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광수단 형사기동대 제공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20년 만에 확인됐다. 범인 장모(범행 당시 60대)씨는 당시 범행 장소인 신정동의 한 빌딩 관리인으로, 지난 2015년 이미 사망했다. 그는 이듬해인 2006년 2월에도 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유인해 성폭행하려다 현행범으로 체포돼 3년간 복역했다. 당시 경찰은 앞선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장씨를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005년 양천구 신정동에서 연달아 발생한 부녀자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장씨를 특정했다고 21일 밝혔다. 범행 당시 60대 초반이던 장씨는 지난 2015년 7월 4일 숨졌다.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예정이다.
장씨는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5년 6월 6일 1차 사건 피해자는 병원 진료차 장씨가 일하는 건물에 방문했다. 장씨는 "휴일이라 문이 잠겼으니 지하로 가라"며 피해 여성을 유인한 뒤 지하 1층 창고로 데려가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다음날 시신을 노끈과 쌀포대로 묶어 자신의 차량에 싣고 인근 초등학교 주차장에 버렸다.
같은 해 11월 20일, 2차 사건 피해자도 똑같이 같은 방법으로 장씨에게 붙들려 지하로 끌려갔다. 장씨는 성폭행한 뒤 살해했고 시신을 비닐과 돗자리로 감싸 주택가 주차장에 유기했다.
장씨는 이듬해 2006년 2월 동일한 수법으로 같은 건물에서 범행을 시도했다. 병원을 찾은 여성을 지하로 유인해 성폭행을 시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 여성이 도주했고 장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살인 사건 직후 서울 양천경찰서는 38명 규모로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그러나 당시 장씨에 대해선 앞서 발생한 살인 사건 용의자로 조사하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피해자가 '병원에 간다'고 했던 유족 진술을 기반으로 사건 발생 장소 일대 병의원이나 약국을 탐문 수사했다. 진범 장씨가 관리하던 건물과 그 안의 병원도 탐문했지만 유의미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유전자 분석 기법의 한계로 피해자들의 몸에서 DNA가 검출되지 않은 점도 수사에 어려움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결국 8년간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고 사건은 2013년 미제로 전환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신재문 팀장이 21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양천구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범인 특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서울청 미제사건 전담팀이 본격적인 재수사에 나선 것은 지난 2016년이다. 경찰은 신정역 일대 유사 사건과 방송 제보 등 다양한 첩보를 검토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현장 증거물 재감정도 의뢰했다. 그 결과 1·2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을 확인해 동일범 소행임을 확정했다.
이후 수사팀은 피해자 시신에서 모래·노끈 등이 발견된 점에 착안해 당시 서남권 공사현장 관계자, 전과자, 신정동 전·출입자 등 약 23만 명을 수사 대상자로 선정했다. 휴일 및 단독 범행 등 가능성으로 1514명의 DNA를 대조했고, 조선족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국제 공조까지 진행했지만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전환점을 맞은 것은 경찰이 수사를 사망자로 확대하면서다. 유관 사망자 56명을 용의자 후보군에 올리고 양천경찰서 범죄 기록 보관실을 수색하다 2006년 성폭행 미수로 체포된 장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한 것이다. 이후 해당 사건 피해자에 대한 재조사 끝에 1·2차 사건 범행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범행 당시 60대 초반으로 키 180㎝의 건장한 체격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씨는 군 복무 시절 수사부서에서 근무했다. 장씨와 함께 복역한 재소자들은 장씨가 매듭을 정교하게 잘 지었다고 진술했다. 장씨는 2005년 이전에도 성폭행 등 강력범죄 전과가 있었다.
장씨는 2015년 지병으로 숨진 후 화장됐다. 경찰이 유골을 확보할 수 없던 이유다. 다만 장씨가 살았던 경기 남부권의 병의원 등 40곳을 탐문 수사한 끝에 한 곳에서 보관하던 장씨의 검체(세포조직)를 확보했다. 국과수가 이 검체가 살인사건 범인과 일치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랜 시간 경찰을 믿고 기다려주신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라며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장기 미제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