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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혀 깨물어 유죄' 최말자씨, 61년 만 재심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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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시도에 맞서다 가해자 혀 깨물어 다치게 한 혐의
61년 만에 열린 재심서 정당방위 인정·무죄 선고
최말자씨 "오직 '무죄' 두 글자 위해 달려와…만감 교차"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말자씨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김혜민 기자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말자씨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김혜민 기자 
성폭행하려는 남성에게 저항하다 혀를 깨물어 중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78)씨가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최씨는 "이겼다"고 외치며 승리의 주먹을 치켜들었다.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10일 오후 중상해 등 혐의로 61년 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최씨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중상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피해자의 혀를 깨문 행위 역시 정당방위로 인정돼 상해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다만 앞서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며 최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던 검찰과 달리 법원은 61년 전 판결에 대한 언급 없이 1~2분 만에 선고공판을 마무리 지었다.
 
61년 만에 재판 결과가 뒤집히자 방청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날 법정에는 수많은 여성단체 활동가와 취재진, 변호사 등이 모여 선고를 지켜봤다.
 
최씨는 법원 청사 앞에서 "최말자가 이겼습니다"라고 외치며 엄지를 치켜들며 환호했고 여성단체 활동가와 변호사 등 일행은 최씨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무죄 선고를 축하했다. 이어 '최말자가 해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하늘 위로 높이 던지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윽고 최씨는 부산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직 무죄라는 두 글자를 위해 앞만 보고 살아왔다. 통쾌할 줄 알았는데 막상 무죄 선고를 받고 보니 허망하기도 하고 섭섭한 생각도 든다. 만감이 교차한다"며 "부산지법이 사과나 아무 말 없이 무죄를 선고한다고 몇 마디만 해 시원섭섭하기도 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61년 전 18세 소녀였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어 죄인이 됐다"며 "주변에서 '바위에 계란치기'라며 (재심 청구를) 만류했지만 이 사건을 묻고 갈 수 없었다.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10일 최말자씨가 61년 만에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여성단체 활동가 등 일행과 기쁨을 나누는 모습. 김혜민 기자 10일 최말자씨가 61년 만에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여성단체 활동가 등 일행과 기쁨을 나누는 모습. 김혜민 기자 
앞서 최씨는 만 18세였던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깨물어 1.5cm가량 절단시킨 혐의로 구속 기소돼 6개월간 구금됐다가 이듬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반면 가해 남성은 강간미수 혐의가 빠진 채 특수주거침입 등 혐의만 적용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는 데 그쳤다.
 
당시 최씨는 성폭행에 저항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남자로 하여금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이 있다"며 오히려 유죄를 선고했다.
 
이후 2018년 '미투운동'을 지켜보며 용기를 얻은 최씨는 사건 56년 만인 지난 2020년 5월 여성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최씨 주장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무죄로 볼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최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며 파기환송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부산고법은 올해 2월 재심 청구를 인용했다.
 
이후 지난 7월 열린 재심 결심 공판에서 부산지검은 최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어떤 시대에도 형사사법의 역할은 개인에게 부당하게 가해지는 차별적 편견을 걷어내고 오로지 법률적으로 마땅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라며 "과거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로 작동했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했을 피고인에게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줬다"며 최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61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은 최말자씨가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전했다. 김혜민 기자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61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은 최말자씨가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전했다. 김혜민 기자 
한편 이번 판결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재심으로 인정된 첫 사건이다.
 
최씨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는 "61년 전 났어야 할 판결이 이제야 바로잡혔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어서가 아닌 그때나 지금이나 무죄가 됐어야 하는 사건"이라며 "이번 판결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인정된 것과 진술의 신빙성만으로 재심 개시가 이뤄지는 등 의미가 큰 판결"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추후 국가기관에 의해 당한 위법한 행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등 61년간 '죄인'으로 살게 한 책임도 물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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