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만 모르는' 수서발 KTX 법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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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정부·코레일이 내세운 자료 부풀려지거나 왜곡"

최연혜 코레일 사장(가운데 오른쪽)과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왼쪽)이 26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계종 화쟁위원회 도법스님(가운데) 중재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철도파업 사태를 촉발한 수서발(發) KTX 자회사 설립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28일로 20일째를 맞은 철도노조 파업은 이미 사상 최장 기록을 돌파한 지 오래다. 정부는 노·사 대화가 난관에 부닥치자 여론전에만 몰두하고 있다.

보다 못한 정치권과 시민사회, 종교계가 뒤늦게 중재 노력에 나섰지만 뾰족한 묘안은 보이지 않는다. 노사 양측이 사실 관계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만성적인 적자와 부채를 줄이고 방만경영 행태를 바로 잡으려면 경쟁체제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6월 기준으로 17조6000억원에 달하는 코레일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선 경영혁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는 최근 정책브리핑에서 "코레일이 직접 (노선을) 운영하면 방만경영이나 비효율성(매출액 대비 인건비 49.9%)을 막을 수 없고, 철도건설 부채 상환도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국토부는 또 "코레일은 2007년 경영성과와 무관한 정부지원금과 용산 토지매각 등으로 당기순이익 발생시 특별상여금 327억원을 지급해 감사원에 적발된 바 있다"며 "수서발 KTX 설립은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코레일의 부채 규모 증가와 방만경영의 원인이 비정상적인 노사 단체협약과 과도한 인건비, 즉 '노동조합의 철밥통'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서울역 KTX 노선 대비 10%의 요금인하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부의 설명대로 수서발 KTX 법인은 과연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인 것일까.

철도공사 이사회 내부 자료와 전문가 견해 등을 종합해보면 정부의 '예측'은 과도하게 부풀려졌거나 왜곡된 측면이 커 보인다.

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입수한 코레일 이사회 보고 문건에 따르면 신규업체가 수서발 KTX 노선을 운영할 경우 코레일은 한 해 4600억원의 매출손실과 1417억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추산됐다.

오는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는 수서에서 출발해 서울역발 KTX와 평택에서 만나고, 이후부터는 영·호남으로 향하는 고속철도 전용선 1개를 공동 사용한다.

따라서 강남권 수요가 수서발 KTX로 이동해 코레일로서는 자회사에 손님을 빼앗기는 꼴이 된다.

코레일 이사회는 하루 4만4000명의 이용객이 서울역발 KTX 대신 수서발 KTX를 이용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한 해 4600억원의 손실을 입히는 이같은 결정은 명백한 업무상 배임"이라는 입장이다.

철도노조가 2009년 이후 4년 만에 파업에 들어간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철도공사 수색차량기지에서 열차들이 멈춰 서 있다.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자회사 설립시 과도한 부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코레일측 주장도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6일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코레일의 17조원 부채는 '귀족노조'보다는 정부의 부실 정책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코레일이 출범할 때 인수한 5조8000억원의 부채 중 4조5000억원은 경부고속철도 운영 부채를 인수한 것"이라며 "코레일의 경영실적과는 무관하게 떠안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가 방만경영의 온상으로 지목한 코레일 인건비도 실상과는 크게 달랐다.

코레일은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115명의 정원을 감축했으나 같은 기간 부채 비율은 74%에서 244%로 오히려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연구위원은 "공기업 적자는 인건비 증가 때문이 아니라 인천공항철도와 같은 부실사업 인수, 광역철도 연장 및 새로운 노선 개통에 따른 비용 급증, 4대강 사업과 같은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이처럼 정부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철도 부문을 민영화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여당은 이를 '민영화 괴담'이라며 여론진화에 나섰지만, 자회사 설립 과정에서부터 곳곳이 허점 투성이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수서발 KTX 법인은 큰 틀에서 민영화 수순"이라며 "상법상 주식회사에서 주주의 지분 매각을 금지하는 것이 위법적 조항이어서 무효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수서발 KTX 법인에 민간자본이 들어올 수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면서 "국민연금 투자를 가능하게 하면서 미국 자본의 투자를 막는 것은 내국민대우 위반이 된다"고 법인 설립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국토부 내부 용역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서문에 '2015년 개통 예정인 수도권 고속철도와 연계되는 노선부터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라는 문구가 들어있다"며 민영화 의혹 증폭에 쐐기를 박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고집을 꺾지 않은 채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

전날 노·사 대화가 중단된 데 이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의 노·사·정 중재 노력도 성과 없이 끝난 것이다.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박근혜 대통령은 각계각층의 중재 노력이 이어졌던 이날도 불통(不通)으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세종시에서 열린 경제관련 장관회의에서 "철도 부문은 국민을 위해 경영효율화 측면에서 경쟁체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며 "경제학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철도 방만경영에 따른 적자는 국민의 부담으로 귀착된다"고 말했다.

철도파업 사태 장기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박 대통령의 불통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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