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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강릉 가뭄'이 남긴 '물의 경고'…"기후 위기 극복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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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5년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가뭄은 단순한 지역적 재난을 넘어 대한민국이 기후위기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는 강력한 경고장이었다.

108년 만의 기록적 가뭄은 동해안 대표 관광도시의 일상을 마비시켰고 전국 최초로 '가뭄'을 이유로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는 초유의 상황을 낳았다.

강릉 시민들은 제한급수와 계량기 잠금, 물 운반이라는 극한의 일상을 견디며 '생존'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했다.

유일한 식수원인 오봉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낸 지 석 달 만에 가까스로 절반 수준을 회복했고 24년간 닫혀 있던 평창 도암댐의 수문이 마침내 열렸다.

예측 불가능한 비가 사태를 일단락 지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대응의 늦장과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숙제로 남아 있다.

강원CBS와 강원영동CBS는 기획보도 <물의 경고>를 통해 '강릉 가뭄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의 실체를 되짚고 앞으로의 재난 대응 시스템과 물 관리 정책, 그리고 시민의 삶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강원CBS·강원영동CBS 기획보도 <물의 경고> 5편
연평균 기온 최대 6.3도 상승, 폭염일·열대야 20배↑
집중호우와 장기 가뭄이 공존하는 '기후 양극화' 경고
전문가 "물 안보 체계, 대통령 직속 부서로 격상해야"
국회·지방의회 특위 및 심포지엄 출범 '가뭄 해결' 경각심

▶ 글 싣는 순서
① '108년 만의 최악 가뭄' 메마른 강릉, 무너진 일상
② "물 위기는 인재" 경고는 있었지만, 대책은 없었다
③ "극한 기후와 수원 부족"…'목마른 대한민국' 가뭄은 진행형
④ '가뭄의 해법' 물을 지켜낸 도시들 vs 물을 잃은 우리들
 '최악 강릉 가뭄'이 남긴 '물의 경고'…"기후 위기 극복의 기회로"(끝)

"2100년, 한국은 가뭄과 산불의 땅 될 수도"

올 여름 최악의 가뭄으로 말라버린 강릉 상수원 오봉저수지. 연합뉴스올 여름 최악의 가뭄으로 말라버린 강릉 상수원 오봉저수지. 연합뉴스
강릉 가뭄 사태는 더 이상 한국이 '물 부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경고를 남겼고 기후 재난의 일상화를 알린 신호탄이었다.

21세기 후반 다가올 기후위기에 대한 전망은 최악 그 자체다. 전문가들이 선제적인 중장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이다.

환경부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와 기상청의 '남한상세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후반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최소 2.3도에서 최대 6.3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제한 목표(1.5도)를 최대 4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연평균 강수량은 4~16% 늘어나지만 강수일수는 오히려 10~14일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비가 오더라도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기후 양극화' 현상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가뭄을 악화시키는 폭염과 열대야는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21세기 후반 폭염일수는 최대 70.7일, 열대야 일수는 최대 65.2일에 이를 수 있다. 이는 현재보다 각각 9배, 21배 증가하는 수준으로 폭염·가뭄·산불로 이어지는 복합 재난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제시한 SSP(공통사회경제경로) 시나리오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화석연료 사용이 지속되는 고탄소 시나리오(SSP5-8.5)에서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최대 4.8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2050년 이후 한국의 여름철 강수 불규칙성과 장기 가뭄 심화는 사실상 '확실한 미래'로 지목되고 있다.

영동지역 대형 산불 현장. 연합뉴스영동지역 대형 산불 현장.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강릉 가뭄을 기후위기 시대의 '뉴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지훈 세종대 환경융합학과 교수는 "시나리오 상으로 전 세계 기후 모델 대부분이 유사한 고기압 강화 패턴의 지속과 증강을 보여주고 있어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강수량에 조금만 변동이 있어도 극단적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상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메마른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에 큰 비가 없을 경우 마른 산은 바람만 불면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며 복합적 재난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 교수는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중앙정부가 제도와 지원의 큰 틀을 담당하고, 지자체가 세부 대응을 주도하는 상향식 체계가 필요하다"며 "특히 기상 관측 정보를 통해 조기 대응과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지자체에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상·기후 정보는 가성비가 높은 만큼 돌발 가뭄 예측을 위한 R&D 투자를 늘려 사전 예측과 대응 체계로 옮겨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승민 강원대 전자·AI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일부 연구는 2030년에는 가뭄 위험도가 과거보다 약 두 배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며 "물 부족 리스크는 단순히 강수 패턴 변화 뿐 아니라 도시화, 인구 분포, 수요 관리 등과 맞물려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기후위기 대응은 온실가스 감축 같은 완화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집중호우와 가뭄, 산불과 같은 재해가 반복되는 만큼 국가 차원의 통합 컨트롤 타워 운영과 재해 유형별 전용 대응 시나리오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리 없는 재난' 가뭄,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30일 강원 강릉시 성산면 오봉저수지를 방문해 가뭄 대응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30일 강원 강릉시 성산면 오봉저수지를 방문해 가뭄 대응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강릉 가뭄 사태는 대한민국의 취약한 가뭄 대응 구조와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최악의 기후 재난 앞에서도 부처별 대응 체계가 흩어져 있어 통합형 물 관리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가뭄정보분석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물 관리'는 크게 네 갈래로 분리돼 있다. 기상 가뭄은 기상청, 농업 가뭄은 농림축산식품부, 생활·공업용 가뭄은 환경부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재난 컨트롤타워인 행정안전부는 '총괄' 역할로서 관계 기관들이 참가한 가뭄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축했으나 위기 시 효율적 의사결정이 어려운 구조를 극복하지 못했다.

