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감사원 등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권 등과 관련 여야 언쟁이 이어지자 추미애 위원장이 감사 중지를 선포한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가 반환점을 돌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선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짚고 내란에 부역한 이들을 밝혀냈다"는 범여권의 자평과 함께, 일각에선 "싸움판에 불과했다"는 거센 비판도 나온다. 국감 무용론까지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국감 통해 사법부의 대선 개입 정황 확인"
지난 13일 개시된 올해 국정감사 일정은 몇몇 겸임 상임위를 제외하면 이달 말까지 진행된다. 22일 기준, 총 14일의 일정 중 막 절반을 마치고 후반전에 돌입한 셈이다.
이번 국감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상임위는 단연 법제사법위원회다. 법사위는 13~21일까지 주말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 없이 국정감사를 열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 법무부, 감사원 등을 대상으로 질의했으며 앞으로 후반부엔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제처 등을 감사할 예정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성향 의원들은 22일 별도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까지 진행한 국정감사 성과에 대해 공유했다.
이들은 이틀에 걸쳐 진행했던 대법원 국정감사를 주요 성과로 꼽았다. 지난 대선 직전 이뤄졌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 결정이 '사법부의 대선 개입'이었고, 감사를 통해 구체적 정황 등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시행령에 의해 올해 10월 10일부터 전자 기록이 합법화 된다. 그 이전에 있었던 이 대통령 재판은 종이 기록에 근거한 판결이어야 한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법원행정처에서도 종이 기록이 합법이고 전자 기록은 보조 수단이라고 확인을 했다"고 짚었다.
이어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들이) 전자 기록으로 봤다고 주장했는데, 그 기록도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데다가, 만약 읽었다고 해도 그것은 불법적인 기록을 읽은 것이다. 위법 증거에 의해선 판결할 수 없고 무죄"라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에 사실상 불법임을 확인했고, 현장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12.3 계엄의 밤 당일 대법원이 긴급 회의를 열었고, 법무부에선 구치소 내 3600개 방을 확보했다는 문건이 발견되는 등 계엄에 동조한 행위들도 밝혀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또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했던 지귀연 부장판사의 '룸살롱 접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데다가, 법원 자체 조사에서 '제 식구 감싸기' 결론이 나왔다는 점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새롭게 밝혀냈다고 한다.
관례를 깨고 조희대 대법원장을 국정감사장에 앉혀놓고 질의를 진행한 것에 대해선 '사법부 독립침해'가 아닌 '국회가 사법부의 국민 주권 침해를 확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싸움 않고 민생 챙긴 여야 의원들도
진보당 윤종오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2025년도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건설 현장용 안전 장구를 입고 질의를 마친 뒤 국감장에서 장구를 벗은 뒤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전반기 국감에선, 국민의 삶에 체감될 수 있는 질의도 꽤 나왔다.
대표적으로 국토교통위 소속인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정감사 첫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안전장비에서도 차별받고 있음을 짚었다. 윤 의원은 직접 정규직 관리직 직원과 비정규직 현장직 직원의 안전벨트와 안전화를 각각 착용하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그는 "건설현장 산업재해 피해자의 75%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인데, LH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3만 5600원짜리가 안전화가 지급되고, 정규직에게는 10만 4천원짜리 안전화가 지급되는 등 비용이 세 배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실제 윤 의원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민간발주 현장에서는 안전화뿐만 아니라 안전벨트 마저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 달랐다. 수도권 한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현장 직원에게는 3만 4900원짜리가, 정규직에게는 11만 8900원짜리 안전벨트가 각각 지급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에서 9월 21일부터 24일까지 17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관리직이나 정규직 직원들과 비정규직 현장 노동자들이 동일한 안전화를 지급받은 경우는 6.3%, 동일한 안전벨트를 지급받은 경우는 8.3%에 불과했다.
윤 의원은 ""현장에서 안전이 차별돼서는 안된다. 안전의 출발은 동일한 안전장비의 지급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차별없이 안전장비가 지급될 수있도록, 국토부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민주당 한민수 의원은 나로우주센터 인근 해역에 28개 민간 풍력발전 시설이 정부의 허가를 받았거나 신청 중인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우주선을 발사할 경우 잔여물이 떨어질 수 있는 곳이라 시설들이 들어서면 안 되는 곳인데, 기관간 '칸막이'로 통제가 안 된 셈이다.
한 의원은 "(해상통제구역 내) 첫 해상풍력 발전 시설이 2020년 11월 30일 허가받았다. 올해 1월 20일이 되어서야 한국 항공우주연구원이 이를 최초로 인지했다"며 "그 사이 발전 시설이 무려 28개로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 정부의 아무도 몰랐다"고 질타했다.
이어 "하나의 민간발전소가 들어오기까지 대당 30~5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계측하고 허가 처분했는데, 정부에서 이대로 할 수 있겠나"라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텐데 너무 우려되고 한심하다. 대응을 좀 제대로 해달라"고 촉구했다.
전국민 다 보는데 막말·조롱·욕설…역대급 막장
연합뉴스반면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서로 막말·욕설·고성이 난무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가장 충돌이 잦았던 곳은 법사위였다. 국정감사 첫날인 13일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석을 놓고 여야간 고성이 난무하며 여러 차례 파행을 거듭하는가 하면, 서로 '양치기', '셧더 마우스' 등 조롱 섞인 말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가장 압권은 무소속 최혁진 의원이 조 대법원장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을 들며 '조요토미 희대요시'라고 주장한 장면이었다. 조 대법원장이 친일이라는 주장이었으나, 사실상 조롱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또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에게 "조용히 해", "너한텐 (반말) 해도 돼"라고 하는 등 반말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몸싸움과 거친 말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당부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한 여당 의원은 법사위 행태를 두고 "차분하고 조용하게 개혁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니 피곤하다는 평이 많다"며 "요란한 것만 기억하게 되는데, 법사위원들이 이를 통해 개인 지지도를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사위원) 대부분이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나 서울시장에 나가겠다고 하는데, 이러니 당 지도부도 막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과방위 국정감사에서는 욕설까지 등장하며 여야 의원들이 감정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이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으로부터 받은 '찌질한 놈'이란 문자를 국정감사장에서 공개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박 의원은 "한심한 XX"라고 욕을 했고, 여야간 공방으로 이어졌다. 두 의원은 과거 '멱살잡이'를 했던 일도 끄집어냈고, 급기야 "옥상으로 올라오라더니 맞을까봐 안 따라온 것 아니냐", "너 내가 이겨" 등 막말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별안간 "기자들이 선택적으로 찍고 있다"는 이유를 들며 기자들의 퇴장을 명령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정감사나 상임위 전체회의 등은 법상 공개가 원칙인데도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마지막 뇌관' 김현지 출석…與내부선 "불출석해야"
연합뉴스상임위를 가리지 않고 대통령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언급하며 정쟁을 벌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같은 일이 반복되자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를 받던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 사람 얘기가 왜 경기도 국감에 나오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김 실장의 출석 여부가 올해 국정감사의 마지막 뇌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김 실장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고, 개혁신당도 이에 가세한 상황이다.
반면 여당은 초기엔 "김 실장이 국감에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야권의 공세가 심해지자 불출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에서 "김 실장에게 전화해서 '뭐가 두려워서 안 나가느냐, 나가라'고 말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며 "국민의힘이 금도를 지켜야 한다.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한 사람에게 좌파, 좌익이란 얘기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음모에 따라가주면 똑같이 난장판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