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물안심지도. 속초시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 '108년 만의 최악 가뭄' 메마른 강릉, 무너진 일상 ② "물 위기는 인재" 경고는 있었지만, 대책은 없었다 ③ "극한 기후와 수원 부족"…'목마른 대한민국' 가뭄은 진행형 ④ '가뭄의 해법' 물을 지켜낸 도시들 vs 물을 잃은 우리들 ⑤ '물의 경고' 기후 위기극복의 기회로 |
극한 가뭄 강릉, 가뭄 극복한 인접 도시 속초 '물 확보 전략'
강릉 가뭄 사태 과정에서 드러난 행정 역량 부족과 대처 방안에 대한 비판과 함께 누적된 가뭄 피해를 극복한 지역들의 해결 사례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속초시는 매년 반복된 가뭄을 극복한 대표적인 모범 도시로 평가받는다. 특히 강릉과 같은 동해안 지역에 위치해 있고 경사가 심하고 강수량이 적다는 기후·지리적 특성이 같지만 대처 방법은 극명히 달랐다.
앞서 속초시는 1992년 8월부터 2018년 2월까지 26년 넘게 가뭄 피해가 지속되면서 8차례에 걸쳐 대규모 제한급수를 실시하는 등 주민들의 피해가 적지 않았던 지역이다.
지속된 가뭄 피해에 속초시가 오늘날 '물 자립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상수관망 현대화 사업, 관정 사업, 지하댐, 도수관로 등 복합적인 대책이다.
속초시 쌍천 제2지하댐. 속초시 제공특히 속초시가 반복된 가뭄을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2021년 12월 준공된 쌍천 제2지하댐의 역할이 컸다. 1998년 쌍천에 제1지하댐을 준공, 일 1만6천톤의 물을 확보했다.
지하댐은 땅 속 깊이 차수벽을 설치해 쌍천을 통해 바다로 흘려보내던 물을 가두는 역할을 했다. 지상댐과 저수지와 같은 지표수와 달리 증발량이 현저히 적고, 기존 댐보다 건설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2018년 정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속초시는 180억 원을 들여 제2지하댐(길이 1.2㎞, 높이 평균 7.7m)을 준공했고 63만 톤의 물 저장이 가능해졌다. 이는 속초시민이 2달 이상 버틸 수 있는 양이다.
기존 5곳의 암반 관정에 이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00억원을 투입해 15곳의 암반 관정을 추가 개발해 일 2만3300톤의 상수원을 확보한 노력도 더해졌다.
강릉지역 누수율의 2배에 달하는 40.7%의 누수율을 기록했던 속초시는 2019년부터 총사업비 282억 원을 투입해 노후 관로 25㎞ 교체와 누수 탐사 및 복구 226건, 26개 상수관로를 소블록으로 분할하는 블록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지방상수도 현대화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감축한 누수량만 연간 130만 톤으로 수돗물 생산비용 절감액은 14억 원에 달했다.
학사평 정수장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해 준공한 척산 도수관로 사업도 올해 가뭄을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도수관로를 통해 쌍천에서 확보한 여유 수량을 학사평 정수장으로 보내면서 하루 3500톤의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한편, 최악의 가뭄이 이어진 강릉지역에 운반급수를 지원하기도 했다.
"물 지켜내자" 해외 도시들이 선택한 가뭄 해법은?
2018년 1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주민들이 물 급수를 기다리는 모습. 연합뉴스전 세계 곳곳에서 물 부족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뼈아픈 가뭄 사태가 반복되면서 저마다 '물 관리'를 위한 체계적 해법을 마련하고 있는 사례들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단기적 절수와 담수화, 재이용, 다원화 등 여러 국가들이 도입한 가뭄 해결 방안들은 더 이상 추상적 경고가 아닌 '물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도시 '케이프타운'은 2018년 극한 가뭄에 수돗물 공급이 전면 중단되는 'Day Zero(데이제로)'에 직면했었다. 3년 이상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저수지 수위가 바닥을 드러낸 탓이다.
100년 만의 최악 가뭄에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면서 주민 1인당 물 사용량을 일 50리터로 제한하는 강력한 수요 억제 조치를 시행하고 실시간 대시보드로 절약 상황을 점검했다. 초과 사용 가구에는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수도 요금이 누진적으로 인상됐다.
'절수는 생존'이라는 대대적 절수 캠페인이 펼쳐진 덕분에 물 사용량이 절반 이하로 줄면서 'Day Zero'를 피할 수 있었다. 도시 기능 위축과 주민 불만이 커지는 등 강압적 조치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물 절약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 효과가 컸다.
