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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백은 저항" 목소리 낸 곽혈수…콘텐츠가 된 '2차가해'[싸우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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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2차가해'와 싸우는 사람들
유튜브 곽혈수, 성폭행 피해 사실 고백
고백 이후 연대 확산…'비동의 강간죄' 청원으로 이어져
조롱·모욕도 잇따라…'2차 가해'가 콘텐츠 됐다
"알고리즘에 강화되는 '혐오', 플랫폼 차원의 제재 절실"

곽혈수 유튜브 캡처곽혈수 유튜브 캡처
"우리는 그 고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시간이 지나 눈물 없이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구독자 23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곽혈수는 지난달 2일 '이 말을 꺼내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볼 것 같아 그동안 숨기며 살았다"며, 지난 5월 택시기사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끝까지 싸워서 절대 지지 않겠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튜브 댓글 창에는 성폭력 피해를 고백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연령대도, 겪은 고통과 회복의 정도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한목소리로 당신의 고통을 알고 있으며 함께 싸워내자는 연대의 뜻을 전했다. SNS에도 '#곽혈수님과_연대합니다', '#내_고백은_저항이다', '#세상 모든_곽혈수를 위해' 등의 해시태그가 퍼졌다.

곽혈수 유튜브 캡처곽혈수 유튜브 캡처
그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촉구하는 청원도 올라왔다. 곽혈수는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가 아닌 '왜 동의 없이 행해졌는가'를 묻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며 청원 참여를 호소했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란 형법 제297조에 명시된 강간의 요건 '폭행 또는 협박'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개정을 뜻한다. 현실에서는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위계 등에 의해 성폭력이 일어나지만, 현행법 체계에서는 여전히 '얼마나 저항했고, 공포를 느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피해 사실을 공개한 이후 그는 자신의 유튜브에 '피해자의 생존일기'를 올리고 있다. 힘들어하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웃는 모습, 화장을 하고 운동을 하는 장면까지 일상을 살아내는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았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김제이 활동가는 개인이 겪은 피해 경험을 공개하는 것이 "피해자가 경험을 주체적으로 재해석하고 힘을 되찾아 회복해 나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자신이 겪은 일이 옳지 않은 일이었고, 이를 말하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연대의 계기가 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조롱·모욕…'2차 가해'가 콘텐츠 됐다

유튜브 캡처유튜브 캡처
'사실 확인'이라는 이름의 공격과 조롱도 시작됐다. 첫 영상이 올라온 직후 일부 누리꾼들은 사건의 개연성을 문제 삼으며 추가 해명을 요구했다. 번호를 매긴 의혹 리스트가 만들어졌고, 문구를 조금씩 달리한 복사본이 여러 플랫폼에 반복 게시되며 확산되기도 했다.

지난 5일 열린 첫 공판을 통해 사실관계가 일부 밝혀졌고, 피의자가 과거에도 길을 걷던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 실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지만, 그럼에도 온라인상에서는 그를 향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곽혈수의 이름을 딴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는 과거 발언 일부를 떼어내 피해의 신빙성을 훼손하려 하는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과거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다는 언급을 들어 "성범죄 때문에 정신과를 다닌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거나, 돈에 대한 발언을 가져와 "돈을 노린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다수의 '렉카 유튜버'들은 이러한 2차가해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한 유튜버는 과거 곽혈수가 올린 영상 등을 통해 그녀의 거주지를 특정하고, 범행 장소로 지목된 아파트 주차장에 찾아가 "폐쇄회로(CC)TV가 많아 이런 곳에서는 범죄가 이뤄질 수 없다", "좋은 데 산다" 등의 2차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을 인터뷰했다며,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범죄의 신빙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회수를 위해 '검증'을 내세우며 가짜 피해자 프레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실제 해당 채널은 곽혈수에 대한 2차가해가 담긴 영상들로만 약 50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거뒀다.

일부 전문가들 역시 논점을 바꾸는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한 성범죄전문변호사는 곽혈수의 사연을 언급하며 '무고를 받은 남성들도 그러하다', '성범죄 남성 피해자에도 관심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이 영상의 댓글에는 성폭력 피해를 젠더 갈등으로 해석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알고리즘에 강화되는 '혐오'…"플랫폼 차원의 제재 절실"

'피해다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을 의심하는 댓글. 곽혈수 유튜브 캡처'피해다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을 의심하는 댓글. 곽혈수 유튜브 캡처
곽혈수에게 향하는 온라인 공격에 대해 김제이 활동가는 "피해자가 무력하거나 망가졌을 거라는 통념, 곧바로 신고를 했어야 한다는 인식 등 피해자의 복잡한 현실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피해자다움'의 기준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피해자가 이러한 통념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의심하하게 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랫동안 숨겨야 할 일로 여겨졌던 성폭력을 피해자가 직접 말하고, 나아가 기존의 구조적 문제를 바꾸고자 문제 제기를 할 때 이에 대한 집단적인 공격과 반발이 나타나곤 한다"며 "여성혐오와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 맞물려 작동한 결과"라고 짚었다.

혐오와 사이버불링(온라인괴롭힘)을 방치하는 플랫폼과 이용자의 신념을 강화하는 알고리즘도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김 활동가는 "비단 성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여성이나 소수자를 비난하며 집단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온라인 문화가 존재한다"며 "자극적인 표현이 더 많은 관심을 얻는 플랫폼 구조 속에서 기존의 소외된 대상을 (안전하게) 혐오함으로써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집단의 연대의식이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플랫폼 차원의 제재와 대응은 여전히 미약한 상황"이라며 "플랫폼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 갈등의 맥락에서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사회 전반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특정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일종의 '좌표찍기'를 하는 행위가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며 "누군가가 지목되는 순간 비난이 빠르게 확산되고, 그것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소셜미디어와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을 손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며 "혼자 분노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다수가 함께 분노하면 덜 외롭고 그 생각이 강화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개인 차원에서 알아채고 변화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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