가뭄 예보와 분석 체계는 위기 상황에서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 기상청 가뭄 예·경보 시스템은 3개월 단기 예측 자료만 제공한다. 장기적 가뭄 관측 자료도 찾아볼 수 없고, 가뭄 발생 지역 물 수요와 공급 능력을 실시간 예측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가뭄 지역 최일선에서 대응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예산과 전문 인력 부족에 시달리면서 실질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감사원이 2023년 발표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한 물 부족량 전망 결과'가 담긴 감사보고서는 '물 부족'에 대한 정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감사원이 전문기관 예측 모델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미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한 결과 2031~2100년 물 부족량은 연간 5억8000만~6억2600만 톤으로 나타났다. 2030년 연간 1억400만 톤에서 2억5600만 톤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 본 환경부의 예측 결과 대비 2배가 넘는 수치다.

감사 결과 농식품부와 환경부, 행안부는 가뭄 대비 '농촌용수개발사업' 등 4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래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홍수의 경우 법적·제도적 근거가 마련돼 있는 반면 가뭄은 제도 기반이 취약해 자료 수집과 피해 조사, 예산 투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재난관리 기본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차 소비쿠폰·강릉 가뭄 대응' 관련 당정 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차 소비쿠폰·강릉 가뭄 대응' 관련 당정 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전문가들은 이번 가뭄 사태를 단순한 '재난'을 넘어 '물 안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정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기후변화 시대의 물 안보 확립은 지역·산업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범국가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며 "대통령 직속의 독립 부서를 신설해 정책을 추진하고, 국책연구기관을 설립해 물 순환을 종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공급 중심 정책으로 장기 데이터분석 결과에 의존하는 '탑-다운' 정책에서 벗어나 수요 관리 중심의 적응형 수자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강릉 가뭄을 계기로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인하대 사회인프라공학과 교수는 "가뭄 측정과 피해 조사, 분석 등을 위한 예산 확보 및 체계 구축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통해 지역 특성에 맞는 가뭄 취약성을 분석한 뒤 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가뭄 취약지역 비상 상수원 및 취수원 확보를 위한 체계 마련과 물 절약 및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및 홍보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도서·해안 지역의 가뭄 대응 체계를 재평가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과거 가뭄 발생 사례와 최악의 상황을 비교·분석해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팔 걷어붙인 '국회·지방의회' 가뭄 해결 전면에

더불어민주당 강원 영동지역 가뭄·물부족 사태 해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송기헌 의원. 윤창원 기자더불어민주당 강원 영동지역 가뭄·물부족 사태 해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송기헌 의원. 윤창원 기자초유의 국가재난사태를 겪은 강릉 가뭄을 계기로 국회와 지방의회 등 정치권의 경각심도 고조되면서 대책 마련을 위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일 '강원 영동지역 가뭄·물부족 사태 해결 특별위원회' 출정식을 갖고 물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돌입했다.

특위는 반복되는 가뭄 피해와 지역 상수도 인프라 부족 문제를 범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당 최고위 의결을 통해 출범했다.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단기·중장기적인 수자원 확보 대책을 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원장으로는 민주당 송기헌(원주을) 의원이 선임됐으며 예결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기후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환경·수자원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구성됐다.

송기헌 위원장은 "강릉과 동해안권의 가뭄·물부족 사태는 일부 지역의 현안이 아니라, 항구적·근본적 해법이 필요한 기후위기 시대의 국가적 문제"라며, "각 영역에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의원들이 합류한 만큼, 특위가 앞장 서 단기 사업부터 중장기 대책까지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원특별자치도의회 전경. 강원도의회 제공강원특별자치도의회 전경. 강원도의회 제공지방의회 차원에서도 조례 제정을 비롯한 체계적 물 관리 대책 마련을 강구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의회는 오는 11월 14일 이번 강릉 가뭄을 구조적 재해로 규정하고 종합적 관리체계와 지속 가능한 대책을 모색하기 위한 심포지엄을 열기로 했다.

강원도의 경우 이미 가뭄 대응 관련 조례가 제정돼 있지만, 현장에서 인식 부족과 안일한 대응으로 어려움이 커진 측면이 있었다는 판단이다.

권혁열(강릉·국민의힘) 강원특별자치도의원은 "최근 강릉을 비롯한 강원도의 가뭄 사태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구조적 위험 신호라 할 수 있다"며 "앞으로는 계절적 변동에 따라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기적 대응을 넘어 항구적이고 체계적인 물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릉시의회도 지역 특성에 맞는 조례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김현수 강릉시의회 의회운영위원장은 "산불과 태풍, 폭우, 폭설 그리고 가뭄까지 포함한 강릉지역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조례를 따로 제정해 재난 발생 시 맞춤형 대응 체계를 신속히 가동할 수 있는 꼼꼼한 매뉴얼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평소 시민들과 함께하는 재난 대비 교육과 캠페인, 예산 편성 및 지원 요청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5년 여름 강릉 지역에 108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 가뭄은 시시각각 빨라지고 심화하는 기후 위기를,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극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자연이 보낸 경고음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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