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씨가 경찰 구조 당시 단지 내부에서 찍은 사진. 밖에는 경찰 차량이 도착해있다. 선호씨 제공(전편 요약) 하루 약 14시간 근무가 매일 반복되는 생활, 선호씨는 점차 범죄 조직에 스며들어 갔다. 선호씨와 친구 종우씨를 관리하던 한국인 구 팀장과 중국인 '페페'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했지만, 그저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철통같은 경비를 피해 방을 청소해 주던 현지 아주머니 휴대전화를 빌려 구조 요청을 시도했다. 몇 차례 신고가 무산되는 동안 폭행도 이어졌고, 수화기 너머 피해자에게 입금을 말리는 문자를 몰래 보냈다가 발각돼 부스에 감금되기도 했다. 밥값을 아껴 휴대전화를 직접 마련해 다시 신고에 나섰지만, 신고 사실이 들통나 다른 단지로 옮겨졌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던 선호씨와 종우씨는 목숨을 건 마지막 신고에 나섰고, 결국 현지 경찰에 의해 단지에서 빠져나온다.
탈출은 끝이 아니었다. 약 석 달 반 만에 '웬치'에서 빠져나왔지만, 선호씨와 종우씨는 여전히 구 팀장과 '페페'의 손아귀에 있었다. 5평 남짓한 방, 스무 명이 몸을 붙인 채 생활해야 하는 시아누크빌 경찰서 유치장에 이들과 함께 갇혔기 때문이다.
범죄에 가담한 이상 한국으로 돌아가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처벌보다 더 두려웠던 건,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두 사람은 구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경찰에 자수하기로 결심하고 자수서를 작성한다. 어느 정도의 거짓을 곁들인.
"너 아들, 연변 킬러 보내서 죽여줄까"
선호씨가 단지에서 빠져나와 시아누크빌 경찰서에 옮겨진 후 아버지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보낸 메시지. 선호씨 아버지 제공
마침내 범죄 단지를 벗어나 시아누크빌 경찰서로 옮겨진 건 10월 16일.
선호씨는 유치장에서도 구 팀장과 '페페'에게 시도 때도 없이 협박을 당했다고 자수서에 썼다. 몰래 구조 요청을 한 선호씨와 종우씨가 그들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두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 자신들의 존재도 발각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특히 페페는 선호씨와 종우씨의 여권은 물론, 조직에 합류할 때 제공했던 신상정보 등을 모두 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선호씨와 종우씨를 다시 단지로 돌려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선호씨의 집을 로드뷰로 찾아 보여주면서 가족의 안전을 위협했다고도 한다.
페페 : "여기 너네 집 맞지? 너 아들도 있잖아. 연변 킬러 보내서 죽여줄까?"
구 팀장에게서도 비슷한 협박에 시달렸다.
구 팀장 : "너희 통장, 다 자금세탁에 쓰인 거 알지? 실질 총책은 너야. 나는 없는 죄도 만들 수 있을 만큼 너에 대한 자료가 많아."캄보디아는 경찰과 현지 범죄 조직의 유착이 심한 곳이다. 범죄 단지를 운영하는 총책급 인물들이 경찰 등 기관을 매수하는 행위를 현지에서는 이른바 '관(官) 작업'이라고 부른다. 구 팀장은 '관 작업'이 된 시아누크빌 헌병대와 연락하고 있다며 선호씨와 종우씨를 빼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구 팀장 : "경찰서장을 매수할 거야. 너네가 50살, 60살이 될 때까지 절대 한국에 못 간다. 여기서 영원히 일하게 만들어줄게."이 말은 현실이 되는 듯해 보였다. 유치장에 수감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호씨가 속해 있던 '노쇼사기' 조직의 총책, 중국인 '마중'이 나타났다고 한다. 마중은 먼저 페페를 빼내기 위해 경찰에 2만 불(약 2800만 원)을 건넸다. 그렇게 페페는 짧은 구금 끝에 유치장을 빠져나갔다.
'다시 팔려 가거나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선호씨는 "우리도 경찰이 넘겨버리면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치장 안에서 5일 동안 떨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자수서에 썼다.
이후 구 팀장 역시 같은 방식으로 경찰에 2만 불을 전달했다고 한다. 막을 방법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그저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선호씨는 경찰서 사무실 책상 위에 구 팀장이 건넨 달러가 놓여있는 모습을 몰래 사진으로 남겼다.
선호씨가 시아누크빌 경찰서에서 직접 찍은 사진. 테이블 위에 달러 뭉치가 놓여져 있다. 선호씨 제공또, 구 팀장이 단속된 이들을 빼내 주는 '브로커'로 추정되는 인물과 통화하는 모습도 몰래 영상으로 찍었다. 영상을 보면, 어두컴컴한 유치장 안 몇몇은 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고 그 사이에서 구 팀장의 낮은 목소리가 중국어와 섞여서 들린다.
구 팀장 : "저희 사무실 옮겼는데 거기서 그냥 (잡혔어요).. 제가 받을 돈이 그때 얼마라고 했는지 금액 알려주시면 제가 지금 바로 말씀해 놓을게요."구 팀장은 "2만 불이 조금 넘게 (필요하다)"라며 구체적인 액수도 언급하며, "듣기로는 오늘도 된다고"라고도 말한다. 유치장에서 풀려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취지의 대화였다고 선호씨는 전했다.
