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색
  • 댓글 0

실시간 랭킹 뉴스

'당근과 채찍' 녹아든 범죄생활…입속 전기고문에 '탈출할 결심'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편집자 주

29살 청년 오선호(가명)씨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두고 캄보디아로 떠났다. 일확천금을 노린 잘못된 선택. 처음 보이스피싱에 투입될 당시 저항도 해봤지만, 압도적인 폭력 앞에 금방 순응했다. 그리고 어느새 스캠 조직에 녹아들어 범죄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원히 폭력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범죄를 벗 삼아 살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건 탈출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일자별로 기록된 그의 입국 전 자수서와 가족에게 보낸 편지, 검찰의 공소장, 검경 피의자 신문 조서 및 사건 관계인 피의자 신문 조서 그리고 가족과 변호사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선호씨가 겪은 캄보디아 5개월간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캄보디아 지옥의 재구성③]
입 안에 전기충격기 넣고 마구 폭행…그렇게 탈출할 결심
세 차례나 신고했지만 번번이 무산…신고사실 들통나기도
결국 다른 범죄단지로 옮겨져…마지막 목숨 건 신고

캄보디아에 있는 한 범죄단지 외부 모습. 남성경 기자캄보디아에 있는 한 범죄단지 외부 모습. 남성경 기자
(전편 요약) 시아누크빌 범죄단지 '웬치'는 식당과 카지노, 노래방, 편의점까지 갖춘 단지는 작은 마을이자, 탈출이 불가능한 범죄 소굴이었다. 선호씨와 친구 종우씨에게 주어진 이름은 '1호'와 '2호'. 한국인 구 팀장과 중국인 관리자 '페페' 밑에서 번호로 불리며 보이스피싱 상담원 교육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선호씨는 도망친 자들과 친구 종우씨의 몫까지 떠안은 상황. 총책 일명 '마중'의 군부대 사칭 '노쇼 사기' 범죄 조직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원히 범죄를 저지르며 연명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 글 싣는 순서
①'개당 500만원' 통장 팔러 떠나 '살인마 리광호'를 만나다
②이름 지워진 범죄생활, 활동명 '영배'…'노쇼 사기' 티키타카
③'당근과 채찍' 녹아든 범죄생활…입속 전기고문에 '탈출할 결심'
(계속)

새벽 5시 출근, 저녁 7시 퇴근. 하루 약 14시간의 근무가 매일같이 반복됐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일일이 보고해야 하는 범죄 단지를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회유와 협박 속에 낮에는 범죄에 가담했고, 숙소로 돌아오면 탈출을 고민했다. 철통같던 경비와 관리자들의 눈을 피할 방법은 뜻밖의 곳에 있었다. 도움을 건넨 사람은 다름 아닌, 방을 치우러 오던 '청소 아주머니'였다.

일말의 양심이 불러온 가학적 폭행

9월 7일. 첫 업무를 마친 후 선호씨와 종우씨, 그리고 숙소를 함께 쓰던 3호(레드)는 모두 '이대로는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했다고 한다. 이틀에서 사흘에 한 번꼴로 이들은 묵는 방을 치워주던 청소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현지인이었지만,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고 한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아주머니가 방 청소를 위해 방문했을 때, 휴대전화를 잠시 빌리는 것에 성공했다. 곧바로 캄보디아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24시간 연결되는 핫라인이었다. 신호음 몇 번과 함께 딸깍.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첫 번째 구조 요청이었다.

그런데 대사관의 반응과 대답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현재 머무는 건물 외관 사진과 주소, 방 호수 사진, 그리고 도움 의사를 직접 밝히는 셀프 동영상을 찍어 보내라는 것. 방 밖으로 나가는 일도 통제받는 생활 속에서 대사관의 요구하는 자료들을 즉시 준비할 수 없었다. 이때 선호씨는 구조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구조 시도는 무산됐지만, 빈손은 아니었던 셈이다.

