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의 질의 중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의 문자메시지 공개와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쇼츠(Shorts)용 국감을 하는 것 같다"
국회 보좌관 출신의 한 기업인은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에 대해 '쇼츠용' 이라는 냉소적인 관전평을 내렸다.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 후 열린 첫 국감이 벌써 절반을 지나왔지만, 여론의 평가는 박하다. 시급한 현안은 온데간데 없고, 헛웃음 나는 정쟁만 남다보니 회의론을 넘어 국감 폐지론까지도 나온다.
애초에 10초짜리 짤을 남기는 이른바 '쇼츠용 국감'이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한 의원들은 꽤 많다. 쇼츠의 서막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나왔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일본 사무라이 복장을 한 인물 옆에 '조요토미 희대요시'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여 강렬한 쇼츠를 남겼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벌어진 일은 더 가관이었다. 지난 14일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지질한 놈'이라는 문자를 보낸 사실을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에 '빡친' 박 의원은 '한심한 XX' 등 거친 표현을 하며 충돌했다. 이날의 촌극으로 국감이 파행되면서 출석한 증인·참고인들은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회의장 밖에서 무려 4시간 30여 분을 대기해야 했다. 당연히 알맹이는 논의되지 못했다.
해킹 사태로 전국민이 불안에 떨던 이 시기에 통신 3사 대표들을 불러놓고 열린 21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는 엉뚱하게도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딸 축의금이 도마에 올랐다. 최 위원장이 국감 기간 중 국회에서 딸 결혼식을 열어 피감 기관의 화환을 받고, 모바일 청첩장에 카드 결제 기능을 넣었다는 사실이 알진 것이다. 최 위원장은 딸과의 관계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눈물을 보였고, 이는 또다른 쇼츠로 박제됐다.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김영섭 KT 대표이사 등 해킹사태 관련 기업 대표들이 출석해 증인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기업들은 어떨까. 이번 국감은 대기업 총수 등 증인들을 대거 부르며 떠들썩하게 시작했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큰 타격'은 없는 국감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업들이 겉으론 긴장하지만 속으로 미소짓고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한 대기업의 부사장급 인사는 "쟁점이 생기면 뭔가 새로운 것이 있나 하고 긴장하며 대비하고 답변을 준비하지만, 이미 언론에 나와있는 뻔한 질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외국계 기업의 사장급 인사는 "최악의 국감이라는 평도 있다"며 "여야 의원들이 질문하는 의제에 대한 이해도가 있나 싶을 정도의 수준낮은 질문들도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폐부를 찌르면서 개선을 유도하는 송곳 질문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의원들의 질의수준이 떨어지고, 내용이 부실해지다보니 기업들 입장에서 점차 '귀찮기는 하지만 두렵지는 않은' 국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알맹이는 부실한데 증인채택 과정은 점점 더 요란하다. 국감 증인 채택 기간에 대기업 총수나 대표들의 이름을 빼느라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들은 올해 어느때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과거에는 여야 상임위 간사들이 조율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증인들을 추리고 핵심 의제들을 조율했다면, 지금은 의원 개개인이 각자 따로 노는 분위기라 일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간사의 말이 다르고, 개개인 의원들의 말이 달라 증인을 철회하는 과정에서 혼선을 빚었다는 후문도 나온다.
"과거에는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각 상임위 간사들과 협력해 소통하면서 특정 상임위에 이슈를 몰아주고 집중했다면 지금은 모든 상임위가 제각각으로 증인들을 채택하는 바람에 여러번 불려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화력 집중이 전혀 안된다"
"여야가 공수가 바뀌었는데도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느낌이다. 원내대표실의 전략이 느껴지지 않는다"
베테랑 보좌관 출신 기업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번 국감에 알맹이가 없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리더십과 실력의 부재, 보여주기용 무더기 증인채택에 국감의 권위는 시나브로 떨어지고 있다.
피감기관과 기업의 건전한 견제와 감시, 이를 통한 제도개선을 이룬다는 국감의 본래의 취지는 자극적인 쇼츠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최악의 국감'이라는 혹평을 엄숙하게 받아들일 의원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종이호랑이'가 되어가는 국회를 바라보며 피감 대상이 되는 누군가는 비웃는다. 그리고 국민들은 분노하며 이를 차곡차곡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