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수
2010년 11월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525호 형사법정.
불법사찰 증거인멸과 공용물건손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진경락 기획총괄과장이 장진수 주무관과 함께 피고인석에 섰다.
같은 해 6월21일 국회 정무위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무차별 사찰했다"는 폭로가 나오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약 4개월만이다.
불법사찰에 나선 점검1팀 직원들의 컴퓨터 자료를 삭제하라고 장 전 주무관에게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진 전 과장은 결심 공판인 이날도 혐의 자체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의 구형을 앞두고 진 전 과장측 변호인은 "공소장에 적힌 대로 장진수 주무관에게 증거인멸 자체를 지시하거나 공모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컴퓨터에 영구 삭제 프로그램을 설치한 행위는 통상적인 보안조치로서 컴퓨터 보안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장 주무관이 처분권한을 가지고 행한 것"이라며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넘겼다.
"7월4일 밤 늦게 전화를 해 컴퓨터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장 전 주무관의 진술에 진 전 과장은 "월요일 열리는 지원관 주재 팀장 회의를 하루 연기하자고 전화했을 뿐 증거인멸을 지시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총리실 직원들과 정치권 인사들, 기자들이 주로 앉았던 방청석에서 순간 웅성거림이 쏟아졌다.
검찰은 "공무원이 대담하게도 공공물건인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훼손하는 등 그 범행 정도가 중한데도 범행 자체를 부인하고 반성하지도 않아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년을 구형했다.
# 재판부 "반성의 빛을 찾기 어렵다"
같은 해 11월 2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25호 형사법정.
진 과장과 장 주무관, 권중기 점검1팀원이 다시 피고인석에 나왔다.
사건의 1심을 맡은 형사합의35부(부장 정선재 부장판사)는 최종 선고를 내리면서 수사와 재판에 임하는 진 과장의 태도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진경락 과장)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범행을 극구 부인할 뿐 아니라 모든 행위를 장진수 주무관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미루거나 보안지침에 따른 정당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반성의 빛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부하직원에게 자료 영구삭제를 지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확실한 처리를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시하고 주도했다"며 "책임이 중하다"고 덧붙였다.
진 전 과장은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반면 또다른 피고인 장진수 주무관은 6년간 성실하게 공직에 종사한 점,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상관인 진경락 과장의 지시에 따라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등이 참작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진 과장이 장 전 주무관에게 컴퓨터 자료삭제(이레이징)와 영구삭제(디가우징)를 직접 지시했다고 진술한 총리실 직원들의 증언을 모두 받아들였다.
자료삭제 지시를 내린 2010년 7월4일 밤 진 과장과 장 주무관이 3차례 통화한 내역.
그리고 검찰의 압수수색이 들어오기 직전인 7일 기획총괄과에 배당된 차량을 이용해 수원에 있는 디가우징 업체에 장 주무관이 다녀온 것도 진 과장의 지시였음을 인정했다.
진 과장이 컴퓨터 자료를 영구히 삭제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묻고 다녔고 장 주무관에게 직접 실행을 지시했다는 기획총괄과 직원들의 증언도 모두 증거로 채택됐으며 혐의 입증에 인용됐다.
재판부는 "진경락 과장이 수사기관의 파일 복구를 두려워해 자료들을 영구히 복제할 수 없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할 것을 장진수 주무관에게 지시하고, 이를 수시로 보고받고 확인하는 등 공모관계를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진 과장은 다음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지만 혐의 자체는 모두 인정됐다.
#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상사
장 전 주무관은 직속 상관이었던 진경락 전 과장에 대한 원망을 수차례 표현했다.
장 전 주무관의 한 측근은 "진 전 과장이 남자답게 증거인멸울 자신이 지시했다고 인정만 하면 되는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계속 거짓말을 하니까 장 전 주무관이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장 전 주무관은 자신이 중형을 선고받은 것도 결국 진 전 과장의 거짓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원망하는 마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현재 재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별수사팀은 비선의 핵심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최종석 전 행정관을 최근 구속한 데 이어 진 전 과장에 대해서도 소환을 공식 통보하면서 본격적인 ''윗선 캐기''에 나섰다.
1차 수사와 재판 당시 진 전 과장은 개인적 이유건 조직적 필요건 윗선을 보호하기 위한 ''의리있는 부하직원''이었지만 장 전 주무관에게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상사''였던 셈이다.
검찰은 소환에 응하지 않는 진 전 과장에 대해 강제구인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