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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의 '패널인증제'란 무엇인가[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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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의 '기자수첩'은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국민의힘 박민영 미디어대변인. 연합뉴스국민의힘 박민영 미디어대변인. 연합뉴스
몇 년 전,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일간지 칼럼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친지들의 잔소리가 이어질라치면 '○○란 무엇인가'의 반문으로 말문을 막히게 하라는 '꿀팁'이 골자였다. 청년층이 기피하는 추석의 근본적 의미를 질문함으로써, 명절의 본질을 상기시키려는 목적이었을 터다.  
 
추억의 글을 떠올린 계기는 최근 불거진 국민의힘 박민영 미디어대변인의 설화(舌禍)였다. 취임 100일도 되지 않은 장동혁 당대표가 고안한 '패널인증제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일환으로 신설된 '미디어대변인이란 무엇인가'…. 1주일간 머릿속을 맴돈 질문들이다.
 
박 대변인은 이달 12일 한 우파 유튜브에 출연해 자당 김예지 의원을 향한 막말을 쏟아냈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 의원이 한동훈 전 대표 시절,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점을 두고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해 문제"라고 저격한 발언은 약과일 정도다. "눈 불편한 것 말고는 기득권"이라거나, "(장애인이라) 배려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것" 등의 말들에선 경멸마저 묻어나왔다.
 
영상으로 접한 입장에선, 사실 비언어적 표현의 충격이 더 컸다. 박 대변인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로 김 의원을 난사한 유튜버 옆에서 박장대소했다. 주저함이 없는 맞장구였다. 

사태 이후 태도 역시 부끄러움보다는 억울함의 발로로 읽혔다. "언어의 부적절성에 의해 내용의 정합성마저 부정당하게 만든 것 또한, 전적으로 제 불찰"이라는 사과는 어떤가. 복문이 될수록 반성과 멀어지는 생리를 그가 몰랐을까.
 
백 번 양보해 '무(無)지성 혐오몰이'를 하지 말라는 박 대변인의 문제의식을 순화해보자. △왜 김 의원이 2번씩 비례 공천을 받아야 했나 △그럼에도 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특검에 찬성했나 등일 것이다.
 
우선 전자를 보자. 그는 '장애인 과다할당론'이 국회 전체가 아닌, 국민의힘 비례 당선권 대상 지적이기에 합리적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각론을 본질로 가장한 호도(糊塗)에 가깝다. 

더욱이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 공천 시비가 일자, '절차상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보고받았다'고 한 당사자가 장동혁 대표다. 그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이 "당을 말아먹었다"고 보는 한 전 대표의 최측근이자 그 지도부의 사무총장이었다.

'배은망덕(背恩忘德)론'인 후자는 더 감정적이다. 말하자면 '당의 녹(祿)을 먹고도 감히 당론에 반(反)하는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느냐'는 괘씸죄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모두 하나의 헌법기관이며, '양심의 자유'가 당론에 앞선다는 것을 몰라서 나온 얘기가 아닐 것이다.
 
박 대변인의 '선택적 분노'는 기자만 느끼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옮겨본다. "김예지 까는 게 찬탄(탄핵 찬성)에 특검 찬성해서 그렇다는데 그럼 김재섭은 왜 같은 잣대로 비난 안합니까. 이거부터 장애인 차별에 비하죠." 실제로 3특검 국회 표결 시 찬성표를 던진 것은 친한(親한동훈)계만이 아니다. 소장파도 '친한계냐, 아니냐'에 따라 판단의 잣대가 달라지는 모양이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개인진정에 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개인진정에 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도 여기까지였다면, 개인의 문제로 간주할 수도 있었다. 당직자 개인이 아닌 당의 리스크임을 자인한 것은 결국 지도부다.
 
장동혁 대표는 박 대변인의 사표를 반려했다. 언행에 신중을 기하란 '엄중 경고'는 중앙윤리위원회를 통한 정식 징계가 아니다. 제3자가 그 문책의 내용을 확인할 길도 없다. 한 당직자는 "하다못해 박 대변인을 사무실로 불러들여 한 마디 하고, 이를 보여주는 쇼잉(showing)'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친한계 김 의원의 '특혜'를 주장하는 박 대변인의 입장과 달리, 정작 장 대표의 무(無)조치에서 비롯된 언론의 질문은 '박 대변인이 친윤(親윤석열)계라 감싸는 것인가'였다.
 
화룡점정은 송언석 원내대표가 찍었다. 취재진이 당의 미온적 대응을 우려하자, 이번 사안을 "당내 자그마한 일"이라고 정리했다. 그럼에도 질문이 이어지자 "왜 국민의힘에서 노력하고 있는 여러 일들 중 굳이 자그마한, 서로 간의 내부적인 일을 가지고 이렇게 오랫동안 집착해서 기사화하려고 하느냐"라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국민의힘의 허다한 '노력'이 왜 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지를 절감했다. 작지 않은 일을 '자그마한 일'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수습 가능한 일도) '큰 일'로 만드는 것. 정무적 감각을 운운하기엔 너무 솔직한 본심으로 다가왔다. 

이같은 단어 선택이 누군가에겐 공영방송의 "파우치, 외국회사의 조그마한 백"을 연상시켰다는 것을 송 원내대표는 알고 있을까. 박 대변인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임을, 당의 '투톱'이 공인한 셈이다.
 
이쯤에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박 대변인의 당직인 미디어대변인은, 방송·라디오에서 현안 관련 당의 입장을 적극 설명하는 직책이다.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최대 해당(害黨) 행위로 정의해온 장 대표의 작품이다. 

특히 특정 인사가 당을 공식 대변한다고 알리는 '패널인증제' 구상을 밝힌 이후 조치란 점에서 주목받았다. '입틀막' 논란과 함께 '친한계 솎아내기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 배경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번에 물의를 빚은 방송이 박 대변인에게 붙였던 별칭은 '한동훈 담당 일진'이다.
 
계파란 무엇인가. '자그마한 일'이란 또 무엇인가. 제1야당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것보다 더 큰 '해당행위'란 무엇인가. AS(애프터 서비스)가 생략된 인증제란 무엇인가. 국민의힘이 생각하는 '자그맣지 않은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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