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는 정말 이례적인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중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국을 힘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욕심도 없어 보인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내려놓은 미국 대통령은 어쩌면 트럼프가 처음인지도 모른다. 이번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돌아보면 지난 20여 년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기대와 실망, 그리고 분노의 반복이었다.
2010년 전후만 해도 '기대의 시대'였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성장이 세계의 성장"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부상을 막기보다 국제 질서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이려 했다. 중국이 성장하면 더 개방적이고 책임 있는 국가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일종의 관여(engagement)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시진핑 시대 들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변화했다. 남중국해를 군사화했고, 기술 굴기를 본격화했으며, 미국이 설계한 세계 질서 안에서 점점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됐다. 워싱턴에서 "중국을 너무 순진하게 봤다"는 반성과 자조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도 2016년 전후였다.
그 흐름을 공식화한 인물이 트럼프였다.
워싱턴 기성 정치를 비판하며 대통령이 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관세 전쟁이 시작됐고, 화웨이 제재와 공급망 분리 움직임이 이어졌다. 트럼프가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던 코로나19 팬데믹은 반중 정책을 반중 정서로까지 확장시켰다. 워싱턴에서는 디커플링(decoupling), 즉 중국과의 전략적 결별까지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흥미로운 것은 바이든 행정부였다. 바이든은 트럼프 시대의 대중 강경 노선을 상당 부분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첨단 기술과 공급망, 동맹 네트워크를 총동원한 촘촘한 대중 견제 전략에 가까웠다. 2022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은 중국을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능력을 모두 가진 유일한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미·중 경쟁은 무역 갈등을 넘어 기술과 안보, 공급망과 이념이 결합된 장기 패권 경쟁으로 확대됐다.
그래서 트럼프 2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미·중 관계가 사실상 결별 국면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트럼프 역시 다시 고율 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도 달랐다. 중국은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망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트럼프는 움찔하며 시진핑에게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 그것이 지난해 10월 부산에서의 일이었다.
연합뉴스그 후속 격으로 열린 이번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시진핑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불렀고,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양국 관계의 뇌관인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를 잘못 다루면 "충돌과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까지 경고했지만,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가 중국 영토를 떠난 뒤에야 대만 문제를 언급했다.
트럼프는 말로는 '환상적인 딜'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산 농산물과 보잉 항공기 판매 같은 소소한 세일즈 성과를 강조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는 오히려 시진핑이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런 수사는 과거에는 주로 미국 지도자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이 미국을 향해 안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진핑이 말하는 '안정'은 무슨 의미일까. 중국은 안정을 통해 시간을 벌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반도체와 AI 같은 핵심 기술에서 미국 의존을 줄이고, 공급망을 스스로 통제할 시간을 벌고 싶어 한다. 동시에 미국과 유럽, 아시아 기업들이 다시 중국 시장에 깊숙이 들어오도록 만들고 싶어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미국 기업인들을 대거 환대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중국 시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는 순간, 그 미국 기업들은 백악관과 의회에 지나치게 강경한 대중 정책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자신은 외부 의존을 줄이면서도, 역으로 서방이 중국에 더 의존하게 만드는 구조를 장기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중국을 손보려 했던 트럼프는 이제 중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반면 여전히 미·중 관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싶어 하는 시진핑은 일단 그 손을 잡기로 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역학 관계가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와 시진핑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수처럼 느껴졌던 '신냉전'은 당분간, 적어도 3년간은 흘러간 유행가일 것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든 이 '전략적 공백기', 한국은 전략적 공간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 3년은 길고도 짧다.
박형주 칼럼니스트
- 전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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