"짜장면 한그릇 먹고 싶다"던 선호씨, 공항서 곧바로 체포
닷새간 시아누크빌 경찰서에서 머물던 선호씨, 종우씨 그리고 구 팀장은 시아누크빌 이민청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그곳 행정처에서 선호씨는 처음으로 구 팀장의 본명을 확인했다고 한다.
선호씨는 그간 겪은 모든 일들을 빠짐없이 정리해 변호사를 통해 경찰에 자수하기로 결심한다. 처음 변호사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연락한 것은 10월 20일이다. 구 팀장을 한국 경찰에 넘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컸다. 이미 선호씨는 범죄단체가입 및 활동 등 혐의로 '지명수배자' 신분이었다.
그러나 자수했다고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선호씨와 종우씨에게는 여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권을 가지고 있던 구 팀장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10월 28일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전에도 웬치에서 또 다른 범죄 조직에 가담한 전력이 있었고, 이미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자였다. 귀국 전 경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그는 공항에서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서 구 팀장은 "어차피 한국에 가족도 없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긴 했지만, 그곳에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선호씨와 함께 캄보디아 이민청에 구금돼 있던 또 다른 한국인이 제공한 이민청 유치장 내부 모습. 선호씨 제공구 팀장이 떠난 뒤에도 선호씨와 종우씨에게는 여권 재발급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그 무렵 한국에서는 이미 캄보디아 대규모 범죄 조직에 한국인들이 연루됐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이민청에 구금돼 있을 당시 선호씨는 CBS노컷뉴스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한국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돌아간다면 옛날처럼 열심히 일을 다니고 그렇게만 살아도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또 "원해서 가담한 게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제가 피해를 준 것이니, 그 죄에 대한 처벌은 또 얼마나 받을지 걱정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과 한국에 돌아가면 곧장 경찰에 구속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밤마다 교차했다. 불법적인 일을 목적으로 캄보디아로 향했던 선택에 대한 형사 처벌과 사회적 질타도 두려웠다고 한다.
선호씨는 구출된 지 약 한 달 반이 지난 지난해 11월 30일에서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에 가면 짜장면 한 그릇만 꼭 먹고 싶다"고 했던 그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체포됐다.
'거짓 진술·증거 인멸' 구속…이제 法 앞에 서다
사실 선호씨는 처벌이 두려워 첫 경찰 조사에서 '캄보디아에 가게 된 경위'를 거짓으로 진술했다. 용접 일을 하던 중 네이버 밴드 '노가다 구인·구직' 커뮤니티에서 용접사 채용 공고를 봤고, '취업 사기'를 당해 출국하게 됐다는 거짓말을 했다. 비슷한 거짓말은 이민청에 구금돼 있을 당시 작성한 자수서에서 확인된다. 선호씨는 캄보디아로 출국한 배경에 대해 "해외 취업을 알아보던 중 00테크 기업의 용접사 채용 공고를 확인했고, 회사 명함과 공사 공문 등이 첨부돼있어 속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또 선호씨와 종우씨의 통장이 불법적 용도로 쓰인 것과 관련해서도 "거부했으나,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협박하고 전기충격기로 고문하는 등 위협을 가해 어쩔 수 없이 통장 정보를 알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자수서에 썼다.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처음에는 숨겼다. 그는 이민청 유치장에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구조에 사용했던 휴대전화를 팔아버렸다고 진술했었다.
그러나 모두 거짓이다. 그는 통장을 판매할 목적으로 캄보디아로 떠났으며, 통장이 범죄에 악용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없애버린 이유도 그 안에 캄보디아로 떠난 경위나 범행에 가담한 내용 등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있어 증거를 인멸하는 차원이었다. 선호씨는 이튿날 두 번째 경찰조사에서 이같은 사실과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다만, 범죄 조직에 팔려 가서 폭력과 협박 속에서 일을 했고, 조직을 빠져나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신고와 구조 요청을 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선호씨가 자발적으로 범죄에 가담했고, 조직 내에서도 자율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노쇼 사기 등을 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해 12월 8일 선호씨와 종우씨를 범죄단체활동과 가입, 사기, 전기통신금융사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선호씨와 종우씨는 서울 동부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제 남은 건, 그간의 선택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뿐이다.
선호씨가 캄보디아 이민청에 구금돼있을 당시 찍은 사진. 몸에는 아직 폭행의 흔적이 남아있다. 선호씨 제공캄보디아에서 지냈던 5개월을 선호씨는 '지옥'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복되는 협박과 폭력 앞에 무력해져 범죄에 녹아든 삶 속에서도 탈출을 포기하지 않았던 의지, 이제는 살아서 모든 죄값을 치르겠다는 용기는 모두 7살 아들에게서 왔다. 일찍이 엄마를 잃은 7살 아들을 천지 간에 고아로 만들 수는 없었다. 선호씨에 대한 재판은 이제 막 시작이다.
"5개월 동안 협박과 폭행을 당하며 겪은 정신적 고통보다 내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죽으면 내 7살 아들이 고아처럼 남겨지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 마음 하나로 버텼고, 그 마음 하나로 용기를 냈고, 결국 구조될 수 있었다. 보이스피싱 범죄 가담자가 되었지만, 나는 모든 처벌을 감수할 생각이다." (이민청 구금 당시 선호씨 자수서 中)(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