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의문사 여대생父 "경찰, 채소장수 주제에…모멸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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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도 끝나기전 서둘러 수사 종결
-속옷에서 남성 정액 검출도 숨겨
-탄원서만 70여차례, 헌법소원까지
-경찰 부실수사도 공소시효 없애야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故 정은희 양 아버지, 정현조 씨


지난주, 15년 만에 전모가 드러난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 여대생이 고속도로에서 속옷이 벗겨진 차림으로 숨진 채 발견이 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성폭행 정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교통사고로 처리를 했는데요. 지난주에 검찰이 이 여대생의 성폭행범으로 스리랑카인을 붙잡으면서 이 사건은 단순교통사고가 아닌 성폭행 사건으로 밝혀집니다. 유족들, 참 할 말이 많다고 합니다. 지난 15년 간 진실을 찾아 헤맸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시죠. 희생자 고 정은희 씨의 아버님, 정현조씨가 지금 연결 돼 있습니다.

◇ 김현정> 딸의 성폭행범이 15년 만에 잡혔다는 소식 듣고 심경이 어떠셨어요?

◆ 정현조> 너무나 속아 왔고 속아 왔다가 그 소리를 들으니까,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마음이 서늘했습니다. (한숨)

◇ 김현정>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인 줄 아셨다면서요?

◆ 정현조>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다가 어떻게 단순교통사고가 아닌 걸 알게 되셨어요?

◆ 정현조> 학교에서부터 거리를 재고 차를 세워놓고서 사고 장소를 올라오는데, 거기 밑 풀밭에 속옷이 흐트러져 있더래요.

◇ 김현정> 그러니까 사건 당일에 부모님들은 정신없어서 거기까지는 못 챙기시고, 이모부하고 외삼촌이 사건 현장을 쭉 가다가 속옷을 발견한 거죠?

◆ 정현조> 그래서 혹시 얘가... 혹시나 싶어서 그걸 가지고 올라와서 고속도로 가드레인에 걸어놨어요. 그래놓고 영안실로 들어와서 쌍둥이 동생을 데리고 가서 확인을 했어요. 그건 둘이서 같이 입으니까 대번 알 수 있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희생자의 쌍둥이 여동생이 있는데 속옷을 같이 입었군요?

◆ 정현조> 네. 거들이라고 하는 거 있잖아요.

◇ 김현정> 동생한테 이게 맞느냐고 했더니 맞다. 이거 우리가 입던 그 팬티, 그 속옷이다. 이렇게 말을 했어요?

◆ 정현조> 그렇죠. 우리가 영안실에 내려가 확인할 때는 영안실 직원이 ‘교통사고라 험하니까 보지 마세요.’ 이랬어요. 위에 머리만 보고 왔어요. 머리를 완전히 망가트려 놨더라고요. 그래서 영안실 직원을 불러서 ‘다시 확인하러 내려가자.’ 이랬습니다. 내려가서 시트를 걷었는데 머리는 완전히 망가졌고요. 가슴을 보니 브라가 없더라고요. 밑에 옷을 내려 보려고 하니까 청바지 주머니 안감, 그 푸르스름한 걸 갔다가 ‘속옷이 이거다.’ 그러더라고요.

정은희 양 사망 장소 (자료사진)

 

◇ 김현정> 청바지 안감을 보고, 이게 속옷이라고요?

◆ 정현조> 네. 주머니 안감을. 그래서 화가 팍 나서 ‘야 임마, 그게 어떻게... 내려 봐.’ 이러니까 확 내려 봤어요. 그때 속옷이 없었어요. 확인을 했습니다.

◇ 김현정> 사고가 난지 얼마 만에 아신 거예요?

◆ 정현조> 맨 처음에는 아침 9시에 우리가 갔다 왔어요. 사고는 05시 10분에 났다고 그랬고요. 14시 쯤 됐습니다.

◇ 김현정> 속옷이 벗겨진 걸 찾은 시각이 오후 2시. 벗겨진 그 속옷이 딸의 것이라는 것도 확인 하셨고. 그러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이건 단순교통사고가 아니라는 걸 느끼셨다는 건데, 경찰이 더 이상 수사를 안 했다는 건가요?

◆ 정현조> 안 했죠. 처음에는 팬티를 안 주워 왔어요. 애들이 주워오려고 하길래 ‘그건 주워오지 마라. 경찰과 같이 확인하고 나서 경찰이 사진 찍고 해서 가져가게끔 하자.’ 하고 안 주워 왔거든요. 그래서 오후 늦게 파출소에다가 연락을 해서 ‘속옷이 떨어졌으니까 주우러 갑시다.’ 이렇게 말하니까 ‘밤이 늦으니 내일 아침 9시에 오라.’ 하더라고요.

