받았다. 김포시가 제시한 금액의 96.1%(투찰율)였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나머지 업체 3곳이 쓴 금액은 7900만 원가량. 모두 86~87% 정도의 투찰율을 나타냈다.
 
입찰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높은 금액을 쓴 A업체가 선정됐다. 나머지 업체들의 탈락 이유는 '낙찰 하한선 미달'이었다. 이들 업체들은 김포시가 공고문에 제시한 투찰율 하한선인 88%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써 냈던 것이다.
 
떨어질 줄 알고도 경쟁 업체들이 하한선에 못 미치는 금액을 써 낸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사실상 A업체가 단독으로 낙찰권을 손에 쥔 셈이다.
 
지금의 형태로 시의 재두루미 보전사업이 시작된 지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관련 입찰 결과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처럼 모든 경쟁사들이 하한선 미달로 탈락한 적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업계에서는 업체 간 담합과 시와의 유착 가능성을 제기한다.
 
통상 경쟁률이 낮으면 낙찰가격은 다소 높아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발주처 제시단가의 100%에 가까운 금액으로 낙찰받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동시에 나머지 모든 업체들이 나란히 하한선 미달 금액으로 탈락하는 건 더욱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업체들이 서로 사전 합의를 통해 소위 '밀어주기'를 시도했거나, 발주처인 시 내부에서 입찰 관련 세부정보 등을 업체에 미리 흘려줬을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십수년 입찰분야에 종사해온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정황상 충분히 담합 등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으면서 "업계 일각에 만연한 관행이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다만 사업별 변수 조건들이 다양한 만큼,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자 측정기 등 '입찰 사냥꾼'?…사업장 주소는 아파트

경기 김포시 하성면 후평리에 위치한 재두루미 취서식지 일대 모습. 왕기러기 떼가 날아들고 있는 모습이다. 박창주 기자경기 김포시 하성면 후평리에 위치한 재두루미 취서식지 일대 모습. 왕기러기 떼가 날아들고 있는 모습이다. 박창주 기자
더욱이 A업체는 볍씨 등 곡물을 취급한 이력도 없다. 2019년 1월 설립신고 된 개입사업자로 업태는 정보통신업, 종목은 소프트웨어사업자, 주요제품은 기타주방용품이다.
 
도내 각 관공서별 입찰 계약에 따른 대금지급정보 등을 종합하면, 이 업체는 정자활성도 측정장비를 비롯해 홍채인식기와 교육기관 도서 구매 등 볍씨 구매와는 무관한 여러 관공서 입찰을 통해 사업을 영위해 왔다.
 
정확한 사업장 소재지도 불분명하다. 시의 '계약상대자 결정통보' 공문과 A업체가 여러 관공서와 맺은 계약 문서, 공공‧민간 기업정보 포털 등에 따르면, 기재된 업체 주소지는 김포 내 서로 다른 두 아파트 단지의 특정 동과 호수로 나온다. 수원시의 한 아파트 호수도 있다. 시의 볍씨 구매 공개입찰 공고를 보면, 입찰 참여는 '김포시 내 소재한 업체'로 제한된다.
 
정상적인 사무실을 운영하며 낙찰된 과업을 직접 수행하기 보다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공사업권을 따내, 재하청을 주며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입찰 사냥'에 집중해 온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지방 정미소서 '저가 구매', A업체 거래내역에 B업체 상호

실제로 A업체는 지난해 볍씨를 김포지역이 아닌 충청남도에 있는 한 정미소를 통해 구매했다. 당시 거래내역 증빙을 위해 시에 제출한 '계량증명서'에는 실제 볍씨 구매 단가로 등급 구분 없이 kg당 18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시가 지급한 낙찰단가인 2560원보다 30% 낮은 금액으로, 전체 구매량인 35톤으로 환산해 보면 최소 2600여만 원의 차익이 발생한다. 볍씨의 등급 등은 기재돼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구매한 볍씨의 품질과 정미소에 최종 지급한 총 금액 차이에 따라 차익은 더 늘 수도 있다.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다. 이 계량증명서(2023년 발급) 내 거래업체명은 A업체가 아닌 B업체로 기재돼 있는데, B업체는 A업체보다 앞서 지난 2021년 김포시 볍씨 입찰에서 낙찰됐던 업체다. 2021년도는 김포시의 재두루미 볍씨 구매단가가 kg당 2935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시점이다.
 
