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밀린 건보료 깎아달라…" 어느 80대 할머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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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 대수술 필요하다①>부자는 피하고 저소득층은 빚으로 쌓이고...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할 정도로 짧은 기간에 성장해왔다. 그러나 부과체계에 대한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부과체계가 직장-지역으로 이분화 돼 수익이 안정적인 직장인들은 보험료를 상대적으로 덜 내고 영세 자영업자나 무직자들이 보험료를 많이 내는 소득 역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허술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갈수록 늘고 있다. CBS는 현재 건강보험 부과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연예인, 자산가의 건보료 다이어트.. 위장취업에 페이퍼컴퍼니까지

"머리만 잘 쓰면 줄일 수 있다. 그대로 내는 사람이 바보다" 서울에 거주하는 자산가 이모(55)씨는 담당 재무설계사의 이같은 얘기를 듣고 건강보험료 다이어트에 나섰다. 직장인으로 등록만 하면 백여만원 되는 건보료를 단돈 몇 만원대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재무설계사 등이 건보료를 알아서 줄여주기도 한다"고 이 씨는 말한다.

연예인이나 은퇴한 고소득자들 사이에서는 건강보험료를 줄이는 수법이 해마다 지능화되고 있다. 위장 취업은 기본이고 페이퍼컴퍼니까지 만든다. 현행 건강보험 체계에서는 직장가입자만 되면 보험료를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60대 여성 연예인 김모씨. 한달 평균 3,300만원, 연간 4억원 정도를 벌어들이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월 168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하지만 김씨는 지인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에 90만원을 받는 직원으로 위장 취업해 월 2만7천원의 보험료만 냈다.

연예인 박모씨는 서울 강남에 건물까지 소유한 자산가다. 소득과표 8억원으로 건강보험료로 월 153만원이 부과되자 지인과 건보료 줄이기 작전을 짰다. 지인 회사의 비상근 감사로 이름을 올리고 직장보험료를 월 2만8천원를 납부해오다 건보공단에 적발돼 3,700만원을 한꺼번에 냈다.

위장 취업은 연예인 뿐 아니라 자산가들이 흔하게 쓰는 수법이다. 대전에 사는 78살 이모씨도 재산, 이자 및 배당소득이 어마어마한 과표소득 9억원의 고소득자지만 월 20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피하기 위해 친구 회사에 비상근 근로자로 등록했다. 그러자 이씨의 건보료는 5만3천원으로 줄었다.

월 100만원 벌어도... 직장가입자 2만9천원 vs 지역가입자 17만9천원

이같은 사례는 건보료 이중 부과 체계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건보료는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로 이분화 돼 있다. 직장, 지역가입자가 각각 따로 운영되던 건강보험이 2000년 전국민 건강보험으로 통합됐지만 부과 방식은 여전히 한지붕 두가족이다.

직장가입자가 되면 다른 소득이나 재산 상태는 따지지 않고 오로지 급여로만 건보료가 계산된다. 거기에 절반은 회사가 부담한다.

반면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종합소득, 전월세를 포함한 토지 주택 등 재산, 자동차로 계산된다. 종합소득이 연 500만원 이하이면 계산법이 또 다르다. 재산, 성, 연령, 자동차 등을 다시 따진다.

똑같이 월 100만원을 번다고 가정했을 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희비는 엇갈린다. 직장가입자는 월급 100만원에 보험료율 5.89%로 5만8900원이 부과된다. 절반은 회사가 내고 절반인 2만9450원만 본인이 내면 된다.

지역가입자가 월 100만원을 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득 뿐 아니라 재산, 자동차 등을 따로 합산해 계산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1억짜리 집에 살고, 5년된 1600cc 자동차 1대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사람은 월 100만원을 벌어도 월 17만9260원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소득은 같은데 보험료 부담은 15만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자산가들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지 직장가입자로 편입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난한 지역가입자들, 밀린 건보료 빚으로 대물림

혜택은 똑같은데 거둬들이는 기준이 이렇게 다르다보니 불만이 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지역가입자들은 주로 소득이 불규칙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다. 1인 영세사업장, 실직자, 농어업인이 주를 이룬다. 과거에는 의사, 약사 등 고소득층 상당수가 지역가입자였지만 2003년부터 1인 이상 사업자도 직장가입자로 편입되면서 대부분 빠져 나갔다.

가난한 지역가입자들은 건보료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건강보험공단 1층 민원실을 찾은 정모(80살) 할머니는 4년치 밀린 건보료를 깎아 달라고 직원에게 읍소했다. "아들이 아르바이트로 월 70만원을 벌어들이는 것이 수입의 전부"라며 "사글세 40만원에 부식비, 전기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부담해야 하는 건보료는 4억대 수익을 내고도 위장취업한 연예인 김씨와 비슷하다.

이모(47살)씨는 건보료를 2년 넘게 내지 못해 338만원이 체납됐다. 사업 부도에 허리 디스크까지 걸려 서울 대치동 한 고아원에서 중학생 아들과 근근히 살고 있지만 건보료는 매달 쌓여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으로 남았다.

건설사업을 하다 IMF 때 부도가 난 정모(63살)씨의 경우 98년도부터 건보료를 내지 못해 12년간 무려 1,414만원이 체납됐다. 본인은 자포자기한 채 폐인처럼 살고 있는데 천만원 넘는 건보료가 자식들에게 대물림됐다고 생각하니 더 막막하다. 연대납부 규정으로 어렵게 자라온 아들, 딸에게 밀린 건보료는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빚이 됐다.

부자는 빼돌리고, 빈곤층은 빚으로 쌓이고... 이중 부과체계 개선해야

건강보험료 체납 현황을 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6개월 이상 장기 체납 세대는 157만 세대, 체납액은 2조1566억원에 달한다. 전체 지역가입자 790만 세대 중 20%를 차지한다. 건보료를 빚으로 떠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난은 병을 달고 오게 마련. 장기 체납자들이 쓴 진료비는 3조1432억에 이른다. 6개월 이상 체납하면 급여 혜택이 제한될 수 있지만 정부는 아픈 사람들이 치료는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전용배 건강보험공단 부과체계개선단장은 "장기체납자들은 형편이 어려운 일용직, 무직자나 영세사업자들이 많다. 버는 돈이 거의 없어도 전월세, 자녀, 자동차 등으로 추산을 하다보니 생계형 체납자들이 많이 생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장가입자들은 급여에만 보험료가 부과돼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지역가입자들은 월세에 중고차까지도 일일이 보험료가 붙어 소득이 없어도 보험료는 계속 쌓이는 구조"라는 것이다.

부자들은 빼돌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폭탄이 되는 건보료 부과체계를 대폭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현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소득자들은 직장가입자에만 편입되면 건보료를 적게 내지만, 형편이 어려운 지역가입자는 월세나 자동차까지 계산돼 부담이 크다"면서 "소득 중심으로 부과체계가 통일되면 자연스럽게 형평성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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