◇ 김현정> 사고가 난 장소 근처에 일단은 속옷을 두고 왔습니다. 그리고나서는 경찰한테 ‘가서 확인하고 사진 찍으세요.’ 라고 하는데 ‘하룻밤 자고 가자.’... 상당히 중요한 증거이고, 그게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 정현조> 글쎄요. 우리는 그때 당시에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전혀 못 했습니다. 경찰도 믿었고 다 믿었는데...

◇ 김현정> 그 다음 날 가서 속옷을 같이 보셨어요?

◆ 정현조> 네. 우리 둘하고, 경찰 둘이 와서 사진을 찍고 수거해서 갔습니다. ‘검사를 해 달라.’ 하니까 경찰 하는 소리가 ‘길 가는 아줌마들이 XX하고 버린 건데 그걸 주워 와서 우리 딸 거라고, 그걸 해달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막 하더라고요.

◇ 김현정> 그러니까 길 가던 아줌마들, 그 농촌에 있는 아줌마들이 벗어놓은 건데, 왜 딸 것이라 우기느냐.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요?

◆ 정현조> 그렇죠.

◇ 김현정> 쌍둥이 자매가 분명히 우리가 입던 게 맞다고 하는데도요?

◆ 정현조> 네. 그렇죠. 결국은 안 하고 있었어요. 안하고 있다가 언론에서 떠드니까 그때서야 그 검사를 했죠. 그랬더니 ‘성명불상의 정액’이 나왔죠. 남성의 정액이 나왔어요. 그것도 우리는 가르쳐주지도 않고, 서류도 주지도 않고. 우리는 몰랐잖아요.

◇ 김현정> 안 나왔다고 얘기했습니까?

◆ 정현조> 담당 경찰들이 그걸 숨겼죠. ‘정은희의 속옷이 아니다.’

◇ 김현정> 정은희 씨의 속옷이 맞고, 남성의 DNA도 같이 나왔는데. 끝까지 정은희 씨 것이 아니라고 얘기를 했어요?

◆ 정현조> 네.

◇ 김현정> 그래서 부검이 끝나기도 전에 단순 교통사고라고 결론을 내리고, 15년 전에는 그렇게 끝나버린 거예요?

◆ 정현조> 그렇죠.

◇ 김현정> 그게 미제 사건 이런 것도 아니고, 그냥 종결입니까?

◆ 정현조> 종결이죠.

정은희 양 추모 홈페이지 캡쳐 화면

 

◇ 김현정>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사건은 종결이 됐는데. 그 속옷에 다른 진실이 있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 정현조> 우리가 경찰들을 직무유기로 고소했거든요. ‘왜 부검결과도 나오기 전에 교통사고로 처리를 했느냐.’ 그리고 ‘속옷도 사진을 일일이 찍었는데, 그런 사진들은 보여 주지도 않고.’ 그런 것 때문에 고소를 해서 항고에 재항고, 헌법소원까지 갔습니다. 헌법소원에서 2001년도 12월, 우리 딸의 것이 맞고 그 성명불상이 나온 것도 알았고요.

◇ 김현정> 그때서야 그 팬티에서 성명 불상의 남성 DNA가 나왔다는 것까지 알게 되셨군요. 만약 거기에서 직무유기로 고소하지 않고 넘어갔으면 여전히 단순 교통사고인가요?

◆ 정현조> 그렇죠.

◇ 김현정> 그 팬티는 마치 그 여성이 스스로 벗은 것밖에 되지 않았겠군요.

◆ 정현조> 맞아요. 그리고 그 형사라는 사람은 ‘몸이 찝찝하니까 속옷을 벗어서 가방 속에 넣고 다니다가 버렸다.’ 이렇게 모멸감을 주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죠, 그때 당시는.

◇ 김현정> 헌법소원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 정현조> 그게 기각이 됐죠.

◇ 김현정> 기각이 됐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청와대며 법무부에다가 탄원서, 고소장을 계속 내셨다고요?

◆ 정현조> 그렇죠. 진정서, 탄원서를 내고.. 한 70번 이상 될 겁니다.

◇ 김현정> 답변은 어떻게 왔습니까?

