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윤창원·류영주 기자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외신에 전달케 한 직권남용 행위가 1심에서 무죄로 결론 난 가운데, 비슷한 구도의 2차 종합특검(권창영 특별검사) 수사가 주목받고 있다.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외교부를 동원해 우방국에 계엄의 정당성을 설파했다는 의혹이다.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이 정당한 근거를 가진 것처럼 외국에 알려 내란의 동력을 얻으려 했다는 골자는 같지만, 대통령비서실이 아닌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직원들이 동원됐고 계엄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외국 정부 측에 메시지가 전달됐다는 차이가 다른 결론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尹 지시로 '허위 공보'한 비서관, 법원 "정당한 직무수행"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국무회의 심의권 침해 등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도, 공소사실 중 허위 공보 관련 직권남용은 무죄로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해제 후인 12월 4일 하태원 당시 해외홍보비서관(외신대변인)에게 전화해 '정당한 목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취지의 PG(프레스 가이던스)를 외신에 전파하도록 한 사건이다.
내란특검은 '국회의원 출입을 막지 않았다'는 등의 PG 내용은 허위사실이므로 하 비서관은 지시를 따를 의무가 없는데도 국내·외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려는 윤 전 대통령의 직권 남용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됐다고 공소사실을 구성했다. 해외홍보비서관은 '사실에 터잡아 업무를 수행해야 할 법령상 의무'가 있을 뿐, 허위사실을 유포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통령실 소속 비서관은 대통령의 입장을 가능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작성해 외신 등에 전달해야 할 의무를 부담할 뿐, 그 내용 중 사실관계를 판별해 전달할 권한이나 의무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PG는 국정 현안에 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표명하거나 홍보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PG에는 대통령의 주관적 입장이나 견해, 판단이 주로 담길 수밖에 없고, 이는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행위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판결문에는 하 비서관이 자신의 지위를 '조언자(Advisor)가 아니라 사자(使者, Secretary)'라고 진술한 점 등이 근거로 담겼다.
특히 전달된 PG가 언론에 보도될 때 '대통령실의 입장'임이 명시되고, 통상적으로는 그와 관련한 다른 기사들도 보도되기 때문에 PG 내용에 일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있더라도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당시 시점에서 수많은 언론이 계엄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보도하고 있었다는 점도 적시됐다.
'계엄 선포 직후' 우방국에 정당화 메시지…차이는?
권창영 특별검사가 사무실 현판식을 마치고 특검보들과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반면 종합특검이 수사 중인 국가안보실의 우방국 설득 행위는 직권남용 혐의의 상대방이 '대통령의 입'인 비서실 관계자가 아니라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공무원들이라는 점 등에서 직권남용죄 성립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종합특검에 따르면 신 전 실장과 김 전 차장은 안보실과 외교부 공무원들에게 지시해 외교부 공무원들로 하여금 미국 등 우방국에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보내도록 했다.
△이번 조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것 △국회가 탄핵소추, 예산삭감 등으로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대한민국 헌법질서의 실질적 파괴를 기도한 것에 대응해 헌법 테두리 내에서 정치적 시위를 한 것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좌파, 반미주의에 대항하고자 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내용 등이 메시지에 담겼다.
윤 전 대통령과 안보실 수뇌부가 외교부 공무원들에게 이같은 지시를 할 권한이 있는지, 대통령의 입장을 전파하는 비서관과 달리 국가안보와 외교·국제관계업무 등의 사무를 관장하는 책임을 지는 부서의 공무원들이 본래 의무에 벗어나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이 직권남용죄 수사 과정에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종합특검은 외교부를 통해 우방국에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으로 이같은 메시지가 전달됐다는 점에서 반론 취재가 가능하고 보도 자율성이 있는 외신에 PG를 전파한 것보다 죄질이 무겁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허위 PG 사건의 경우 계엄이 종료된 뒤 벌어진 일이라 윤 전 대통령에겐 직권남용 혐의만 적용됐지만, 우방국 메시지는
계엄 선포 직후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벌어진 일이다. 내란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담한 상황인 만큼 종합특검은 신 전 실장과 김 전 차장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
지난 9일 김 전 차장의 자택과 대학 연구실 등을 압수수색한 종합특검은 확보한 자료 분석을 마치는대로 피의자 소환조사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