서로 다른 상호를 쓰는 두 업체가 2년 간격을 두고 충청지역의 동일 정미소에서 물건을 떼 온 것이다.
 
B업체 역시 경기 광주시의 한 원룸‧빌라를 주소지로 두고 입찰 관련 사업 등을 해온 개인사업자다. 2021년에는 입찰 참여사 조건이 '경기도내 소재'였다.
 
이 외에 2020년과 2022년에는 C업체가 두 차례 낙찰을 받아 시에 볍씨를 납품하기도 했다.
 
이들 A, B, C업체가 낙찰 받은 시점은 시에서 전국 평균 볍씨 시세 등보다 훨씬 비싼 입찰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볍씨 구매단가가 폭증한 시기다. [관련기사: 11월 12일자 CBS노컷뉴스 "[단독]'金쌀'보다 비싼 재두루미 먹이 '볍씨값'…왜?"]
 
이런 흐름들을 종합하면, 서로 연관성 있는 업체들이나 한 업체가 잇따라 낙찰을 받는 등 특정 업체들이 높은 단가로 시와의 계약을 독과점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계량증명서와 달리 2020년~2022년 각 업체들이 시에 제출한 계량증명서에는 원가를 의미하는 실제 볍씨 구매 단가와 정미소 정보 등이 적혀 있지 않아, B업체와 C업체의 경우 얼마나 많은 차익을 남겼는지, 원산지역이 어딘지조차 확인이 불가한 상황이다.
 
A, B업체가 볍씨를 구매했던 충청지역 정미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쪽에서 두세 번인가 볍씨를 구매해 간 것 같다"며 "중간엔 세금계산서 (법인명 등을) 바꿔서 발급받아간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품질에 대해서는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 육안으로 검수해 판매했다"며 "경기미보다 훨씬 싸니까 우리랑 거래한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A업체 대표는 비싼 단가와 충청도에서 거래한 이유 등에 대해 "우리는 입찰되고 나서 업체(정미소)에서 받아 납품했을 뿐, 전문업체는 아니라서 시세보다 비싼지는 잘 모른다"며 "그곳까지 가서 거래한 것도 담당자가 따로 있어 나는 잘 모른다. (B업체와의 관계도) 내용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후 담당자에 대한 취재를 요청했으나, 아직 추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김포시 "담합 등은 지자체 확인 불가"…감사 착수

김포시 취서식지에 날아든 재두루미 모습. 김포시 홈페이지 캡처김포시 취서식지에 날아든 재두루미 모습. 김포시 홈페이지 캡처
과거 김포시는 입찰을 통해 김포지역 농업법인, 정미소에서 볍씨를 구매한 적도 있었다. 이 시기에는 볍씨 단가가 시세에 맞춰 일정하게 유지돼 왔다. 최근 4년간 고가 거래 때보다 볍씨 구매 예산을 절반 가까이 절약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지역 내 다수 미곡처리장 등이 존재함에도 곡물 취급 업체가 아닌 종합상사나 유통업체 형태의 '중개' 업체와 거래해 예산 낭비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사업 주체인 김포시와 국가유산청이 사후 정산 내역을 꼼꼼히 들여다 보지 않은 것도 문제다. 납품 확인을 위해 계량증명서 등을 확보하고는 있으나, 원가 규모나 볍씨의 등급 등 구매단가 적정성을 따지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은 누락돼온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지방보조금법)' 제17조(실적보고)에 따라 '지방보조사업자는 사업의 실적보고서를 작성해 지자체장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실적보고서에는 '사업에 든 경비를 재원별로 명백히 한 정산보고서 및 지자체장이 정한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김포시 관계자는 "납품업체 선정은 공개입찰로 하는 게 법적으로 맞다. 여러 입찰 조건에 맞춰 시스템에 따라 낙찰이 이뤄진 걸로 알고 있다"며 "참여 업체 간 담합 여부는 지자체가 인지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김포시 감사담당관은 이번 사안에 대해 본격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입찰 과정에서의 규정과 지방보조금법 준수 여부, 볍씨 구매 단가의 적정성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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