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세 준 집을 팔라는 정부의 매물출회 정책이, 서울의 제한된 공급 여건과 높은 임차 비중 속에서 전월세 시장 불안과 매매가 상승 흐름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주택자가 집을 사면 전세 수요도 준다"…정부의 셈법
지난 10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재개되면서 매물 잠김이 일어나자 정부는 12일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의무를 연말까지 유예시키며 비거주 1주택자의 매물출회를 유도하기로 했다.
김이탁 국토부 1차관은 이날 조치가 전월세난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기존에 전월세를 살던 무주택자가 물량을 가져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월세 공급도 빠지지만 수요도 줄어, 시장 밸런스에서 총량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관의 이 같은 전망은 이재명 대통령의 인식과 같이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를 압박하면 전월세 부족으로 서민 주거 불안이 심화된다는 주장은 집값 상승과 전월세 부족의 주요 원인인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를 비호하는 기적의 논리"라고 일갈했다. "공급만큼 수요도 동시에 줄어드는데 전·월세 공급 축소만 부각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오히려 매매시장에 매물이 증가하면서 집값이 안정되고 전·월세가도 안정되는 것이 훨씬 더 논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사정 모르는 소리"…전월세·매매가 트리플 상승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셈법이 서울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은 신규 공급 여력이 제한적이고 임차 비중이 매우 높다. 통계청 주택총조사 기준 서울의 자가점유율은 전국 평균보다 크게 낮은 40%대 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울 거주 가구 절반 이상이 임차 형태로 거주한다.
직장 출퇴근과 자녀 교육을 위해 특정 지역에 임차해 살던 세입자는 집주인의 매각으로 퇴거를 요구받을 경우 인근 임대차 시장에서 새 주거지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부 계산처럼 임대차 수요가 단순히 사라지지 않는 구조라는 뜻이다. 여기에 연간 5만 쌍 가까운 서울 신혼부부의 세대 분리와 직장을 찾아 서울로 이주하는 인구 등 신규 임차 수요도 꾸준히 유입된다. 서울은 직주근접 수요가 강하고 대체 주거지가 제한적인 만큼, 임대차 수요 감소 폭이 정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의 예상대로 전월세난과 임대차 가격 상승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매매가까지 밀어 올려졌다.
5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전주 대비 2배 가까이 확대됐다.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방침을 명시한 직후인 1월 넷째 주(0.31%) 이후 15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의 전세 상승률은 0.28%로 2015년 11월 둘째 주(0.31%) 이후 약 10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전세물량 부족에 월세화의 비중은 서울 주택임대차 거래 중 70%를 넘어섰다. 아파트만 놓고 봐도 월세 거래 비중이 약 50% 수준까지 올랐다. 예전에 강남에서나 보았던 월세 3백만 원 거래가 비강남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공공임대, 민간 임대 감소 속도 못따라가
정부는 전월세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올해 총 3만7천여 가구(수도권 2만1천여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상당수가 기존 주택을 사들여 공급하는 매입임대에 집중돼 있어 실수요자 선호가 높은 아파트형 건설공공임대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올해 입주 예정인 건설공공임대 물량은 7천여 가구 수준인 반면,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 등 건설공공임대 입주 대기자는 9만3천 명을 웃돈다. 공급 물량이 대기수요의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에서 공급된 신규 공공임대는 3004가구 중 아파트는 164가구에 불과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민간 임대는 세제 변화가 나오면 즉각 시장에서 움직이지만 공공임대는 예산 확보와 매입, 입주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민간 임대 감소 속도를 공공 공급이 따라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앞으로도 계속되는 매물출회 정책
시장의 우려에도 정부는 민간 임대 물량을 매물로 출회시키는데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거주할 생각 없이 오로지 시세 차익을 노리고 산 주택에 왜 세금을 깎아줘야 하느냐"며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방침을 밝힌 후, 정부·여당은 1주택자 장기보유특별공제에서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고 보유 요건은 약화시키는 법개정을 준비 중이다.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 축소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등록임대사업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은 후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8일 "조정대상지역의 임대아파트 사업자에게 주어지던 양도세 중과배제 혜택의 형평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10일 "조세 형평성 관점에서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는 영구적 양도세 감면 혜택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등록된 민간임대주택은 약 41만 가구를 넘는다.
"문재인 정부보다 어려운 상황" 경고
적잖은 전문가들은 현 정책 기조가 전월세난을 심화시키고, 집값 상승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은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정부가 매물 출회 정책에만 몰두하며 월세·전세 급등과 이로 인한 매매 강세 현상을 외면하고 있다"며 "매물이 늘더라도 월세·매매가격이 과도하게 오른다면 정부 부동산 안정 대책은 실패한 것이다. 문재인 시즌 2가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김인만부동산연구소 김인만 소장은 "문재인 정부보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2년 금리 상승으로 전세가가 떨어졌을 때 전세 계약을 한 5만 세대의 임차인은 4년(계약갱신권을 쓴 경우)이 지난 올해 급등한 시세를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지금 정책은 전월세를 없애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세를 구하러 갔다가 밀리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매수하겠다는 심리가 퍼지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을 '강제매수'라고 표현했다.
전세난이 매매 자극…2020년의 데자뷔
시장에서는 최근 분위기를 보며 2020~2021년 전세난을 떠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시에도 실거주 강화와 매물 회수, 임대 공급 감소가 동시에 나타났고,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시행 이후 서울 전세시장은 급격한 불안 양상을 보였다. 2020년에 한국부동산원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약 12% 상승했다.
매매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부동산원 기준으로는 2020~2021년 서울 아파트값이 연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고, KB부동산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20년 말 10억4299만 원에서 2021년 6월 11억4283만 원으로 반년 만에 약 1억 원 상승했다.
물론 지금은 당시와 환경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2020~2021년에는 초저금리와 유동성 확대, 갭투자 급증이 동시에 나타났지만 현재는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강한 대출 규제가 유지되고 있다. 전세난이 발생하더라도 당시처럼 곧바로 매매시장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이 오히려 더 구조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당시에는 정책 조정으로 일부 완화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착공 감소와 공급 공백, 정비사업 지연처럼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115일간의 매물출회 정책…과열 막을 수 있을까?
한국부동산원의 서울 집값 상승 통계와 '서울 집값 상승 심리가 올라갔다'는 국토연구원의 조사결과가 나온 직후인 지난 15일 정부는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구윤철 부총리는 "5월 10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재개된 이후, 매물이 감소하며 가격 상승폭이 확대되는 모습"이라며 "시장 불안이 확대되지 않도록 현재의 국면을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모든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릉골프장 부지 등 개발을 기존 계획보다 1년 앞당긴 2029년 착공으로 추진하고, 강서 군부지 및 노후청사 복합개발 등 약 2900호 규모 사업은 2027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피스텔 등 입주 가능한 주택을 단기에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고 덧붙였다. 그리고 금융과 부동산의 '절연'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공급 속도와 물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선언하며 매물출회 정책을 본격화한 지 벌써 115일이 지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예상대로 매물이 증가하면서 집값이 안정되고 전·월세가도 안정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시장에서는 정책효과에 대한 의문이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