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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쿠팡 배송기사의 하루…"개처럼 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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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지난달 제주에서 새벽배송하다 사고로 숨진 쿠팡기사 고(故) 오승용 씨(향년 33세). 사고 직전까지 야간근로 기준 '주 83.4시간' 고강도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과로노동은 과연 승용 씨만의 문제일까요.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한 쿠팡 배송기사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습니다. '1년 365일, 단 몇 시간 내에 전국으로 배송한다'는 쿠팡의 목표는 기사들을 연료로 갈아 넣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쿠팡 배송기사 A씨. 고상현 기자쿠팡 배송기사 A씨. 고상현 기자
"시간 내로 물건 치려면(배송하려면) 개처럼 뛸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도내 한 13층짜리 아파트 건물. 쿠팡 주간조 배송기사 A씨는 유아용 테이블, 옷걸이 묶음, 온풍기 등 물건 13개를 온몸에 짊어진 채 미로 같은 아파트 통로를 빠른 걸음으로 쏘다녔다. 취재진이 A씨를 따라다닌 지 불과 30분 만에 겨울인데도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였다.
 

비용 아끼려 꼼수 포장에 다회전 배송


A씨는 매일 오전 7시 30분 도내 쿠팡 물류터미널로 출근해 소분 작업을 벌인다. 자신이 당일 배송해야 할 물건을 분류하는 일이다. 이날 배송해야 할 물량만 270여개에 달했다. 보통 다른 택배사의 경우 소분 작업 전담인력이 따로 있지만 쿠팡만 배송기사들이 직접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특히 배송 후에는 반품 처리된 물건에 직접 송장을 붙여 분류해놓는다. 또 수거해온 신선식품을 담았던 프레쉬백에 남아 있는 냉동팩과 비닐, 음식물 쓰레기 등도 직접 버려야 한다.
 
쿠팡 물류터미널 모습. 기사들이 소분작업을 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쿠팡 물류터미널 모습. 기사들이 소분작업을 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
쿠팡 측이 배송비용을 줄이려고 '합포장' 하는 일도 있다. 한 가구에 배송해야 할 택배상자 여러 개를 비닐 하나에 담아서 한 건으로 배송하도록 하는 꼼수 포장이다. 주간 배송은 1건당 800원(야간 900원)씩 받는데 여러 건을 한 건으로 합쳐서 기사가 받아야 할 배송 단가를 아끼는 것이다.
 
이날도 한 가구에 각각 배송해야 할 라면박스와 휴지가 비닐 하나에 포장돼 있었다. A씨는 "안 그래도 무거운데 더 무겁게 만들어놓는다. 어떤 경우 조립 안 된 의자 박스를 다른 물건과 함께 한 비닐에 집어넣는다. 요즘 들어 자주 나오는데 합포장만 나오면 일할 맛이 안 난다"라고 푸념했다.
 
소분 작업은 보통 3시간 걸린다. A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돼서야 물건을 1톤 탑차에 실었다. 이후 배송작업을 시작했다. 오후 3시쯤 다시 물류터미널로 돌아와서 2차로 물건 60~70여 개를 추가로 분류해서 싣고 오후 7시 30분까지 배송을 끝낸다. 과로노동의 하나인 '다회전 배송'이다.
 
비닐 하나에 물건 2개가 들어가 있는 꼼수 포장. 고상현 기자비닐 하나에 물건 2개가 들어가 있는 꼼수 포장. 고상현 기자

"프레쉬백·에코백이 과로노동의 주범"

 
A씨가 맡고 있는 배송구역은 제주에서도 좁은 골목길 사이로 아파트와 오래된 공동주택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엘리베이터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배송해야 한다. 건물 한 곳당 많게는 10여 개~30여 개씩 배송하는 일도 있다.
 
특히 당일 오후 8시까지는 모든 물량을 배송하지 않으면 재계약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서 차로 이동하며 먹어야 했다.

배송 물건을 짊어진 A씨. 고상현 기자배송 물건을 짊어진 A씨. 고상현 기자
올해 2월부터 제주에 도입된 프레쉬백과 에코백도 배송기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쿠팡 측은 신선식품을 담았던 프레쉬백과 일반상품을 담았던 에코백을 기사들에게 수거하도록 하고 있다. 고객이 물건만 빼고 둔 비어 있는 프레쉬백과 에코백을 기사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쿠팡기사 전용 앱에 프레쉬백과 에코백 회수 물량이 떠있으면 갔던 길도 다시 돌아와서 수거해야 한다. 이미 수거했는데도 시스템 오류로 다시 회수하라고 떠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날도 공동주택 6층까지 걸어가서 찾아왔는데도 10분 뒤 수거하라고 떠서 다시 걸어서 다녀와야 했다.  

A씨는 "프레쉬백이나 에코백 수거만이라도 안 하면 밥 먹을 시간이 생긴다. 이게 과로노동의 주범이다. 물건 배송하는 것처럼 똑같이 프레쉬백이랑 에코백 수거해서 오는데 단가는 세금 떼면 겨우 각각 70여 원, 20여 원이다. 이거 하느라 정작 배송도 많이 못 한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프레쉬백 수거하는 A씨. 고상현 기자프레쉬백 수거하는 A씨. 고상현 기자

제2의 오승용 씨, 전국에 2만2천여 명

 
전국에는 2만2천여 명의 쿠팡 배송기사가 근무하고 있다. 주간과 야간 가리지 않고 모든 배송기사들이 A씨처럼 하루 12시간 가까이 물류터미널에서의 소분 작업, 수백 개에 달하는 물량에 대한 당일 배송에 이은 다회차 배송, 프레쉬백·에코백 수거, 반품 처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다른 국내 택배회사의 경우 기사들이 48시간 안에 배송하면 되고 소분 작업도 하지 않는다. 프레쉬백과 에코백도 없다. 쿠팡만 하는 업무다. 그래서일까. 쿠팡 기사들만 유독 매년 과로사로 죽어나가고 있다. 지난달 제주에서 새벽배송하다 사고로 숨진 오승용 씨도 과로노동에 시달렸다.
 
에코백 수거 모습. 고상현 기자에코백 수거 모습. 고상현 기자
잇따른 배송기사들의 과로사로 쿠팡은 기사 관리를 대리점에 떠넘겼지만 사실상 쿠팡 배송기사 전용 앱과 배송구역 회수 압박으로 기사들을 관리하며 보다 빠른 배송을 하도록 한다.
 
쿠팡 홈페이지 '회사소개'  창에는 '빠른 서비스, 넓은 선택의 폭, 낮은 가격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이뤄냈습니다. 신선식품을 포함한 수백만 개의 상품을 1년 365일, 단 몇 시간 내에 전국으로 배송합니다'라고 나온다. 이는 A씨의 한탄처럼 기사들을 연료로 갈아 넣었기에 가능했다.
 
한편 CBS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쿠팡 배송기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졌다. 오승용 씨는 지난달 10일 오전 2시 16분쯤 제주시 오라2동에서 1톤 탑차를 몰다 통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로 숨졌다. 당시 1차 배송을 마친 뒤 다시 물건을 싣기 위해 물류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에 벌어진 사고다.
 
오씨는 사고 직전까지 하루 11시간 30분, 주 6일 야간노동을 계속해서 해왔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에도 하루 쉬고 다시 새벽배송 업무에 투입됐다가 어린 두 자녀를 두고 사망했다.

쿠팡 배송기사 A씨. 고상현 기자쿠팡 배송기사 A씨. 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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