스페인 도냐나 국립공원의 산타 올라야 석호. 연합뉴스최근 3년간 가뭄이 이어진 스페인의 카탈리냐주는 지난해 2월 저수율이 역대 최저치인 16%가 붕괴되면서 가뭄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주민 등 600만 명의 하루 물 사용량은 200리터로 제한됐고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던 올리브유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후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됐다.
스페인은 가뭄 위기 돌파를 위한 대책으로 '해수담수화' 인프라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해수담수화는 바닷물에서 염분과 용해물질을 제거해 식수, 생활용수, 공업용수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담수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2000년대 초 최악의 가뭄 이후 하루 20만 톤, 바르셀로나 인구 20%에 공급할 수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해수담수화 플랜트를 2009년 완공하는 등 현재까지 800여 곳의 담수화 플랜트를 가동해 물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토 절반 이상이 사막인 이스라엘은 독립된 물 관리 기구를 신설한 뒤 '물 재이용'과 '담수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
OECD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006년 법 개정을 통해 'Water Authority(정부 수자원 및 하수 관리청)'가 국가 수자원의 관리와 배분, 통제를 총괄하는 기구를 신설했다. 정치적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고 기후 위기에 따른 물 수요 증가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하수 85% 이상을 처리해 농업용수로 재활용하고, 지중해 연안에 대규모 해수담수화 플랜트를 설치해 전체 식수의 70%를 충당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드립 관개 기술을 개발해 농업용수 사용량을 혁신적으로 줄인 덕분에 전 세계로 수출되는 대표적 물 관리 기술을 구축했다.
자체 담수원이 없어 말레이시아에 물을 의존해 왔던 싱가포르의 경우 1970년대 이후 물 안보를 국가적 과제로 삼고 싱가포르 국립 수자원청(PUB)을 출범, 4대 수원 확보 전략으로 'Four National Taps'를 추진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국토 3분의 2를 집수구역화해 17개 저수지를 건설하는 '지역 집수', 말레이시아와의 장기 물 공급 협약 체결을 통한 '수입수' 확보, 하수 재이용수(NEWater), 해수담수화 플랜트를 통한 담수화 전략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싱가포르의 현재 물 자급률은 50% 이상에 달한다.
전문가들 "물 인식 개선,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강릉시 포남동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주차장에 비치된 생수들. 연합뉴스세계 주요 도시들이 극한 가뭄을 겪으며 내놓은 다양한 물 관리 해법을 국내에 도입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술적 문제가 아닌 '물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을 제시했다.
김형수 인하대 사회인프라공학과 교수는 "싱가포르처럼 재이용수를 음용 단계까지 활용하는 로드맵은 국내에도 적용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녹슨 배관에서 떨어져 물이 붉게 변하는 적수 현상과 같이 물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물 재이용'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희정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국내 재이용수는 주로 산업단지와 공업용수로 활용되고 있고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분위기"라며 "생활용수와 음용수 활용을 위해서는 수질과 인식 개선, 제도적 지원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프타운식 강력 절수 모델 도입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이 제시됐다. 김형수 교수는 "가능하겠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개인당 물 소비량이 많음에도 물 절약에 대해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교육과 홍보, 실천 가능 방안 마련이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희정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뤄졌던 K-방역을 예로 들며 "물 사용량 절감면에서는 일시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겠지만 물 사용 제한을 거는 것은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인권의 문제도 있다"고 답했다.
'해수 담수화' 등 담수화 인프라 확대 모델 역시 단기적 효과는 인정되지만 갈 길이 멀다. 김희정 교수는 "가뭄 대응 측면에서는 효과적이지만 '탄소중립' 목표와는 긴장 관계가 존재하며 현재 한국 현실에는 맞지 않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다만 "재이용 확대와 재생에너지 기반 전환을 병행한다면 물 안보와 탄소 중립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형수 교수는 "두산중공업과 같은 기업들은 세계적인 해수담수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해수담수화 및 재이용 등을 위한 전략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희정 강원대학교 지질학과 교수가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 구본호 기자
싱가포르의 상·하수도 통합 거버넌스 도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뭄에 대한 제도적 기반 마련 이후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형수 교수는 "싱가폴 등에서 재이용수를 음용수로까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상수도, 재이용수 등에 대한 신뢰가 담보됐기 때문"이라며 "우선적으로 가뭄 측정과 피해 조사, 분석 등을 위한 예산 확보 및 체계 구축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싱가포르와 달리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고 물 사용량 중 농업용수 비중이 높은 점, 도심지역 인구밀도와 거주지, 산업단지 구분 등 전국 토지 사용 현황까지 고려할 때 통합 거버넌스 구축은 장기적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도입돼야 제도에 대한 저항을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뛰어난 전산망과 기술 등 스마트 그리드 인프라 구축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서 누수와 사용량 및 수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해 수자원을 보다 효율적,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전략을 시행해야만 한다"며 "보유한 역량이 수자원 관리 분야에 아직까지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