캄보디아에 있는 대규모 범죄단지 외부 전경. 남성경 기자캄보디아에 있는 대규모 범죄단지 외부 전경. 남성경 기자
업무 초반 선호씨의 실적은 저조했다. 아픈 친구의 몫까지 맡겠다고 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같은 숙소를 쓰던 3호(레드)는 전화만 하면 수천만 원, 많게는 1억 원 단위로 돈을 가로채 왔다. 구 팀장의 눈에 선호씨는 점점 '쓸모없는 인원'으로 비쳤다.

그러다 9월 10일, 선호씨에게도 큰 기회가 찾아왔다고 한다. 자그마치 1억을 입금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60대 여성이었다고 한다. 선호씨의 거짓말에 감쪽같이 홀려버린 그녀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1억 원을 입금하겠다고 했다.

일말의 양심이었을까. 선호씨는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한다. 어쩌면 한평생을 모아둔 돈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게 된 이 피해 여성의 처지가 안타까웠다는 선호씨는 그녀에게 몰래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 이거 사기인데 입금하시면 안 됩니다."

이 문자는 보내자마자 자신의 아이패드에서는 곧장 삭제했다. 그러나 이를 놓칠 구 팀장이 아니었다. 선호씨가 사용한 아이패드는 다른 휴대전화와 연결돼 있어, 구 팀장은 선호씨의 문자를 파악하고 있었다.

들통 직후,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 그리고 감금이 뒤따라왔다. 구 팀장은 선호씨 입안에 전기충격기를 억지로 쑤셔 넣으며 때리는가 하면 머리와 가슴을 사정없이 발로 밟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나무 부스에 한동안 갇혀 지낸 것으로 선호씨는 기억한다. '이렇게 버티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선호씨 머릿속을 스쳤다. 선호씨는 친구 종우씨 그리고 3호와 함께 하루빨리 다시 탈출을 시도하고자 했다.

"여기서 잘못되면 제 아들은 고아가 돼요"

선호씨 아버지가 선호씨를 대신해 대사관에 구조 요청을 보낸 카톡. 오선호씨 가족 제공선호씨 아버지가 선호씨를 대신해 대사관에 구조 요청을 보낸 카톡. 오선호씨 가족 제공
9월 15일, 평소처럼 청소 아주머니가 방문했고 다시 한번 휴대전화를 빌렸다. 이번에는 아주머니의 휴대전화에 SNS '인스타그램' 앱을 설치한 뒤 지인들에게 현 상황을 알리며 닥치는 대로 구조 요청을 보냈다.

그러나 잠시 빌린 휴대전화로 모든 상황과 구체적인 위치를 설명하고 구조 연락을 기다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탈출을 위한 시도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래도 또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별도의 휴대전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세 사람은 청소 아주머니의 낡고 오래된 휴대전화를 직접 사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이들의 식대는 하루 20달러. 세 사람이 식사를 거르거나 가볍게 때우면서 힘겹게 400달러를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청소 아주머니를 붙들고 사정했다.
 
"제가 아들이 있는데, 아내와는 사별했어요. 제가 여기서 잘못돼버리면 아들이 고아가 돼요."

그러면서 "이 핸드폰 오래된 모델이다. 한국 시세로 하면 돈 10만 원도 안 하는 거니까, 이 돈 다 줄 테니 핸드폰 우리한테 좀 팔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간 사정을 들어왔던 청소 아주머니는 결국 휴대전화를 건넸다.

반입이 되지 않는 휴대전화를 숨기는 것도 일이었다. 불시에 숙소를 뒤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에 '등잔 밑'으로 생각되는 사무실에 휴대전화를 숨기기로 했다. 아무도 살펴볼 것 같지 않은 곳. 세 사람은 사무실 벽면에 달린 분전반, 일명 '두꺼비집'에 넣어뒀다. 구 팀장이 단지 밖으로 퇴근한 뒤에 사무실에서 대포 유심칩을 훔쳐 끼웠다.

구조 요청은 몸이 아파 좀처럼 일을 못 하던 종우씨에게 맡겨졌다. 상대적으로 감시가 덜했던 종우씨는 10월 1일 한국에 있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자신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세 번째 신고였다.

