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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한 살 이순재, 왜 끝까지 무대에 섰나…'이순재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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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에 남긴 '예술로 사는 법'과 연기 철학

이순재의 '리어왕 : KING LEAR' 장면. 더웨이브 제공 이순재의 '리어왕 : KING LEAR' 장면. 더웨이브 제공 
연기자 이순재가 떠난 뒤, 남은 건 수많은 작품과 더불어 "나는 왜 아직도 연기하는가"를 묻던 그의 목소리다.

25일 새벽 91세로 별세한 고인은 지난해까지 드라마와 연극 무대를 오가며 '영원한 현역'으로 활동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출간된 두 권의 책은 그가 연기와 예술, 그리고 자기 삶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2010년 출간된 '이순재: 나는 왜 아직도 연기하는가'(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는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관악초청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극반을 만들며 무대에 섰던 이순재는 이 강연에서 연기를 "몸으로 하는 노동이자, 끝이 없는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연기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훈련해야 하는 직종"이라고 강조하며, 학벌과 이론보다 현장에서의 체험과 반복 연습을 앞세운다.

책 속에서 그는 서울대 출신 배우 김태희의 예를 들며 "CF로 번 돈 들고 휴양지로 떠날 수도 있지만, 다시 사사를 받으러 연기 교수를 찾았다면 '그걸로 됐다'고 본다"고 말한다. 예술에는 '규격'이 없고, 학교 간판이 아닌 스스로의 훈련과 체험이 연기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메시지다.

"줄리어드 나왔다고 다 명연주자는 아니다", "예술에는 끝이 없다"는 그의 단언은, 80이 넘어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와 겹쳐 읽힌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포레스트북스 제공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포레스트북스 제공
2020년 출간된 '창작자들: 천만을 움직이는 크리에이티브는 어디서 시작하는가'(포레스트북스)에서 이순재는 자신을 "딴따라가 아니라, 분명한 예술가"라고 믿게 된 계기를 들려준다.

대학 시절 로런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을 보고 "죽느냐 사느냐" 독백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왔던 순간, 그리고 알베르 카뮈의 희곡 '계엄령'에서 카뮈가 "이 작품에는 배우 쟝 루이 바롤트의 의견이 상당히 첨가됐다"고 밝힌 대목이 그것이다. 작가의 문장을 그냥 읊는 '인형'이 아니라, 해석과 제안으로 작품을 바꾸는 동료 예술가가 배우라는 확신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작가는 한 번의 재미 요소를 만들고, 연출은 두세 번으로 늘리고, 배우는 그걸 다섯 번, 여섯 번으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이 정해준 역할 안에 머무는 순간 성장이 멈춘다며, "배우는 대본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대본을 타고 훨훨 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촬영장에서의 평가보다 중요한 건 "오늘 연기에 대해 내가 스스로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자기 점검이다.

두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주관'과 '최선'이다. 이순재는 "대부분 사람은 나름 최선을 다한다. 결과가 다른 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의 시선에 먼저 흔들리기보다, 내가 나에게 매기는 기준을 얼마나 높게 잡고 매일 갱신하느냐가 결국 연기 인생을 가른다는 뜻이다.

'2024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이순재. KBS 제공 '2024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이순재. KBS 제공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그는 "이 상은 제 개인의 상이 아니라, 평생 신세 많이 진 시청자 여러분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를 예술가라 부르면서도, 마지막 인사에서는 끝내 '관객 덕분'이라고 인사하던 태도 역시 이 두 권의 책에서 읽히는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의 연기 인생의 다짐이 오롯이 남겨진 '이순재: 나는 왜 아직도 연기하는가'와 '창작자들: 천만을 움직이는 크리에이티브는 어디서 시작하는가'는 각기 다른 형식의 책이지만, 한 가지를 분명하게 남긴다. 연기는 직업이기 전에, 평생을 걸어도 다 닿지 못하는 질문이고, 그 질문 앞에 "백날 떠들어봐라, 나는 내가 가는 길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준비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

무대와 안방극장에서 오랫동안 그의 연기를 보아온 독자들에게, 이제 남은 건 350편에 달하는 작품과 기록뿐이다. 두 권의 책은 '왜 아직도 연기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리고 '왜 끝까지 저 사람답게 살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이순재의 대답으로 읽힌다.

■이순재: 나는 왜 아직도 연기하는가
서울대학교기초교육원·이순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168쪽

■창작자들: 천만을 움직이는 크리에이티브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강제규·곽경택·봉준호 외 8명 | 포레스트북스 |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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