◆ 정현조> 답변은 전부 ‘혐의 없음.’ 증거가 불충분하면 왜 우리들보고 증거를 해오라고 하느냐.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고요. ‘우리가 교통사고라고 하면 교통사고라고 알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소장사 하는 주제에.’ 그러면서 ‘돈도 없으면서 범인을 잡으면 뭐하냐.’

◇ 김현정> 돈도 없으면서 범인을 잡아서 뭐하느냐, 그런 소리까지 들으셨어요?

◆ 정현조> 네. 그렇습니다. 한 번, 두 번이 아니었죠. 우리가 돈보고 잡으려고 하는 건가요? 범인 잡으려고 하는 거지... 그런 모멸을 줄 때는.... (한숨)

◇ 김현정> 그렇군요. 아버님, 원래 채소 장사하세요?

◆ 정현조> 그 당시에는 그걸 했습니다. 이걸 밝혀야 되겠다. 내가 우리 딸애한테도 약속을 했어요. '내가 꼭 범인을 잡아주겠다.' 약속을 하고서 장사를 접고 계속 다녔죠. 전국 각각 안 다닌 데가 없습니다.

◇ 김현정> 세상에... 그럼 생업인 채소장사도 포기하고서 15년 동안 범인 잡으러, 증거 잡으러, 고소장 내러, 탄원서 내러 다니신 거예요?

◆ 정현조> 그렇죠. 생계는 그때 우리 집사람이 반찬 가게를 했으니까 그렇게 하고...

◇ 김현정> 그 세월 생각하면 지금 이 짧은 시간 안에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심경이 복잡하실 텐데요. 그러다가 이번에 다른 범죄로 잡혀온 스리랑카인을 조사하던 중, 이 남성의 DNA가 그때 딸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걸 발견했군요?

◆ 정현조>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15년이란 세월을 너무나 속아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확신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조사가 잘못 됐으면 공소시효 하는 걸 없애야 됩니다. 끝나고 나서도 잘못 됐으면 경찰이 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법이 만들어져야죠.

◇ 김현정> 그 말씀은 잘못된 수사라고 밝혀도 처벌은 못 하는군요?

◆ 정현조> 못하는 거죠.

◇ 김현정> 그 당시 조사했던 그 경찰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정현조> 아무 소식 없습니다. 범인 잡았는데도 아무 소식도 없고.

◇ 김현정> 미안하다는 사과 조차 있을 턱이 없네요.

◆ 정현조> 그렇죠. 누구 하나 전화 오는 것도 없고, 미안하다는 한 마디.. 이건 사과해야 됩니다. 진정한 사과를 해야 됩니다.

◇ 김현정> 15년 간 딸의 사망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홀로 고군분투해 온 분입니다. 아버지 정현조 씨 만나고 있습니다. 너무나 허망하게 보내서 더 애틋하시죠?

◆ 정현조> 네. 정말 착하고 아주 명랑하죠. 말 잘 들으며 공부도 잘 하면서. 너무 안타깝죠. 아빠가 잘못해서 그런가보다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런 사고가 났나 싶기도 하고... (한숨) 많이 아쉽습니다.

◇ 김현정> 왜 아빠가 잘못해서... 그런 생각이 왜 드세요?

◆ 정현조> 아빠가 잘 살았으면... 애가 더 좋은 대학을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서울로 가려는 걸 내가 그 대학으로 가게 했어요.

◇ 김현정> 아버님의 탓이 아닙니다. 가난 탓도 아니고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지는 걸 따님이 꼭 봐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늘에서도 말이죠.

◆ 정현조> 내가 ‘아빠를 나무라지는 말아라. 그래도 아빠가 할 만큼은 했다. 너무 나무라면 아빠도 서운하지 않겠냐...’ (한숨) 하늘나라에서, 범죄 없는 세상에서 잘 살아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그래서 은희양은 뭐라고 답하던가요?

◆ 정현조> ‘아빠 괜찮아. 이제 너무 신경 쓰지마. 쉬세요...’ 그렇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 나는 아직 좀 더 남았어요. 공소시효 없는 법도 고쳐야겠고요.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좀 전해 줬으면 싶은 게, 수사관이 피해자한테 이렇게 하는 일은 없어야 된다.

◇ 김현정> 채소장사 하시던, 농촌에 사시던 아버님이 정말 뜻하지도 않게 갑자기 법 공부하시게 되고, 또 수사 공부하시게 되고. 이거 참 희한하게 됐습니다.

◆ 정현조> 네. 실제로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한숨)

◇ 김현정> 지금 이렇게라도 진실이 밝혀지게 돼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아마 은희양도 하늘에서 지금 아버님 모습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너무 아파하지 마시고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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