이 모든 과정이 은밀히 진행되는 사이 선호씨는 낮이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출근해 범죄에 가담했다. 그가 사무실에 앉아 전화를 거는 횟수만큼 '노쇼 사기'의 피해자도 하나둘 늘어갔다.

탈출을 기도하면서도 낮에는 사기를 치는 일상. 구 팀장 역시 늘 폭력만을 행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마트에서 맥주를 사다 주거나 식당에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구 팀장은 선호씨가 마음에 들 때면 "내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한 달에 거의 5만 불(한화 약 7천만 원) 정도"라며 "어느 정도 레벨이 되면 내가 운영하는 더 규모가 큰 사무실에 넣어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선호씨도 어느새 범죄 조직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죽도록 맞고 팔려간 3호…"여긴 아무도 못와"

선호씨가 대사관 핫라인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보낸 구조 요청 문자. 마지막 '황관' 단지로 옮겨졌을 때 건물 입구부터 내부까지 영상을 촬영했다(오른쪽). 오선호씨 가족 제공선호씨가 대사관 핫라인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보낸 구조 요청 문자. 마지막 '황관' 단지로 옮겨졌을 때 건물 입구부터 내부까지 영상을 촬영했다(오른쪽). 오선호씨 가족 제공
세 번째 구조 요청에도 아무런 기별은 없었다. 어느덧 10월, 한국에서는 긴 연휴가 찾아왔다. 선호씨와 3호, 구 팀장과 '페페'가 다 같이 단지 내 중식당에서 고량주를 마시던 어느 날이었다. 실적을 비교적 잘 내던 3호는 취기를 빌려 구 팀장에게 물었다.

"내가 얼마나 사기 쳤는지 알려줘. 처음에 10억을 채우면 집에 보내준다고 했잖아. 얼마나 입금액이 들어왔는지, 내가 얼마나 벌었는지 당연히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돌아오는 대답은 주먹이었다. 구 팀장은 그 자리에서 단지 내 경비원까지 불러 3호를 마구잡이로 때렸다.  선호씨는 수사기관 조사에서 "3호 형의 티셔츠가 흰색이었는데 가슴 밑까지 빨간색이 될 정도로 맞았다"고 진술했다. 다음 날 새벽, 3호는 다른 단지로 팔려 가버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선호씨와 종우씨. 구 팀장은 "3호는 포이펫(캄보디아 북서부에 위치한 국경 도시)으로 팔려 갔다. 회사가 얼마를 벌든 너희가 신경 쓸 필요도, 알 필요도 없어. 그냥 일이나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종우씨에게는 "2호. 연휴 끝나면 출근해야 하니까 꾀병 그만 부려. 여긴 아프다고 봐주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나가버렸다. 그렇게 그나마 의지하던 3호까지 사라지고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10월 연휴가 지났다.

10월 14일, 구 팀장과 페페가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짐을 싸라고 지시했다.

"너가 신고한 거 다 알아. 너는 뒤졌다. 지금 이동하는 단지가 있는데, 여긴 너가 대사관에 전화하든 어디 전화하든 아무도 못 오니까."

신고 사실이 발각된 것이었다. 그렇게 선호씨와 종우씨는 '황관'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단지로 옮겨졌다. 보안은 이전 단지보다 더 삼엄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어차피 죽은 거, 이따 저녁에 경비원들에게 맞아도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

페페는 종우씨에게 1층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절호의 기회였다. 종우씨는 1층 입구부터 새로 지내게 된 숙소 218호까지 가는 동영상을 몰래 촬영했다. 얼굴이 나오는 사진도 찍어 대사관 핫라인을 통해 메시지를 전송했다. 마지막이자, 네 번째 신고였다.

    
10월 16일, 곳곳에서 고함과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캄보디아 현지 경찰이었다. 마침내 구조대가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선호씨나 종우씨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노쇼 사기 등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일 뿐. 선호씨와 종우씨 그리고 구 팀장과 페페는 시아누크빌 경찰서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도 잠시, 유치장은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었다. (4편에서 계속)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