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연락이 닿지 않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대화 내용 일부 캡처지난해 10월, 하나뿐인 아들이 "취업이 됐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 며칠째 소식이 없자 어머니는 덜컥 겁이 났다. 제대한 아들이 여러 아르바이트 일을 하던 터라 그런 줄로 알았지만, 연락이 좀처럼 닿지 않자 불안감이 커졌다.
아들 휴대전화 통신사 조회로 아들이 외국으로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 A씨는 10월 29일 곧바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그제야 아들 B씨가 22일 저녁 캄보디아로 출국해 다음 날 새벽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캄보디아에 도착한 후 친한 친구들에게 픽업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무섭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캡처해 연속으로 보낸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아들은 사라졌다.
A씨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러나 주캄보디아 대사관에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아들의 위치를 알아야만 했다. A씨는 인터넷 지도를 열고 아들이 보내준 위치 등을 최대한 특정했다. 동시에 캄보디아한인회와 현지 교민들을 수소문해 닥치는 대로 연락을 돌려 도움의 손길을 구했다.
천만다행으로 다음날인 30일 현지 경찰이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당국에 구금돼 송환까지는 최소 2개월이 걸린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교민들에게서 "지금 빨리 손 쓰지 않으면 여기저기 팔려다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A씨는 지체 없이 퇴사를 결정하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 출국길에 올랐다.
A씨 "유치장 환경이 정말 열악하고 밥을 따로 주지도 않는다"며 "대사관도 우리 아들만 챙겨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지체할 틈이 없었다"며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하늘이 두 번 도왔다. 수 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이민청에서는 비행기표만 구하면 곧바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구금돼 있던 아들을 무사히 만난 A씨는 속전속결로 절차를 밟고 11월 2일 새벽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지 경찰 "고임금 받고 일해…추방·재입국 금지" 공식 발표
한국인 청년을 추방했다는 캄보디아 경찰 공식 발표 자료(왼쪽). 관련 현지 언론 기사(오른쪽) 캡처그런데 A씨가 아들과 함께 귀국한 당일 오전 캄보디아 당국은 "한국인 청년 B씨를 강제 추방시켰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들의 사진이 들어간 뉴스까지 나왔다.
당시 캄보디아 국가경찰의 공식 발표 자료에는 "B씨가 캄보디아 칸달주 경제특구에서 체류 중이었으며,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했고 감금이나 고문의 흔적이 없었다"고 명시돼 있었다.
현지 경찰은 "체류 중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아 가족이 경찰에 신고해 벌어진 일이었다"며 "B씨를 캄보디아에서 추방하고 재입국을 금지한다"고 했다.
A씨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대사관에서도 아들이 있던 장소가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있는 곳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경제특구라니 말이 되는 소리냐"고 분개했다.
A씨는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이후 다시 캄보디아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황당했던 건 아들이 이상하게도 계속 "난 괜찮다", "신고를 취소해라"고 말했던 것.
돌이켜보니, 당시 현지 경찰이 보내왔던 사진도 이상했다고 한다. A씨는 "아들이 경찰과 함께 찍은 사진을 봤는데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며 "괜찮은 것처럼 보이게 연출된 사진 같았다. 엄마가 애 표정 보고 모르겠냐"고 말했다.
A씨는 "사진 속 아들의 모습은 수염이 덥수룩했다"며 "연락 두절된 이후부터 빠져나오기까지 일주일 동안 그 안에 있었는데 제대로 먹거나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괜찮다"던 아들은 귀국하고 나서야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씩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B씨는 인터넷을 통해 해외 고수익 알바 구인 글을 보고 친구와 함께 출국했는데,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차량을 타고 이동했고 이후 여권, 신분증, 핸드폰 등 모든 물건을 다 빼앗겼다고 했다. 사실상 납치였다.
범죄조직 "너네 엄마가 신고했네?"…현지 경찰 "돈 주면 빼줄게"
아들이 연락두절되기 직전 친구에게 보낸 자신의 위치(왼쪽). 아들이 구금돼 있던 현지 경찰서 유치장 바닥 사진(오른쪽)A씨는 현지 경찰과 범죄조직이 공생하는 사이라는 것을 직접 느꼈다고 했다. 캄보디아에 입국해 경찰서로 이동하는 중에도, 경찰서 안에서도 경찰들은 아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경찰들은 아들에게 다가와 "나한테 얼마를 주면 내가 너를 빼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더 황당한 건 감금했던 조직원들도 경찰서에 찾아와 아들을 빼내가려 했다는 것이다. A씨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가지 마라. 나가면 너는 죽는 거다"라고 입이 마르도록 말했다고 한다.
당시 범죄조직이 현지 경찰에 구조 요청 정보를 미리 전달받은 정황도 있다. 아들이 잡혀있을 당시 조직원들은 A씨가 수소문했던 내용의 글을 아들에게 보여주면서 "야 이거 너 맞냐? 너 엄마가 실종신고 했다고 하더라? 경찰 오겠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A씨는 "아들이 캄보디아에 자의로 입국했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식으로 보도됐다"며 "피해자가 맞고 납치된 것도 맞는데도 겉으로 문제 없었던 것처럼 꾸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보고 간 구인 글에는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외출이 가능하다고 돼 있었는데 그러면 핸드폰을 왜 빼앗겠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A씨는 사실 지금도 아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귀국한 후 한동안은 방 안에만 머물면서 외출도 삼갔다고 한다. 아들은 1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혼자 밖에 잘 돌아다니지 못하고, 중국인들 이야기만 들려도 두려움에 떤다고 한다.
"범죄조직, 캄보디아 정부가 묵인"
캄보디아는 정치권력과 현지 범죄조직의 유착이 심한 곳이다. 대규모 불법 범죄단지에 대한 단속도 형식적인 행위에 그친다는 지적이 많다.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는 지난 8월 낸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전역에 있는 50여 곳의 사기 시설 안에서 노예화, 인신매매, 고문 등이 횡행하고 있다"며 "범죄조직이 대규모로 자행하는 인권침해를 캄보디아 정부가 묵인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기 시설의 3분의 2 이상은 경찰의 급습과 구조 이후에도 운영을 지속했다"며 "사기 시설의 우두머리들과 협력하거나 그들에게 협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저 문 앞에서 매니저나 경비원을 만나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인계받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한인회 관계자는 "그렇게 빨리 구조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드문 사례"라며 "국내외 여론을 인식해 우리들이 이런 외국인 문제를 방치하는 게 아니라 잘 관리하고 있고, 단속해서 본국으로 돌려보내 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표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